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09(목)
 

 취푸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유명한 사상자이자 유교 창시자인 공자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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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묘석

 

이곳은 공자와 맹자가 주도한 유교 문화 발상지다. 취푸는 둘레 약 5.5km인 현성(縣城) 성벽 안에 공먀오(孔廟), 공푸(孔府), 공린(孔林), 루궈구청(魯國古城) 등이 있다. 

 

공먀오, 공푸, 공린은 ‘산공’(三孔)으로 불리는데 현대 들어서 홀대받던 공자를 부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9월 26일부터 10월 10일까지는 대형 축제인 ‘공쯔원화지에(孔子文化節 공자문화절)’을 열어 공자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한편 관광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취푸는 여행 관리가 부실해 인력거꾼의 호객을 피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 꼭 봐야 할 공먀오나 공린을 요청하면 십중팔구는 엉뚱한 곳에 데려다줘 입장료를 낭비하게 만든다. 


공먀오(孔廟 공묘)는 공자의 제를 드리는 사당으로,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가 죽은 지 2년 후(기원전 478년) 공자의 의관을 안치해 놓고 제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유래됐다. 

 

현존하는 공먀오는 명·청대를 거치면서 완성된 것으로 황궁에 버금가는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특히 청나라 옹정제는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현재 공먀오는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공자 사당의 총본산이다. 입구에서 세 갈래 길로 되어 있는데 넓이 140m, 길이 630m를 서서히 걸어가면서 그 위용을 볼 수 있다. 

 

460칸의 건물에 패방은 54개에 달하며, 황제가 만든 석비가 13개에 이른다. 공먀오의 여행은 보통 진셩위전방(金聲玉振坊)에서 시작한다. 이 패방을 들어서면 고풍스런 공먀오가 나온다. 

 

다음 문이 링싱먼이다. 링싱먼은 명(明) 영락 13년(1415년)에 세운 것인데, 청나라 건륭제가 나무 기둥을 돌기둥으로 바꾸고 직접 편액을 썼다. 

 

영성은 공자를 가르킨다. 이후 성시먼(聖時門), 홍다오먼(弘道門) 등을 지나면 쿠이원꺼(奎文閣)가 나온다. 

 

공먀오의 도서관 격인 쿠이원거는 송(宋)대인 1018년에 만들어진 건물로 높이 23.35m이고, 건물의 규모나 구조면에서 빼어나 중국 건축의 중요한 문물 가운데 하나다. 

 

원래는 도서관의 기능을 했는데, 문화대혁명 당시 많은 자료가 소실됐다. 쿠이원꺼를 지나면 공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명인들이 남긴 것이다. 

 

가장 유명한 비석은 대당고승태사노국공선공비(大唐誥僧泰師魯國孔宣公碑)다. 이곳의 가장 큰 돌비석은 65t으로 베이징의 시산(西山)에서 600명의 인부와 500마리의 소가 동원되어 운반한 것이다. 

 

다시 중앙로로 나와 걸으면 따청먼(大成門)이 나온다. 이 문은 공자의 제사 때만 열리고, 황제만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따청먼을 나오면서는 화려한 석각의 기둥들을 볼 수 있다. 

 

황제나 왕이 아니면서도 용의 문양을 쓸 수 있는 공자의 위상을 볼 수 있는 것들로, 조형미가 빼어나다. 

 

따청먼을 나오면 바로 나오는 곳이 싱탄(杏壇 행단)이다. 이곳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우리나라 성균관에 있는 행단도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싱탄의 다음에는 본전인 따청뎬(大成殿)이 있다. 중국 3대 전각 중에 하나인 따청뎬(大成殿)은 동서 너비 54m, 남북 안길이 34m, 높이 31.89m, 건축 면적 1,836m2로 청나라 때인 1730년 개축되었다. 

 

3만 명 이상의 목수가 동원되어 6년 동안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흰 돌로 된 2중 기단 위에 노란 유리기와를 이은 2중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에는 공자상이 있고, 왼쪽에는 안회(顔回)와 자사(子思)가, 오른쪽에는 증삼(曾參)과 맹자(孟子)의 상이 있다. 

 

공자는 안회를 제자지만 같이 학문과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로 여겼다. 하지만, 단명해서 안타까워했던 인물이고 자사는 공자의 손자이자 ‘중용’(中庸)을 정리하는 등 학문 공헌도 높은 인물이다. 

 

증삼은 공자가 가르친 효(孝)와 교육에 많은 공헌을 한 제자고, 맹자는 공자의 학문을 이어받아 더욱 뛰어난 철학 기반을 다진 인물이어서 4명의 뛰어난 제자로 일컫는다. 

 

따청뎬의 전면에 서 있는 10개의 석조기둥은 예술미가 빼어난 걸작들이다. 각각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렸다. 

 

따청뎬 뒤에는 친뎬(寢殿)과 셩지뎬(聖迹殿)이 있다. 친뎬은 공자의 부인인 올관씨(兀官氏)를 모신 건물로 북송 때 지은 것을 청나라 때 개축하였다. 

 

셩지뎬은 1592년 건설한 대전으로, 공자의 일생에 관한 고사를 그린 총 120폭의 돌조각인 성적도(聖迹圖)가 보존되어 있다. 

 

공푸(孔府 공부)는 예전에 연성공푸(衍聖公府)라고 불렸다. 취푸 시내 있는 공먀오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공푸는 역대 공자의 자손이 살던 저택 겸 관공서로 사용되었다. 

 

송나라 인종(仁宗) 시대(1038년)에 건축되었다. 공푸의 내부 구조는 동·서·중 세 부분으로 나뉜다. 동쪽은 가묘의 소재지이며 빠오번탕(報本堂)과 타오먀오(桃廟)는 모두 동쪽에 위치한다. 

 

서쪽은 연성공이 책을 읽고 시문과 예의를 배우고 시를 짓고 객을 초대했던 곳이었다. 서쪽에 중수탕(忠恕堂), 안후애탕(安懷堂) 등 있다. 또 남북의 꽃 정원은 보통 객을 대접했던 곳이었다. 

 

중부는 공푸의 중심이다. 뒤에 있는 주택은 최후의 공푸 화원이다. 공푸는 중국 봉건 사회의 전형적인 내택합일의 귀족 장원이다.

 

공린(孔林 공림)은 성린(聖林)이라고 불렸다. 취푸 시내 북쪽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공먀오에서 마차를 타고 가면 된다. 공린은 공자와 그 후손의 묘소이다. 

 

공자의 묘지는 공린의 중앙에 있고, 동쪽에는 공자의 아들 공리, 남쪽에는 손자 공의 묘가 있다. 

 

처음 공린의 규모는 3000평이었으나 이후 역대 황제들이 계속 제사를 지내고 묘소를 짓는 등의 제례 행사를 이유로 공자의 후손들에게 토지를 주어서 면적이 차츰 확대되어 청나라 때는 9만 평에 이르게 되었다. 

 

주위의 담의 길이가 7km이다. 공린 안에는 높고 오래된 나무 2만 여 그루가 있어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는다. 안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것이 좋다. 

 

샤오소호링(少昊陵 소호릉)은 취푸 동쪽에서 4km 거리에 있는 옛날 행정 구역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3750평이며 능(陵)의 표면은 대리석 석판으로 만들어져 일명 ‘완스산(萬石山)’이라고 칭하며,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호칭도 있다. 

 

또한 <수호지>의 주무대인 ‘양산박(梁山水泊)’의 유적지, 허저(荷澤)의 목단, 로성(聊城)의 ‘광위에로(光岳樓)’, 더저우(德州)의 ‘수루왕링(蘇祿王陵)’, ‘저오좡(棗莊)’의 1만 그루의 석류, ‘후이산후(徽山湖)’의 10만 그루의 연꽃이 있으며 고대 운하 등이 있다.

 

멍먀오(孟廟 맹묘)는 맹자의 고향이자 사당이 있는 조우셴(鄒縣)은 취푸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도시다. 

 

멍먀오(맹자를 모신 사당), 멍푸(맹자의 자손들이 살던 곳)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공자가 위대한 업적으로 유가를 세웠다면 맹자는 그 사상의 철학 완성도를 높인 인물이다. 

 

맹자 고향 여행의 중심은 멍먀오다. 멍 먀오는 북송(1037년)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원 위치는 맹자 묘(墓)의 근처였는데 북송 선화(宣和) 3년(1121년)에 현재의 위치에 사당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명나라 때 현재 규모로 확장됐다. 맹모는 장방형으로 주전은 야셩뎬(亞聖殿)이다. 

 

높이 17m, 면적 560m2로 녹색 유리기와 건물이다. 건물 안에는 맹자의 상이 모셔져 있고, 뒤에는 청나라 옹정제가 쓴 ‘수선대후(守先待後)’라는 편액이 있다. 

 

또 이 건물 뒤에는 멍무뎬(孟母殿) 등이 있는데 멍무뎬에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관한 고사 등 맹자 어머니에 관한 기록도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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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푸(曲阜)-지성과 야성이 넘치는 공자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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