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2(목)
 

유럽의 콧대 높은 아웃도어 패션사의 사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얘기다.


‘한국에 히말라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라산이나 지리산 이래 봐야 해발 1,900미터 정도일 뿐인데 기능성 아웃도어 용품이 왜 필요할까?’라는 것이 그 사장의 생각이었다.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는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를 북한산 입구에 데려다 놓고 단 두 시간 정도 등산객들을 보여주자 사장의 입이 떡 벌어진 것이다.


그 많은 등산객들이 하나같이 히말라야에 갈법한 고기능성 등산 복장에 폴대를 양손에 짚고 산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장은 뭐 하나를 해도 끝장을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알지 못했다.


우리 민족은 동호회, 밴드, 친목, 회사 동료 등등 온갖 모임으로 뭉치기를 즐겨 하며 그 모임 속에서 서로 전문가 포스를 내도록 독려하여, 허투루 하는 모임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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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입구 아웃도어 매장 전경 사진=위메이크뉴스 DB

 

그는 금광이라도 발견한 표정으로 즉시 납품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모임을 선호하지 않다 보니 혼자서 운동복과 러닝화 정도의 복장으로 산 중턱까지 오르는 산책을 즐긴다.


나의 성향이 그렇다 보니 남들이 발수 기능이 좋다는 고가의 고어텍스를 입고 북한산에 오르는 것에 관심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산을 사랑하는 분들이 쾌적한 산행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오해는 마시라.


오히려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서 잘 된 현상 일 수도 있다. 단지 등산복을 입을 때와 장소는 좀 가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오늘 이야기의 요점이다.


우리나라 중. 장년들의 등산복 사랑은 점점 도가 지나쳐가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옛날 선비들 ‘입성’이라 할 만큼 형식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간혹 주말 외출을 하다 보면 결혼식장에도, 백화점에도, 식당에도. 어디를 가나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심지어 음악회장에 올 때도 등산복을 입고 온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일부 종교단체와 지지자들의 시위 현장은 언뜻 보기에 등반가들의 시위 현장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언젠가 TV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전통복 맞춤집이 소개됐는데, 우리나라의 한 연기자가 이 옷 저 옷 입어 보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히말라야를 트래킹 하다 온 듯한 그의 등산복이 꽤 눈에 거슬렸다. 그 나라의 정치인들이나 군인들이 가장 격실을 차릴 때 입는 예복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왜 민망함은 시청자의 몫이 되는 것일까.


해외 단체 관광객들 중 등산복을 입은 사람만 찾으면 바로 한국인이라는 말은 이제 유머도 아니고 세계인들조차 아는 사실이 됐다. 해외의 일부 식당에서는 등산복 차림의 한국인 손님을 거절하기도 한다.


올가을 북한산은 팬데믹의 여파로 인해 해외로 나가지 못한 사람들까지 한데 붐비게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인구 절반이 사는 서울과 경기도는 산에서 내려와 지하철을 타면 시내에서 2차를 즐길 수 있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지리적 구조이다 보니 시내 곳곳에서 등산복 차림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방송에 소개된 한 독일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산복을 입는 것을 보고 ‘마치 부의 상징을 과시하는 것으로 생각 든다’고 말을 할 만큼 외국인들에게는 생경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필요도 있다.


경제, 문화, 군사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G7의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이 1,750만 명(2019년 통계청)이나 방문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도 이제는 남의 눈도 의식을 좀 하고, 격식을 따져가며 살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용적 측면이 예절을 억제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벌써 수년 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유인나가 멀리 떠나려는 김고은에게 ‘TPO 좀 맞추자’라고 한 말이 있다.

TPO는 Time(때), Place(장소), Occasion(상황)의 약자로 패션계에서 주로 쓰이던 말이지만 이제 젊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사용될 만큼 격식을 가벼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성세대는 알 필요가 있다.


글=이호준 문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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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패션 - 이젠 TPO 좀 맞춥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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