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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란웨이창-광활한 대륙과 초원의 내몽골
    중국 문화 저술가 위치우위의 <천년의 정원>에는 피슈산좡에 대한 묘사가 첫 부분을 장식한다. 특히 그가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청나라 황제들이 만리장성의 수리를 주장하는 주변의 요청을 거듭하고, 장성의 바깥인 청더에 별궁을 세운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강희제는 장성 수리에 반박하면서 “진이 장성을 축조한 이래, 한·당·송 역시 항상 수리를 하였는데, 그렇다고 어찌 당시인들 변방의 환난이 없었단 말인가?… 오직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국토 수호의 유일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나라의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니, 변경이 절로 굳건하게 될 것이다”는 논리로 장성 수리를 거절하는 한편 청더에 별궁을 세우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란웨이창(木蘭圍場)을 설치한다.    무란웨이창으로 가는 길 무란웨이창은 사냥을 하는 한편 군대의 진을 연구하는 장소로 왕들에게 항상 연구하고, 신체를 단련하는 연습을 하는 장소다. 실제로 그와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치세는 청나라가 중국의 대부분 지역을 통일하는 한편 경제·문화적으로도 가장 융성한 국가를 만들게 했다.    흔히 베이징에서는 빠상차오위앤으로도 불리는 무란웨이창은 청더에서 출발할 경우 3시간쯤 걸리는 웨이창셴(圍場縣)을 경유한다.    다시 이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앞서 보았던 모습과 달리 울창한 숲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현재 여행지로 개발된 무란웨이창의 시작이다. 대문을 통과하면 울창한 전나무나 낙엽송으로 된 숲이 펼쳐지고 산길을 오른다. 구절양장의 길을 지나면 정상부에 도착한다.    이 정상부에 〈황제의 딸〉의 촬영장인 위에량후(月亮湖)가 있다. 위에량후는 말을 탈 수 있는 시설부터 몽고빠오나 통나무집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호수에서는 조각배를 타거나 모터보트를 즐길 수 있다.    또 북방 삼림대의 시작인 백화나무 숲을 볼 수 있다. 다시 조금 가면 하산 길이 시작된다. 앞으로는 일망무제의 고산삼림대가 장관을 이룬다. 이 산 너머에 훈찬타커 사막이 있다.    만약 이 삼림대가 없었다면 베이징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오는 황사량의 수십 퍼센트가 증가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방풍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마운 삼림대다.    언덕을 내려오면 아담한 평지가 펼쳐지고 거기에 여행자 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준4성급 호텔에서 몽골 파오까지 다양한 숙박 시설이 있는데, 밤이 되면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이다.    이곳은 밤이 되어야 본모습이 드러난다. 이곳의 대형 파오들에서는 각기 특색을 갖춘 전통 공연이 식사와 함께 선보인다. 전통 몽골 공연에서 잡스러운 댄스파티까지 호텔마다 열리는 다양한 연회에 빠져보는 재미가 일품이다.    또 길거리에는 전통 몽골 술에 양이나 소를 바비큐하여 파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술도 그 지방의 다양한 약초로 담은 술에서 양젖을 발효해서 만든 몽골식 바이주(白酒 빼갈)나 맥주까지 흥겨운 판이 벌어진다.      또 사방에 터지는 폭죽과 캠프파이어로 여행자들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밤이면 반소매로는 버티기 어려울 만큼 시원한 날씨가 여행자들을 뼈 시린 피서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곳에서 10분만 새로 닦인 길을 따라 가면 작은 강이 나온다. 청더를 지나는 루완허의 발원지인데 이곳에서는 시시하지만 래프팅도 가능하다. 이 강을 지나면 네이멍구가 시작된다. 씁쓸하게 이 길목에서 입장료를 징수한다. 네이멍구로 들어서 얼마 가지 않으면 홍산쥔마창(紅山軍馬場)이 나온다.    이곳은 중국의 군대에서 쓰는 말을 기르고, 훈련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감탄하게 되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초원형 산들이다. 평안한 풀들이 자라는 작은 산들은 여행자들에게 뛰어가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곳에서 말을 타거나 4륜 바이크를 탈 수 있다.    말타기는 보통 한 시간에서 3시간 가량을 탈 수 있다. 한 시간을 타면 초원을 거닐다가 오고, 두 시간을 타면 아오빠오(몽골인들의 서낭당이자 신호대)가 있는 곳에 간다. 3시간이면 자작나무 숲을 다녀올 수 있다.      군마장을 나와 다시 길을 가면 일망무제의 초원이 펼쳐진다. 〈강희황제〉를 찍었던 촬영장도 있는데, 아름다운 몽고빠오와 초원이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만드는 곳이다.    무란웨이창은 청더에서 120km가량 떨어져 있다. 청더에서 갈 수 있지만 직접 가자면 스허잉(四合永) 역이 가깝다. 이곳에서 웨이장까지는 22km가량 떨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가깝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시즈먼장거리버스터미널(西直門長途客運站)에서 웨이장(圍場)행 버스가 많다.    글 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19-10-18
  • 와이빠먀오-황제의 별장을 둘러싼 마음의 안식처
    피슈산좡 주변에는 사원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와이빠먀오(外八廟)로 불린다. 가장 큰 곳은 푸투오종청지먀오(普陀宗乘之廟·보타종승지묘 일명 소포탈라궁)다.    멀리서 바라본 소포탈라궁 1767년(건륭 32년)부터 건립돼, 건륭제 60세 회갑(1771년)에 완공됐다. 이 건물은 건륭제 회갑 기념도 있지만, 티베트에 있는 달라이 라마 8세에 대한 경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미 티베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륭제가 라마를 위해 지었다는 점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건륭제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780년 이 사원의 건립에 맞추어 청더를 방문한 박지원 일행은 그들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었다.    오색 능단(두꺼운 비단과 얇은 비단) 폐백을 가지고 반선(판첸 라마)을 보도록 하였는데, 황제까지 노란 수건을 가지고 반선을 대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다. 조선 사신은 서번(서쪽 오랑캐)에게 조아릴 수 없다고 버티다가 황제도 그런 예를 차리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이 과정을 통해 박지원은 국제 정세가 이제 더 이상 중국만이 세계의 중심일 수 없고, 중국 변방에 위치한 나라라고 오랑캐로만 폄하하는 등 중심과 주변을 분리하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곳이나 중심이고 또 주변일 수 있다는 융통성 있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푸투오종청지먀오의 옆에 수미푸쇼우즈먀오(須텆福壽之廟·수미복수지묘)가 있다. 건륭제 45년에 창건했는데, 주된 목적인 건륭제의 생일을 맞아 이곳을 방문하는 판첸 라마 6세를 영접하기 위해 만들었다.    수미푸쇼우즈먀오 때문에 사원의 모양은 티베트 시카체(日喀則·르커저)를 모방했다. 건물의 구조는 푸투오종청지먀오와 비슷한데, 가장 큰 특징은 먀오까오주앙옌뎬(妙高莊嚴殿·묘고장엄전)이다.    이곳은 판첸 라마 6세가 머물면서 독경을 한 곳인데, 1층 중앙에는 석가모니상이 있고, 주변에는 라마의 보좌 등이 배치되어 있다. 두 사원에는 라일락을 비롯한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어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소포탈라궁 유리문 우리 여행자가 많이 머무는 왕징의 옆으로 징순루(京順路)가 지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은 버스는 이곳을 통과하는데, 5분 정도의 간격으로 청더행 버스가 있다. 청더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 30분 걸린다. 우다코우 쪽에 묵는 이들은 시즈먼(西直門) 지하철에 있는 북경북역에서 2101/2108 열차를 타는 것이 편리하다.    청더의 숙박은 그다지 저렴하지 않다. 도착 후 호객인을 통해서 숙소를 찾을 수 있다. 수준 있는 호텔로는 텐보자르지우디엔(天寶假日酒店 TianBao Holiday Hotel)이나 푸닝스상거탕따지우디엔(普寧寺上客堂大酒店 Pu Ning Hotel) 등이 있다. 이 여행길은 제목처럼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만한 곳으로 동행하면서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하자면 바로 본문에 자주 언급되었듯이 〈열하일기〉다. 열하일기에서 노마디즘 등의 정수를 뽑아내서 쓴 책으로 이 길의 해설서이자 여행을 통해 자신을 키우는 여정을 소개한 책이다.    좀 무겁다면 최근에 출간한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고미숙 저/아이세움 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고미숙 저/그린비 간)도 좋다. 〈열하의 피슈산좡〉이란 책은 중국의 문화 해설가 웨난이 펴낸 책으로 열하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전문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피슈산좡의 역사는 사실 강희제, 건륭제 등 중국 최고 황제들의 역사이니 만큼 중국 역사의 최절정을 느끼는 흥미가 있다.    〈천년의 정원〉은 중국의 유홍준인 위치우위가 열하를 보고 느낀 감상을 쓴 글이다. 한족의 입장이지만 위대한 왕조에 대한 경외를 느낄 수 있는 글이 들어 있다.    글 사진= 조창완 여행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19-10-11
  • 청더 피슈산좡 -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황가 정원
    옌산 산맥을 넘으면 다시 고속도로가 나온다. 고속도로를 타고 40분 정도를 달리면 청더에 닿는다. 청더 10km 전에 쑤앙타산(雙塔山) 등 재미있는 경관이 있지만 볼거리에 비해 입장료가 너무 높으므로 굳이 권하지는 않는다.    피서산장 사자상   청더는 옌산 산맥을 기점으로 북쪽인데 기온이 평균 5℃ 정도는 낮다. 이런 기온으로 인해 베이징의 황제들은 여름에 이곳을 찾아와 더위를 피하는 한편 주변의 평원에서 사냥을 하며, 국력을 키웠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이 많아 요즘은 후텁지근한 느낌을 갖기 쉽다. 우리 가족도 청더를 몇차례 찾았다. 우리 가족이 살던 베이징 왕징에서 가장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교외지역이고, 초원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피서산장 호수 전경 청더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는 피슈산좡(避暑山庄·피서산장)이다. 564만㎡의 거대한 이 별장은 이허위안의 2배, 구궁의 8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황가 정원림이고, 여름에 황제가 이곳에서 업무를 관장하는 한편 외국 귀빈을 맞는 등 전반적인 황궁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피슈산좡의 가장 중요한 여행 지역은 정문인 리정먼(麗正門)을 들어가면서부터 만나는 궁뎬취(宮殿區)다. 말 그대로 이곳은 궁전이다.    리정먼은 1754년 건륭제 때 지어졌으며, 피슈산좡 최후의 관문 역할을 했다. 리정먼을 넘으면 아담한 나무로 둘러싸인 네이위먼(內午門·내오문)이 있다. 이 문의 정면에는 ‘피슈산좡(避暑山庄)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강희제가 쓴 것이다.   그 다음 건물은 전체가 녹나무로 만들어져 난무뎬(楠木殿·남목전)으로도 불리는 단보징청뎬(澹泊敬誠殿·담박경성전)이다. 이 건물 역시 비교적 소박하게 느껴지는데,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접견하거나 축하 연회를 여는 곳이다.    단보징청뎬을 지나면 쓰즈슈위(四知書屋·사지서욱)가 나온다. 이곳은 서재가 아니고, 황제가 단보징청뎬으로 나갈 때 옷을 갈아입는 장소였다. 이 건물 뒤편은 옌보즈수앙(煙波致爽·연파치상)이다.    이곳은 황제의 침전으로 황제가 일상을 보내던 곳이다. 동서 양쪽은 황후의 거실이다. 서쪽에 있는 시누완각(西暖閣·서난각)은 서태후가 거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누완각은 서태후가 거처했던 곳 하지만 강희, 옹정, 건륭제 3대의 치적은 나약한 성격의 가경제(嘉慶帝·제위 1796~1820)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족은 물론이고, 소수민족의 반란이 빈번했고, 서구 제국주의 세력도 중국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유약한 치세를 거치다가 1820년 피슈산좡에서 사망했다. 아버지가 이곳에서 죽자, 아들 도광제(道光帝·제위 1821~1850)는 피슈산좡을 멀리했다.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피슈산좡은 1860년 9월 다시 시끌벅적해진다. 함풍제(咸豊帝·제위 1851~1861)가 온다는 소식이 왔기 때문이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으로 진격해 들어가자 피슈산좡으로 몽진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 함께 따라가지 못하고 위앤밍위앤(圓明園)에 남아 있던 함풍제의 비빈(妃嬪)들은 이곳이 점령당하여 불길에 휩싸이게 되자 모두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이렇듯 함풍제는 선조들처럼 사냥을 하면서 국력을 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란을 피해 도망을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피슈산좡에서 궁뎬취의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다. 남은 지역은 대부분 드넓은 구릉과 평지다. 이곳을 편하게 돌 수 있는 순환차가 있어서 여행자들은 한 시간 남짓이면 쉽게 돌아볼 수 있다.    황제의 야외 파티장인 완수위안(萬樹園)을 지나서 러허(熱河)의 발원지를 볼 수 있다. 러허는 말 그대로 〈열하일기〉의 열하다. 발원지에서 호수까지 20m가 이 강의 전부인데,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강으로도 유명하다.    열하발원지   글 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19-09-30
  • 만리장성...지구 밖에서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10년 가까이를 살았지만 베이징의 한여름을 나기는 쉽지 않다. 40도까지 수은주로 오르는 고온도 고온이지만 인공비로 인해 습도도 높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나았겠지만 과거라고 다를 리 없다. 그래서 황제들은 이허위안(颐和园)이나 위앤밍위안(圓明園) 등을 세우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 했다. 그런데 사실상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강희제(재위 1661∼1722)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휴가지를 만들었다.    바로 열하(熱河 현지명 청더 承德)다. 베이징에서 청더까지는 기찻길로 256km다. 말을 타고 달리면 하루면 닿겠지만 황제의 행렬은 가마로 서서히 그곳을 향했다.   굳이 바삐 달릴 일은 없으니 그 길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가보자. 사실 황제가 그 길을 향하면 길에는 약 50m 간격으로 공연을 벌였다고 한다. 황제가 아니니 곳곳에서 그런 공연을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에 중앙선을 추월선으로 삼는 중국 운전사들의 곡예와 같은 운전 실력을 감상하면 흥미 만점이다.   만리장성   이 길은 〈열하일기〉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일야구도하기’와 ‘야출고북구기’ 등이 나온 곳이다. 당시 연암 일행은 황제가 수일 내로 당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폭우로 강물이 넘실대는 이 길을 건너서 열하를 향했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뚫려서 청더 가는 길에 중간 도시인 미윈(密雲)까지는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미윈부터는 다시 국도를 타고 베이징 등 화베이 지방의 북쪽 방벽 역할을 하는 옌산(燕山) 산맥을 지나야 한다.    만리장성은 한족들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기마민족을 쌓기 위해 만든 보호막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 가장 통과하기 쉬운 길이 구베이코우(古北口)다. 구(口)는 말 그대로 만리장성의 노선 가운데 지대가 낮아서 관문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북구 장성   중국 역사에 밝았던 연암 박지원은 이것을 지나면서 열하일기 가운데서도 최고의 문장이라는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밤에 고북구 장성을 지나며)’를 썼다.   과거 수없는 전장이었던 그곳을 조선의 선비가 지난다는 것에 연암은 무척이나 가슴 뿌듯했고, 장성의 한 돌에 자신이 지나갔다는 글을 쓰고 스스로도 문장을 지었던 것이다.    보통 베이징 여행때 가는 만리장성은 베이징의 정북에 있는 빠다링(八達嶺) 장성이다.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에 도착해서 많이 가지만 장성의 옛 모습은 없고, 장삿속만 보이는 장성이 빠다링 장성인데 구베이코우 장성의 인근에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장성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는 장성들이 산재해 있다.    동쪽에서 쓰마타이(司馬臺) 장성을 시작으로 진산링(金山嶺) 장성, 구베이코우 장성, 무톈위(慕田峪) 장성, 황화청(黃花城) 장성 등이 차례대로 이어져 있다.   이 장성들은 모두 각기 다른 역사와 특색을 갖고 있다. 현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창청을 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쓰마타이창청을 권한다.    쓰마타이(司馬臺) 장성 이곳은 만리장성의 모든 특징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하여 ‘장성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장성(長城)은 중국 건축물의 최고로 꼽히며, 이 중 쓰마타이창청은 중국 장성의 최고로 손꼽힌다는 말이 있다.    쓰마타이창청의 가장 험한 곳은 ‘시엔뉘로우’(仙女樓)와 ‘왕징로우(望京樓)’로 통하는 길목이다. 높이가 100여m에 이르며, 경사도는 85°로 거의 수직이며 유일한 길목이다. 계단이 발 하나 간신히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작으며, 양쪽으로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진산링 장성 쓰마타이가 장성 건축의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면 진산링 장성은 ‘만리장성 금산독수(萬里長城 金山獨秀 만리장성 가운데 금산령이 으뜸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웅장한 모습이 특징이다. 2인용 작은 케이블카로 올라간 후 5분쯤 걸으면 만리장성이 나타나는데, 곳곳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명승이 펼쳐진다.   동쪽으로 이어진 장성은 이번에는 구베이코우에 닿는다. 구베이코우 장성은 낮은 지역에 있어서 웅장함은 없지만 관문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황제들이 다니던 여정들을 전시한 문화관이 만들어져 여행자를 맞는다.   구베이코우를 지난 장성은 서쪽으로 흘러가 무톈위 장성이 된다. 무톈위 장성은 여러 가지 장성의 특색을 모은 곳이다. 베이징 시내에서도 비교적 접근도가 좋은 곳이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로 올라가 내려올 때는 화다오(滑道 철판 봅슬레이)를 타고 내려오면 스릴 만점의 여행이 될 수 있다.   글=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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