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에 대해 내부통제 전면 시정 명령을 내렸다. 과거 약 700억 원 규모의 대형 횡령 사건이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닌 제도적 관리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사고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내부통제 체계의 근본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자행 명의 통장과 직인을 각각 두 명이 관리하도록 규정했음에도, 통장 담당자와 서무담당자가 한 사람일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이 허점이 대형 사고의 단초가 됐다”고 밝혔다. 실제 횡령 직원은 이 제도를 악용해 자행 명의 통장과 부점장 직인 모두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법원 공탁금’ 명목의 위조 전표를 작성해 173억 원을 유용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발표한 우리은행 수시검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내부통제 허점이 2012년 700억 원대 횡령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사고는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한 직원이 통장과 직인을 동시에 관리하며 장기근무를 통해 감시망을 피했고, 자산·주식·문서 관리 등 전반에 걸친 통제 부실이 확인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당시 우리은행은 가장 기본적인 내부통제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 횡령 직원은 부서의 자행 명의 통장과 부점장 직인을 모두 관리했으며, 내규상 겸직이 가능했던 허점을 악용했다. 그는 이를 이용해 ‘법원 공탁금’ 명목으로 173억 원의 수표를 발행했고, 출자전환주식 관리 과정에서도 동일인이 거래와 기록을 모두 담당하며 OTP 인증을 도용해 장기간 범행을 은폐했다.
‘장기근무’ 역시 횡령의 직접적 배경으로 지적됐다. 우리은행은 동일 부서 3~5년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하나, ‘소속장 요청’ 등 불명확한 예외 규정으로 사실상 한 직원이 장기근무를 이어가며 내부 감시를 무력화했다. 명령휴가 제도 또한 본부 부서 장기근무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감시 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우리은행의 상시 모니터링은 ‘현금 인출’ 거래만 감시 대상으로 삼았고, 수표 발행이나 계좌이체를 통한 거액 유출은 탐지하지 못했다. 임시 계정(가수금)을 이용한 이상 거래도 필터링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이에 금감원은 우리은행에 ▲장기근무자 관리 및 순환배치 강화 ▲문서관리 내부통제 강화 ▲통장 및 직인 분리 관리 ▲출자전환주식 관리 강화 ▲자행명의 통장 및 가수금 거래 모니터링 강화 등 5건의 개선을 요구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다시 드러난 사건”이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겸직 허용’과 문서 검증 실패, 관리감독의 형식화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적돼 온 고질적 문제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3차례 위조를 놓칠 정도로 감시 체계가 마비돼 있었다는 건 제도와 문화 모두의 실패”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정진완 행장 취임 이후 내부통제 시스템 전면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정 행장은 2024년 12월 31일 제56대 은행장으로 취임했으며, 통상 2년 임기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취임 직후 “내부통제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룹 차원의 거버넌스는 우리금융지주 임종룡 회장이 총괄하고 있다. 임 회장은 2023년 3월 취임, 임기는 2026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11월 전후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꾸려져 연임 여부를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외부 출신 인사라는 점과 재임 중 드러난 내부통제 실패 사례들이 연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최근 드러난 금감원의 수시검사 결과는 정진완 행장 취임 이전에 발생한 과거 사고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현 경영진은 이를 계기로 제도 전면 재점검에 착수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은 오래전 발생한 과거 사례로, 관련자는 이미 법적 처벌을 받았으며, 현재는 내부통제 시스템과 인사 순환제, 모니터링 절차 등 제도적 장치를 대폭 보강해 상당 부분 시정됐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내부통제 강화를 선언한 직후에도 과거 사고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은행이 여전히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도, “제도 개선이 실효성을 갖춘다면 신뢰 회복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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