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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저우&강남 수향-풍요가 빚어낸 영웅들의 고향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말 때문인지 강남(江南)이라는 말이 주는 선입견이 있다. 중국에서 강남은 다양하게 풀이된다.    수향 시탕 야경   사실 문학적으로 말한다면 강남은 창지앙의 중남부까지를 말하지만 중국에서 문화적인 지형도로 강남은 항저우에서 쑤저우 등 화동 지방을 일컫는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 항저우가 있다”는 말은 여행자들이 가장 쉽게 듣는 말이다. 흔히 화동으로 불리는 쑤저우와 항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평안한 땅이다.    베이징이나 화북 지방은 기마민족이 포진한 북방과 가까워 항상 전화(戰禍)에 시달렸다. 반면에 북방의 전쟁 소식이 이곳에 닿기 전에 큰 전쟁은 이미 끝이 난 경우가 많았다.    3월이면 사방에 꽃이 물든다. 로마제국의 재정까지 흔들었다는 비단이 나오는 곳도 쑤저우 등 화동지방이다. 중국 최고의 명차로 꼽히는 롱징을 비롯해 이 지역의 풍요를 말할 것들은 끝이 없다.   쑤저우 주워정위안   강남의 중심도시 항저우의 중간에 있는 시후(西湖)는 그 문화의 중심이다. 필자는 10여 차례 시후를 찾았다.    사계절을 모두 봤고, 정자 밖의 정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로우와이로우(樓外樓)에서 깊은 맛을 가진 항저우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후가 인상적인 곳은 그곳에 잠겨 있는 시간의 향기다. 그 가운데는 백거이와 소동파처럼 호수의 공사에 참여한 이들의 역사도 있고, 호수 옆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수심도 담겨져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별스러운 것이 있다면 ‘백사전(白蛇傳)’의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쿤룬산에서 이곳을 찾은 백사는 이곳 청년인 허선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인근 사찰에 있는 법해 스님이 그 사실을 알아서 백사의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는데, 허선은 이에 놀라서 죽는다.    백사는 사람을 죽인 죄책감과 허선에 대한 사랑으로 온갖 시련을 겪고, 쿤룬산에서 신약(神藥)을 구해와 허선을 살린다. 하지만 다시 법해는 다시 백사를 뇌봉탑에 가둔다.    사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죽은 이야기일 텐데 사람들은 서서히 요물인 백사보다는 파괴적인 심상을 가진 법해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때문에 이제 법해가 이기는 결론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항저우 여행에서는 곳곳에 있는 이 이야기만 생각해도 느낌이 있다. 둘이 만났다는 단교는 물론이고 백사가 갇힌 뇌봉탑에는 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밤에 즐기는 버라이어티쇼 송성에서도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천당들의 여름은 좀 괴롭다. 40℃에 육박하는 날씨도 날씨지만 90%를 넘는 습도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을 줄줄 나게 하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를 많이 쓰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이곳에 많이 몰리는데, 요즘은 5일 근무제가 활성화되는 만큼 가장 좋은 여행 시즌인 봄이나 가을에 금토일 정도로 계획을 잡는 게 현명하다.     우리가 화동지방을 볼 때 가장 큰 주안점을 둘 것이 있다. 바로 정치와 철학이다. 현대 중국을 세운 인물들은 매운 음식을 많이 먹는 후난(湖南)과 쓰촨(四川) 사람들이었다.    마오쩌둥, 류샤오치, 펑더화이, 주더, 덩샤오핑 같은 인물이 그곳 출신이다. 하지만 장쩌민이나 우방궈, 후진타오 같은 현대 지도자들은 대부분 물산이 풍부한 지앙쑤나 저지앙 등 화동 출신이 많다. 그런 배경에는 이곳이 오랜 지식을 축적한 지성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 여행에서 중국 사상계를 생각하고 떠나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여행을 만들 수 있다.    아직 필자도 다 실행해 보지 못했지만 화동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여행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3월이면 유채꽃이 어우러지는 지역들을 유유자적하게 다니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항저우 롱징에 차가 나는 청명(淸明 4월 5일 전후)에는 이곳의 사람들에 빠져볼 일이다. 4월이 지나면 어디든지 아름다운 꽃이 핀다.    쑤저우 정원은 물론이고 후치우 언덕에 꽃이 피면 조우주왕이나 통리 같은 수향(水鄕) 마을의 오래된 옛 침대에서 늦잠을 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양징후 등지에서 게(蟹)가 여물어간다.    그밖에도 이곳은 아름다운 여유가 있다. 지아싱(嘉興) 등지는 비단철이 되면 누에고치를 판매하는 이들로 시장이 형성되고, 샤오싱(紹興)의 오봉선들이 모인 곳에서는 즐거운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5-09
  • 후이저우-각양 각색의 문화가 빛나는 중국 문화 태동지
    당대 중국 지도부를 이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후이저우를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다. 후이저우, 아주 낯선 지명이지만 이곳이 함의하는 의미는 무한가지다.  당월패방군   장쩌민, 후진타오를 비롯해 상하이방이나 지앙쑤 출신의 사고는 이곳 후이저우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조상의 연원은 대부분은 후이저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후이저우의 기품 있는 마을 가운데 하나인 시디(西遞)와 홍춘(宏村)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피난지이다. 항저우나 쑤저우 등은 큰 전쟁에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에 속하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의 곤란을 겪기도 했다.  시디의 기품있는 건물   이곳에서 좀더 들어와 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황산의 아래에 있는 이런 마을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그들 앞을 흐르는 강이 가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이 마을을 지나는 신안강(新安江)은 부춘강(富春江)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전당강(錢塘江)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강의 이름처럼 처음에는 학문에 뜻을 품었다가 어려워지면 부를 쫓고, 결국은 돈의 못에 빠져드는 삶을 찾고 싶어 했다.     툰시 신안강   이 때문에 명나라 말기 이후 이곳 출신 휘주 상인은 전국을 주름잡는 대상인 집단으로 번성하였고, 이들은 각지에서 상업 활동으로 번 돈을 고향에 투자하였다. 휘상들이 고향에 지은 저택, 사당, 패방, 민가 등 각종 건축물이 전화를 거의 입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디는 사방이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로는 두 개의 내가 흐르고, 그 사이로 난 메인 거리를 바탕으로 형태를 이루었다. 도시의 집들은 흑백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들이다.    마을은 11세기에 시작되어 14세기에서 500년간 번성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 정체된 시간을 보냈다. 124개 가구의 명청 옛집과 3곳의 사당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홍춘은 황산의 서남 산기슭에 위치한다. 홍촌은 대부분 왕씨(汪氏)로 이루어진 집성촌이다. 촌락은 12세기 중엽 남송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13세기 후반에 홍춘 왕씨가 이곳에 거주를 정하기 시작하였다.    홍촌 풍경   이후 15세기 명 영락 연간에 유명한 풍수지리가를 초빙하여 촌락의 배치를 정하고 가로(街路)와 수로, 우물을 건설하는 등 오늘날 촌락의 기본 구조를  이때 만들었다.    툰시(屯溪)는 황산시를 일컫고, 시셴(縣)도 인근 여행 도시다. 툰시는 현재 황산시의 중심도시다. 이곳 인근에서는 흥미로운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파이팡(牌坊)이다.    파이팡은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조정의 허락으로 세운 공적비다. 낮게는 수m에서 높게는 10여m에 달하는 파이팡들은 과거 이곳이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는지 느끼게 해준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시셴에 못 미쳐 있는 탕위에파이팡쥔(棠팟牌坊群)과 시셴의 중심에 있는 쉬궈스팡(許國石坊)이다.    탕위에파이팡쥔은 건륭제가 강남을 순행하던 중에 빠오씨[鮑氏] 집안에 내린 파이팡으로 규모나 위엄에서 가장 큰 규모다.    반면에 쉬궈스팡은 명나라 만력제 때 예부상서나 무영전 대학사 등을 지낸 허국의 공을 그린 패방으로 높이 11.5m의 8각 패방이다. 8각 패방은 신하라고 해도 함부로 쓸 수 없는데 허국에만 허락된 것으로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패방이다.    허국 패방   재미있는 것은 허국이 조선을 방문해 우리 지식인들과 많은 교분을 나눈 인물이라는 것이다. 명 융경제는 등극 원년에 한림원검토(翰林院檢討)였던 허국과 병과좌급사중 위시량(魏時亮)을 조선에 보내 즉위를 알리는 절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허국 일행이 조선에 들어오는 도중에 명종이 붕어하고 선조가 왕위에 오른다.    다행히 그는 조선을 방문해 문묘와 성균관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조판서였던 박충원은 물론이고 고봉 기대승과도 시문을 교류했다.    이 과정에서 맹자나 이기론 등에 익숙한 조선의 학문을 높이 사기도 했다. 허국은 관리뿐만 아니라 수행원에게도 시문을 주었는데, 당시의 교류한 문서도 어딘가에는 잘 보관되어 있을지 모른다.    쉬궈스팡에서 다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또우산지에(斗山街)가 있다. 후이저우 사람들은 본래 자식이 똑똑하면 공부를 시키지만 그렇지 않으면 장사를 시켰다. 때문에 후이저우는 최고의 거상인 호설암을 비롯해 많은 명 상인을 배출했다.    또우산지에는 그 상인들의 옛 본거지로 지금도 그들의 부유했던 생활을 볼 수 있는 고택들을 볼 수 있다. 물론 남자들은 장사와 학문을 위해 밖에 나갔지만 여인들은 하늘만을 튼 독특한 구조의 집 안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밥을 지어두던 쓸쓸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5-04
  • 황산-중국인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명산
    황산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지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중국을 여행한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으로 꼽으라면 황산을 꼽는 이가 대다수다.    황산 등산로   황산은 기이한 소나무(奇松), 괴이한 모양의 돌(怪石), 구름 바다(雲海), 온천(溫泉)의 4대 절경으로 유명하다. 황산의 아름다움은 계절 시각에 따라 구름과 안개가 조화를 이루면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인은 황산을 가 봐야만 비로소 중국의 산수화와 수묵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 여행자들의 황산 여행은 보통 2일로 잡는다. 등산에 자신이 있는 이들은 오전에 윈쿠스에서 정상 부근으로 정상 부근으로 걸어 올라가 시간이 나는 대로 주변을 돌아보고, 베이하이빈관이나 도미토리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정상부를 마저 돌아보고 위핑루 쪽으로 하산하면 된다.    일반 여행자들은 윈쿠스에서 케이블카로 바이어링까지 올라가 정상부를 다 돌아본 후 역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찍 바로 바이어링으로 출발하면 시간상으로나 체력에도 문제가 없다.    기봉   흔히 기차역 등지에서 호객하는 버스를 탔을 때, 산 아래에서 호텔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방식은 그리 좋지 않다. 황산은 입장료가 비싸므로 하루는 산 안에서 숙박하는 게 경제적이다.    산 입구에서 호텔을 호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는 산 위에 숙소를 잡아야 한다. 하루는 정상 부근에서 자고, 다음날 내려오면 된다. 도미토리도 비싸지만 산 위의 음식값은 상상 이상이다. 미리 도시락 등을 준비하는 게 좋다.    중국 최대의 여행 성지답게 황산으로 가는 교통편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난징과 항저우를 경유하는데 하루에 8대 정도가 있다. 버스의 경우 항저우에서는 치처시짠(汽車西站 西溪路 112호)에서 아침 7시부터 차가 있는데, 시간이 유동적이므로 잘 확인해야 한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툰시까지 3시간, 황산산문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역 앞에서는 황산 등산 입구인 윈쿠스(云谷寺)까지 가는 차가 적지 않게 손님을 불러 모은다. 성수기가 아니라면 한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가는 길에 페이추이쿠(翡翠谷)를 보기 원하면 탕코우(湯口)에서 내려 다녀올 수 있다.    등산이든 케이블카든지 우선 윈쿠스(云谷寺) 쪽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윈쿠스는 입구에서 봤을 때, 오른쪽에 위치한 황산 여행의 출발점.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입장료 사는 곳이 있다. 입구로 들어가 왼쪽으로 들어가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 있고, 직진하면 등산로다.    케이블카는 바이어링(白鵝교)까지 2.8km인데, 8분쯤 걸린다. 바이어링은 황산 정상 부근의 한 축이다. 시션펑(始神峰), 스즈펑獅子峰), 파이윈딩(排云頂), 멍삐셩화(夢筆生花) 등은 바쁘게 돌면 2시간, 늦게 돌면 4시간 만에 다 구경할 수 있다. 뻔한 길이니 그다지 헤매지 않으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    황산 정상 부근에는 시하이빈관(西海賓館)과 베이하이빈관(北海賓館) 등 고급호텔과 베이하이빈관에서 운영하는 도미토리 등의 숙소가 있다.  황산 전경 만약 일찍 정상부 여행을 마쳤다면 당일에 위빙루(玉屛樓)까지 걸어서 위빙루빈관에서 자고(이곳도 표준방 400위안 정도) 다음날 일찍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베이하이빈관이나 시하이빈관 쪽에서 자고 다음날 일찍 짐을 꾸려 광밍딩에서 일출을 본후 톈하이(광밍딩에서 1km)를 거쳐 위핑루(톈하이에서 2.5km)로 간다. 그 길의 중간에 롄화펑을 들어가서 볼 수 있다. 또 위핑루에서는 잉커쏭 보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위핑루 약간 옆에 즈광꺼(慈光閣)로 가는 케이블카가 있다. 체력을 감안해서 움직이는 게 좋다. 케이블카를 이용한다면 톈두펑을 오를 수 없다. 위핑루에서 톈두펑까지는 1.5km고, 다시 반산스(半山寺)까지 1km, 즈광꺼까지 2.5km이다.    내려와서 바로 역이나 툰시로 가는 차를 탈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온천지구에서 하루쯤 묵을 수 있다.    정상부에서는 시하이(西海) 빠이윈로우(排云樓)에서 단샤(丹霞)로 내려와 케이블카나 도보로 푸롱링(芙蓉嶺)으로 갈 수 있다. 물론 첫 번째 황산 등반자라면 이 코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황산 절경   황산은 800리 내에 형성된 산봉우리의 바다이며, 또한 운해(雲海)가 감돌고 있는 ‘기산’(奇山)이기 때문에, 황산에서는 ‘뭇 봉우리들이 해를 둘러싼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고, 또한 운해일출(雲海日出)의 찬란함을 맛볼 수 있다.    단, 이러한 절경을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가장 이상적인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다. 지세가 높고 광활하며 동쪽을 향한 곳이라면 시야가 넓고 멀어 태양이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모습이나 운해(雲海) 면상(面上)의 순간 정취를 보거나 촬영할 수 있다.    황산(黃山)의 가장 아름다운 일출 지점은 수광팅(曙光亭), 칭량타이(淸凉臺), 스즈펑(獅子峰), 단시아펑(丹霞峰), 스신펑(始信峰), 치스펑(棋石峰), 공양산(貢陽山), 광밍딩(光明頂), 바이어링(白鵝嶺), 스쑨펑(石퓉峰), 위핑펑(玉屛峰), 리엔후와펑(蓮花峰), 톈두펑(天都峰) 등지다.    가장 좋은 시간은 봄 새벽녘 5시 30분∼6시, 여름 새벽녘 4시 40분∼5시 10분, 가을 새벽녘 4시 50분∼6시 20분, 겨울 새벽녘 5시 30분∼6시다. 일출을 보려는 사람이 많고 장소가 협소하니 반드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일출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녁놀을 볼 때도 지세가 높고 광활하며, 시야가 넓고 서쪽을 향한 위치를 선택한다. 이렇게 하면 저녁놀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황산의 저녁노을   황산의 저녁노을을 감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은 시하이(西海) 파이윈팅(排云亭), 단시아펑(丹霞峰) 꼭대기, 페이라이펑(飛來峰), 스주펑(石柱峰), 치스펑(棋石峰), 광밍딩(光明頂), 리엔후와펑(蓮花峰) 등지다. 저녁놀과 일몰이 서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해가 서쪽으로 질 때를 전후로 한 시각이 저녁놀을 감상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다.   매년 11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가 황산의 운해를 감상하기에 이상적인 계절이고, 특히 비나 눈이 내린 후 날이 갑자기 개면 일출과 일몰 시에 오색찬란한 운해를 형성하여 ‘천연색 운해’라 칭하고, 그 정경이 정말 장관을 이룬다.    이 시기가 대기 요동이 적고, 구름층이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운해를 형성하기 쉽고 또한 비교적 늦게 사라진다. 여름에 황산은 태평양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아래층 기온이 높고, 대류(對流)가 비교적 강하기 때문에, 구름층의 안정성이 파괴되기 쉽다. 이리하여 여름엔 황산 운해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운해를 감상하는 지점은 운해 형성의 고도(高度)에 따라 달라진다. 운해의 고도가 800m 이하일 때는 즈스펑(紫石峰)·반산스(半山寺)·타오후와펑(桃花峰)에서 난하이(南海)를, 루셩팅(入亭)·이다오링(一道嶺)에서 동하이(東海)를, 바이운쥐(白雲居)에서 시하이(西海)·수시양펑루(書箱峰麓)·푸롱링(芙蓉嶺)에서 베이하이(北海)를 감상하는 것이 비교적 이상적이다.    황산의 운해   만약 운해의 고도가 1600m 이하일 때는 황하이강(黃海崗)·우핑로우(玉屛樓)에서 난하이를, 칭량타이(淸凉臺)·스신펑(始信峰)에서 베이하이를, 바이어링(白鵝嶺)·공양산(貢陽山)에서 동하이를, 파이윈팅(排云亭)·페이라이스(飛來石)에서 시하이를, 핑톈펑(平天峰)·광밍딩(光明頂)·아오위펑(鼇魚峰)에서 톈하이(天海)를 감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만약 운해의 고도가 1600m에서 1800m 사이일 때는 황산의 몇 개 대주봉, 즉 리엔후와펑(蓮花峰)·리엔조우펑(煉舟峰)·톈두펑(天都峰)·광밍딩(光明頂)·스먼펑(石門峰)·치스펑(棋石峰)·바이어펑(白鵝峰)·공양산(貢陽山)의 산꼭대기에 올라 운해를 볼 수 있다.   중국기상청의 통계에 따르면, 황산에 출현하는 불광은 매월 평균 2∼5차례로 비교적 자주 나타난다. 불광은 빛과 수증기가 조화를 이뤄 동그랗게 만들어 지는 일종의 신기루다.    황산 불광 출현의 황금 시기는 비가 온 후 갠 날 오전 9시 이전과 비가 내리고 갠 날 저녁 5시 이후이다. 황산의 불광을 감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지역은 톈두펑(天都峰)·바이어펑(白鵝峰)·위핑로우(玉屛樓) 주변·칭량타이(淸凉臺) 위·톈하이(天海) 펑황송(鳳凰松) 주변·푸롱펑(芙蓉峰)·추이웨이펑(翠微峰) 등이다.    일반적으로 모두 해발 1600m 이상에 위치한다. 만약 상술된 소개를 근거로 가장 좋은 시각과 이상적인 지역을 잡을 수 있다면, 자신의 그림자가 불광의 오색찬란한 빛의 고리 속에 비추어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날 수 있다.    주요 여행지로는 페이추이쿠(翡翠谷 비취곡)가 있다. 산 아래 골짜기인데 이 골짜기는 황산 동부의 계곡으로 연인의 계곡(情人谷)으로 불린다. 물은 황산 정상부인 롄두안펑(練丹峰)과 시신펑(始信峰) 등지에서 흘러나온 물이다.  비취곡   40여 개의 연못이 특히 아름답다. 이곳에서 영화 〈와호장룡〉을 촬영하기도 했다. 탕코우에서 빵차로 왕복할 수 있다.    굉밍딩(光明頂 광명정)은 황산의 두 번째 봉우리로 1860m다. 이곳에서 사방의 황산 운해를 볼 수 있고, 정상부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명나라 때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유적만 남아 있고, 그 자리는 기상대가 차지하고 있다.    일출을 보기에도 적격인 장소다. 톈하이(天海), 위핑루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서 등산을 시작한다.    롄화펑(蓮花峰 연화봉)은 위핑루 북쪽에 위치하며, 1864m지만 황산은 물론이고 화동지방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다. 옌화링(蓮花嶺)에서 롄화펑으로 가는 1.5km는 페이롱쏭(飛龍松), 다오꽈쏭(倒쮽松) 등 소나무와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길이다.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톈무산(天目山), 서쪽으로 루산(蘆山)을 북쪽으로는 지우화산(九華山)과 창지앙(長江)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잉커쏭(迎客松 영객송)은 위핑루좌측에 있는 소나무다. 돌에 의지해 선 높이 10m, 두께 64cm의 이 나무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커쏭   손님을 맞는 소나무라는 이름과 명성 때문에 손님을 반기는 많은 집에서 이 소나무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외국 원수 접객장소인 안후이팅(安徽廳)에 있는 거대한 철화(鐵畵)를 비롯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수령은 800년가량이고, 한쪽 가지가 나와 있는데, 그것이 마치 어깨를 내밀어 손님을 반기는 모양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톈두펑(天都峰 천도봉)은 위핑루와 즈광거 사이의 등산로에서 약간 우회한 위치에 있는 봉우리로 황산 제 3봉이다. 1830m로 롄화펑보다 낮지만 산세가 험준한 난코스다. 베이하이 쪽에서 늦게 출발할 경우 이곳을 보기 힘드므로 이곳을 보기 원한다면 베이하이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5-04
  • 옌탕산, 서하객이 꼽은 최고의 명산
    옌탕산(雁蕩山)은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그 기록을 남긴 서하객이 최고로 꼽은 산이다. 옌탕산이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명산은 맞지만 서하객은 왜 중국 최고의 명산으로 옌탕산을 꼽았을까?    서하객 동상이 있는 옌탕산 여행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는 추억이 결부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서하객은 옌탕산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옌탕산으로 가는 길은 남쪽인 원저우에서 가든, 북쪽인 닝보 방향에서 가든 바닷가 길을 따라간다. 주봉(해발 1000m)인 옌후강(雁湖崗) 위에 호수가 있는데 이곳에 갈대가 많이 자라 흡사 광활한 평원과 같고, 가을에는 기러기들이 이곳에 머물기 때문에 옌탕(雁蕩)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황산보다 이곳을 꼽는 이가 많을 만큼 이름이 높다. 옌탕산은 아직까지 인간의 손길이 덜 미친 자연이 빚어낸 것들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따롱치우(大龍湫)폭포, 링옌(靈岩) 페이두(飛渡), 링펑(靈峰) 야경은 옌탕산의 3대 절경으로 옌탕산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곳이다. 옌탕산 여행의 가장 좋은 시기는 비가 많은 계절인 5~6월 혹은 8~9월이다. 단, 웬저우는 이 시기 자주 태풍이 있다. 비 온 후 맑게 갠 날을 선택하여 여행을 하면 옌탕의 3대 절경을 더욱 잘 감상할 수 있다.  링펑(靈峰 영봉)은 암석이 보여주는 기이한 봉우리와 동굴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다. 중국 유일의 밤에 보는 산 경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링펑 우선 주차장을 출발해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호젓한 여행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맑은 물이 흘러서 산에 온 느낌을 더한다. 앞으로는 울울한 바위로 된 병풍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15분쯤 가면 맑은 못 위에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가 펼쳐진 궈허싼징(果盒三景)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사원이자 링펑의 중심인 합장봉(合掌峰)이 있다.    어두워지면 합장봉 아래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보면서 여러 가지 문양을 즐긴다. 밑에서 하늘을 보면 바위의 문양이 만드는 형상들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링펑 야경인데, 중국의 산 가운데서 밤에 산 그림자로 만든 유일한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링펑 야경은 여행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링옌(靈岩 영암)은 9㎢ 지역으로 여행지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지만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이다. 16개의 봉, 12개의 동굴, 22개의 암석, 5개의 산봉우리, 3개의 문, 3개의 골짜기 등의 볼거리가 있다.    링옌 ,링옌의 중심은 입구에 있는 링옌스다. 아담한 사찰인 링옌스는 우리나라 부안 내소사를 닮은 모양으로 뒤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는 사찰이다.    앞에는 난톈먼(南天門)으로 불리는 봉우리가 있다. 흥미로운 곳은 이곳에서 하루에 두 차례씩 시연되는 공연이다. 수백 미터 높이의 이 봉우리에서 한 사람이 밧줄에 의지해 내려오면서 바위 중간에 있는 약초를 채집하는 장면과 200m 거리인 두 봉우리 사이에 걸린 외줄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시연한다.    여행자들은 아래에서 하늘 높이 펼처진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공연의 가장 좋은 자리는 링옌스 옆 찻집들인데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본다.    링옌스를 벗어나 조금 더 산길을 걸으면 샤오롱치우가 있다. 샤오롱치우는 따롱치우에 버금가는 폭포로 200m 낙차가 인상적이다. 샤오롱치우로 가는 길 오른쪽에는 엘리베이터로 정상부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엘리베이터로 200m를 올라가면 정상부에 닿는다. 조금 걸으면 왼쪽으로 샤오롱치우도 볼 수 있고, 샤오롱치우로 물이 가는 작은 못이 있다.    따롱치우(大龍湫 대용추)는 옌탕산 중서부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시네이구’(西內谷)라고 불렸다. 16개의 봉, 5개의 암석, 3개의 동굴, 4개의 봉우리, 5개의 폭포 등 모두 71개의 풍경이 있다.    이곳은 물의 경치를 주로 하고, 그중에서도 따롱치우 폭포는 ‘산중 제일의 기관(奇觀)’이다. 가는 길에는 많은 묵객들이 써 놓은 글들을 볼 수 있다.    바윗길을 지나면 웅장한 기상의 따롱치우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를 제대로 보려면 비가 풍성한 계절이어야 하는데, 비가 온 후엔 200m 낙차의 따롱치우 폭포는 마치 거대한 용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30
  • 지우화산-신라의 왕자 김교각 스님이 머무른 곳
    북으로는 중국 문화의 젖줄인 창지앙(長江)이 흐른다. 남으로는 중국 최고의 명산인 황산이 자리하고 있다, 어찌보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운 산이 지우화산이다.   하지만 1300년전 중국으로 건너간 신라왕자 김교각에 의해 이 산은 존재가치를 확실히 인정받았다. 그래서 그곳을 향하는 마음은 항상 어떤 뿌듯한 마음과 함께 정감이 있다.    안후이 서부의 칭양(靑陽)현 성의 서남부에 위치한 중국 불교 4대 명산으로 가장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있어 참배자도 가장 많다. 이 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톈타이(天臺)이다.    톈타이 경치   톈타이 일출은 중국인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경치 중 하나다. 시선 이백은 아홉 봉우리의 모습이 연꽃과 같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이 톈타이에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만든 이가 김교각이다.    신라의 왕자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의 화신이 되어 절의 번성에 큰 기여를 했다. 특산품으로 지우화 운무차(雲霧茶), 황징(黃精), 천축(인도의 옛 이름) 젓가락, 종이 부채 등이 있다.    산대나무, 겨울 표고버섯, 채소를 원료로 하여 만든 ‘지우화쑤스’(九華素食)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지우화산에 가는 가장 독특한 코스는 상류의 우한(武漢), 지우지앙(九江)이나 하류의 난징(南京)에서 창지앙 유람선을 타고, 츠저우(池州)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지우화산에 가는 방법이다.    츠저우에서 지우화산까지는 53km 남짓이고, 안칭(安慶)항에서도 지우화산으로 가는 차가 있으며 약 122㎞다. 둘째 난징(南京)에서 기차로 통링(銅陵)시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지우화지에에 갈 수 있다. 거리는 92㎞.    셋째, 항저우(杭州)에서 기차를 타고 황산에 이른 후, 황산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지우화산으로 간다. 난징 중앙먼창투치처짠(中央門長途汽車站)에서 지우화산행 버스가 있는데, 4시간 정도면 산문에 닿는다.    톈타이(天臺) 고배경대 허페이(合肥)나 상하이 등지에서도 지우화산행 버스가 운행된다. 내부는 2곳에 케이블카가 운행한다.(케이블카는 대기 시간이 짧은 귀빈 통로가 있다)    로우션바오뎬(肉身寶殿)은 지우화산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794년 김교각 스님이 열반한 후 부도(浮屠)의 법에 따라 시신을 항아리에 담아서 선광링에 두었다. 3년 후 시신을 전각에 탑을 두고, 다시 그 탑 안에 항아리를 두는 방식으로 이 전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우션바오뎬이다.    육신보전   화청스(化城寺)는 김교각 스님과 인연이 있는 또 다른 명승으로 지우화산의 대표 사찰이다. 이곳은 지장보살을 모시는 사찰로 지우화산의 총림이다.    동진(東晋) 시대에 창건했는데, 당대에 더 커졌다. 이곳에는 랑랑타(娘娘塔)가 있다. 랑랑타 옆에는 한 우물이 있다. 이 랑랑타와 우물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김교각 스님을 사랑하던 신라 여인이 고생 끝에 지우화산을 찾아왔다. 그녀는 김 스님이 출가해 승려가 된 것을 보고, 너무 고통스러워 우물에 투신해 자진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스님이 탑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김 스님이 지우화산에 온 후 김 스님 부친이 피살됐다. 때문에 모친이 지우화산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그가 출가한 것을 보고, 슬픔에 3일 밤낮을 울다가 눈이 멀었다. 그런데 이 우물로 눈을 씻고 나서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설이 있다. 때문에 이 우물은 명안천(明眼泉)이라고도 한다. 이런 전설은 얼셩뎬(二聖殿) 등지에 널리 퍼져 있다.    톈타이(天臺)는 지우화산 경치의 중심이다. 톈타이는 해발 1306m로 지우화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다. 이곳은 일출로 유명하다. 케이블카로 올라가 톈타이를 비롯해 연화봉, 사자봉, 관음봉 등 다양한 산들의 풍경을 볼 수있다.    불교 성지의 지우화산이 아닌 자연경관으로도 빼어난 지우화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지우화산에는 톈타이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화타이(花臺)를 비롯해 자연 경관으로도 유명한 곳이 많다.  ■지장보살로 추앙받은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   김교각 스님   우리나라 불교도들에게 지우화산이 남다른 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김교각(金喬覺. 696~794) 스님이 지우화산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던 김 스님에 관한 진위가 2002년 6월 김교각 스님의 형상을 본뜬 금인이 발견됨으로써 그 종지부를 찍었다. 이 금인은 당나라 황제 숙종(肅宗)이 757년(지덕 2년) 스님의 신앙세계를 높이 받들어 하사한 것으로, 당시 스님의 법력을 짐작케 한다.    김 스님은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나 스물네 살에 출가해 중국을 방문했다. 스님은 당의 수도 장안성을 여행하면서 발전된 문화는 물론이고 많은 이들과 교분을 쌓는 한편 중국 최초의 사찰인 뤄양 바이마스를 방문해 고승들과 친견했다.    스님은 샤오린스를 찾아 달마대사의 선종에도 관심을 가진 후 지우화산으로 향해 수행을 시작했다.    그는 명성을 얻어 99세에 열반했는데, 열반한 지 3년 후에 관을 열어보니 생불 상태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각을 만들어 스님의 시신을 안치했다.    이런 김 스님의 수행은 지우화산이 중국 불교 4대 명산으로 성장하는 틀거리를 만들었다. 그에 대한 경외심은 지금도 이어져 스님을 추앙하고자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지장보살상(높이 155m)이 건립 중이며, 중국의 사찰마다 지장전에 스님의 상을 모시고 있다.    자비의 부처인 지장보살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으나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무불(無佛)의 시대에 육도(六道)의 중생을 교화, 구제하기 위해 이를 포기한 보살을 말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8
  • 안후이-명산의 높이만큼이나 깊은 중국 고전의 보고
    지리나 문화, 역사 등등으로 봤을 때 안후이는 참 신비한 성(省)이다. 성의 남중부는 중국의 대표 강인 창지앙이 관통하고 있고, 북중부는 화이허(淮河)가 관통한다.    남북 450km 사이에 거대한 강이 두 개나 관통하고, 거기에 남쪽에는 지우화산이 황산 같이 제법 큰 줄기의 산이 있는데 한 성이다. 화이허는 과거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의 바로 그 회수다.    지우화산(九華山)의 텐타이 풍경   사실 필자가 안후이를 돌아본 여정도 이런 지형처럼 갈기갈기 찢겨 있다. 남부에 있는 황산 인근은 유명한 산이라 일찍 여행을 했고 이후에도 다섯 차례 정도 여행했다.    반면에 허페이(合肥)나 펑푸(蚌埠)는 수년전 화이허 대홍수 때 취재차 들렀다. 북서부의 보저우(뛰州)는 지난해 최우석 삼성 부회장님과 삼국지 답사를 위해 들렀으니 지형만큼이나 내 방문 역사도 다양하다.    사실 삼국지의 배경이 되던 시기에도 안후이의 북쪽은 조조가 장악하던 위(魏)나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쉽게 보면 초반기에 유비가 잠시 머물던 쉬저우(徐州)의 영역인데, 유비는 장비의 음주로 이곳을 여포에 빼앗기고 곧 조조가 이곳을 장악한다.    반면에 창지앙은 원술의 땅이었다가 후에 손권이 찾아서 오(吳)나라의 땅으로 삼는 지역이다. 역사만큼이나 여행지도 천양천색인 만큼 안후이는 그 점을 감안하고 여행해야 한다. 큰 여행지는 황산, 지우화산밖에 없지만 다양한 문화의 교차지답게 다양한 문화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산의 옥병루   안후이의 행정 성도는 허페이지만 여행의 도시는 황산이다. “오악(五岳)을 보고 난 후엔 다른 산이 보이지 않지만, 황산을 보고 난 후엔 오악조차 보이지 않는다(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 “황산을 보지 않고 천하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 등 황산에 대한 미사여구는 끝이 없다.    하지만 황산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황산의 아래 마을들에서 수천년간 자라난 중국 인문학의 향기다.    이 지역 여행은 안후이성 중부에 자리한 지우화산에서 시작한다. 지우화산은 신라 스님 김교각 스님을 모신 중국 4대 불교 명산 가운데 하나다.    실크로드를 통해 각고의 노력으로 들어온 중국 불교의 소문을 듣고 신라의 많은 이들이 중국에 몰려든다. 그 가운데는 혜초와 같이 다시 경전의 탄생지인 인도로 간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현장(玄裝 602 ~ 664) 등이 가져온 경전을 연구하고, 스스로 불교를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교각(696~794) 스님이다. 구화산 대부분의 명소는 김교각 스님과 인연이 있다.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혈혈단신 중원을 다니다가 지우화산에 이르러 전설이 되어버린 그를 느끼면서 다니는 여행은 독특한 감상을 줄 것이다.  황산은 앞서 말했듯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산이다. 황산은 안후이성의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보통 들르는 광밍딩에서 즈광거까지의 코스도 2일 여행 코스로는 최적이지만 시하이따샤쿠, 톈두펑 등의 산 위 명소와 페이추이쿠 등 산 아래 명소를 가진 천하 명산이다.    황산의 장점은 사계절 다양한 느낌이 있고,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산 아래에서 도화와 유채꽃이 피고 찻잎을 따는 봄은 신춘을 느끼는 최고의 명소다.    여름은 나무들의 울울함 속에서 더위를 피하는 적소다. 가을은 산 아래 나무들이 독특한 색을 뿜어내고, 겨울은 황산송과 대나무들에 설화가 깃든다. 특히 겨울에는 황산의 명물인 운해를 더욱 쉽게 만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황산의 아래에는 홍춘, 시티, 툰시, 시셴 등의 수백 년 전통의 옛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후이저우(徽州)로 불리는 황산 아래 마을은 지앙시 성에 속하지만 역시 후이저우의 일부인 우셴(등縣)을 비롯해 황산 아래 포진한 많은 마을을 말한다.   후이저우(徽州)의 시디 풍경   이 마을들은 중국 지성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과거 합격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이들이 이곳 마을의 합작 결과였고, 호설암 등은 독특한 장사 수완으로 중국 장사의 최고봉을 이뤘다.    이름하여 휘상(徽商)이라 불리는 이들은 화동뿐만 아니라 중앙에 다양한 문화를 알려줬다. 베이징 덕으로 불리는 오리요리나 경극으로 불리는 전통 공연의 뿌리도 이곳이다. 이 때문에 후이저우 문화는 티베트학, 돈황학과 더불어 중국 3대 지역학으로 꼽히고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8
  • 샤먼, 중국 동남부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샤먼(厦門)은 중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선발할 때 결코 빠지는 적이 없는 도시다. 남방의 도시지만 바다가 있어 비교적 쾌적하기 때문에 겨울 휴양지로 빠지지 않는다.    샤먼 야경   또 북방의 과일 도시가 옌타이라면 샤먼 남방 과일의 대표 도시로 과일 박람회가 열릴 만큼 물자가 풍부한 곳이다.  샤먼은 작은 섬이 고리를 이루고 물이 감돌며, 경치가 좋고 기후가 적당하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고 꽃이 피어 ‘해상화원’이라고 불린다.    백로가 서식하여 ‘루다오’(鷺島)라고도 불린다. 샤먼 시는 샤먼다오(厦門島), 구랑위(鼓浪嶼), 지메이전(集美鎭), 씽린취(杏林區), 통안셴(同安縣) 및 주위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난푸투오스(南普陀寺 남보타사)는 우펑산(五峰山) 아래에 있는 천년고찰이다. 샤먼 대학의 맞은 편뙤에 있다. 당(唐)나라 때 만들어졌으며, 관음보살을 모시는 절이다.    난푸투오스(南普陀寺 남보타사)   음력 2월 19일, 6월 19일, 9월 19일 관음 탄신일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성대한 행사를 벌인다. 안에는 민난(뙤南佛學院)이 있다.   르광옌(日光岩 일광암)은 샤먼의 내륙 쪽에 자리한 구랑위(鼓浪嶼)의 중부에 자리한 바위다. 해발 92.68m지만 이곳의 최고봉이다. 1647년 정성공(鄭成功)이 이곳을 보고 일본 닛코산(日光山)을 닮아서 ‘황(晃)자를 새겼는데, 이로부터 이름이 유래됐다.    이 바위는 직경 40m의 거대한 바위로 샤먼의 상징과 같은 바위다. 주변에는 구피슈동(古避暑洞), 수이자오타이(水操台), 정성공기념관 등은 물론이고 역대 마애석각의 문화도 볼 수 있다.    르광옌(日光岩 일광암)   정성공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명이 청나라에 망하자 반청복명 운동을 펼쳤다. 나중에 대만을 점령해 이곳을 기반으로 청을 공격했지만 급사했다.    아오위안(鰲)은 원래 해변의 작은 섬이었고, 이곳에 아오토우궁(鰲頭宮)이라는 작은 사원이 있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 사원을 파괴했는데 1950년 천지아칭(陳嘉庚)이 복원했다.   장저우는 푸젠성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대만 해협과 인접하여, 샤먼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며, 동북쪽으로는 추엔저우(泉州)와 접하며, 서북쪽으로는 롱옌(龍岩)과 접하고, 서남쪽으로는 광둥(廣東)의 산머리와 인접해 있다.    장저우산 장저우의 유명한 역사 문화의 도시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산, 바다, 암석, 동굴, 정자, 비석, 절, 사당, 다리, 나무, 꽃, 과일 등이 모여 아름답고 특색 있는 여행지가 되고 있다.    장저우의 대명사 가운데 편자황이 있다. 편자황은 원래 명나라 때 궁궐 비방이었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 어의는 장저우에 내려와 스님이 되어 비방을 세상에 알렸다.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이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편자황은 향료, 뱀 쓸개 등의 많은 종류의 귀중한 약재를 엄선해 만든다. 칼에 벤 상처나 타박상, 골절, 화상, 간염, 신장염, 중독, 각종 염증에 탁월한 효험을 보인다.    장저우를 여행한다면 편자황을 꼭 기억하자. 편자황의 가격은 차이가 많지만 이곳에서 샀을 때, 효과를 더 신뢰할 수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4
  • 우이산, 명차와 명산이 빚어낸 풍경
    우이산은 조선시대 학자 율곡 이이가 지인 ‘무이구곡가’로 익숙한 지명이다. 율곡이 이곳을 배경으로 시를 지은 것은 주희가 이곳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남부의 푸젠에 있는데다 산 깊은 곳에 있어서 쉽게 가지 않는 여행지다. 우이산의 첫 인상은 정말 여행지로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우이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지들이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이산에서 제일 주목받는 흥밋거리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구곡계를 래프팅하는 것이다. 넓이 약 2m, 길이 약 9m의 오래된 대나무 뗏목 두개를 엮은 뗏목을 타고 약 9.5km의 구곡 시내를 물결 따라 아래로 가는 것이다.    구곡계   시냇물의 속도가 완만하다가도 갑자기 급해지는 것이 마치 대나무 뗏목이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한 봉우리 한 봉우리를 지나가면서 스릴을 만끽하면서 양 옆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우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차다. 바위 위에서 자라는 차나무에서 나온 차로 만든 우이암차(武夷岩茶)는 우이산의 토산품이다. 우이암차의 품종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 ‘따홍빠오’(大紅袍)가 제일 유명하다.    지우취시(九曲溪 구곡계)는 우이산 자연보호구역인 황강산(黃崗山) 남쪽 기슭에 있다.   무이구곡가는 1곡에서 시작하지만 래프팅은 9곡부터 거슬러 내려간다. 한 시간여의 래프팅은 맑은 물과 산수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다. 강가의 바위에는 그 굽이가 표기되어 있다. 가는 길에 사공이 각기 설명을 한다. 때로는 수십 미터 깊이인 용소를 지나고 강가 바위는 개구리, 낙타 등 삼라만상의 형상이 있다.    톈요우펑의 옆을 지나는 육곡(六曲), 벼랑에 관을 안장한 현관(縣棺)을 볼 수 있는 삼곡(三曲), 옥녀봉과 만나는 이곡(二曲)이 인상적이지만 어느 곳 하나 버릴 수 없는 명승이 펼쳐진다. 특히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벼랑으로만 되어 있어 등반할 수 없기 때문에 옥녀봉(玉女峰)의 오롯한 자태가 더 인상적이다.    우이궁(武夷宮 무이궁)은 따왕펑(大王峰)을 뒷배경으로 서 있는 조용한 정원 같은 곳이다. 과거에는 도교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우이산과 연관된 명인들의 흔적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당(唐) 천보연간(天寶年間, 742∼755년)에 만들어졌다가 송대에는 300칸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전각이 그리 많지 않다. 우선은 우이산의 명인들을 모신 완니엔궁(万年宮)을 봐야 한다.    건물의 주변에는 우이산 관련 인물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전시관 밖에는 대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거대한 정원이 펼쳐진다. 한쪽에는 송나라 거리를 재현한 쑹지에(宋街)가 있고, 한쪽에는 유영(柳永 987∼1053)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 유영은 북송(北宋)의 문인으로 송사(宋詞) 풍의 긴 산문을 썼으며 문집으로 <악장집(樂章集)>이 있다.    유영 전시관 앞으로 펼쳐진 쑹지에는 말 그대로 송나라를 재현한 거리다. 다양한 기념품들과 우이산 특산인 차 등을 판매한다.     따홍바오(大紅袍 대홍포)는 사실 우이산의 따홍파오라는 명차도 있지만, 황제의 차를 생산하는 위차위안(御茶園), 바위에서 자라는 암차(岩茶) 등은 중국 차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가장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따홍바오   바위 사이로 난 벼랑 같은 길을 타고 20분쯤 걷는데 옆에는 옛 선인들이 남긴 글씨들이 붉게 치장되어 발길을 잡는다. 다시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따홍파오가 나타난다. 따홍파오는 한 바위에서 자라는 두 대에 걸친 차나무들을 말한다. 바위 아래에도 후손 같은 차나무들이 있지만 바위에 있는 앞대의 명성을 따를 수 없다.    선학(仙鶴)이 멀리 봉래섬(蓬萊島)에서 종자를 가져와 이 벼랑이 심었다는 전설과 천심사(天心寺)의 스님이 이 찻잎으로 황제의 병을 치료해 황제가 붉은 가사(紅袍)를 선물했는데, 이후 붉은색의 차 성분을 띠게 됐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야 전설일 것이고 보아 하니 뒤에 있는 바위가 붉은색 성분을 머금은 것 같은데, 그곳에 뿌리를 박고 자라서 차를 우리면 붉은색을 띠는 것 같다. 차 중에서 성인으로 불리는 이 차는 반 정도 발효시킨 우롱차 계열인데, 따홍파오에서 무성생식시킨 차를 따홍파오라고 부른다.    좋은 차들은 사실 대만이나 홍콩의 차 애호가들이 대부분 구입해 간다. 특히 따홍파오는 이제 보호 차나무로 지정되어 차 수확을 전혀 못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2007년 5월에 마지막으로 찻잎을 채취했는데 그 마지막 찻잎은 중국 국가발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톈요우펑(天遊峰 천유봉)은 우이산에서 가장 상징적인 봉오리다. 해발 410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 전체가 바위고 한쪽이 벼랑이어서 독특한 모습을 자랑한다. 위에 올라서면 우이산의 선경이 펼쳐진다.    톈요우펑(天遊峰 천유봉)   서하객도 “어찌 이곳에 와 구곡의 승경을 보지 않고, 이 봉이 제일이라 하랴”(其不臨溪而能盡九曲之勝,此峰故第一也)고 말했다. 정상을 오른 후에는 가파른 바윗길보다는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것도 좋다. 이 길은 과거 장쩨스(장개석)가 방문했을 때 가마를 타고 올라오기 위해 급히 닦은 길이라고 한다. 올라오는 길과 달리 완만한 편이어서 가마를 타고 올 만도 했다.    주시지니엔관(朱熹紀念館 주희기념관)는 우리 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주희가 가장 오랫동안 머물던 곳이 우이산이다. 지우취시 중간으로 난 다리를 지나서, 톈요우펑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주시지니엔관으로 가는 길이 있다.    주시지니엔관(朱熹紀念館 주희기념관)   이곳은 주시위앤(朱熹園)으로 불린다. 주희(朱熹 1130~1200)는 조선시대 우리 학단에서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그 주희의 가장 중요한 활동 범위가 우이산이어서 우리 조상들도 우이산에 대한 흠모가 대단했다.    사실 다녀와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면서도 수많은 서화(書畵)에 우이산이 등장한다. 주희와 같은 제목의 ‘무이구곡가’를 퇴계 이황이 썼고, 역시 비슷한 생각에서 율곡도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주희가 머문 ‘무이정사’나 우이산의 봉우리에서 따온 암자들이 많다.    퇴계의 경우 이 무이구곡가의 전계에 따라 수양이나 학문의 단계를 말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는데, 이럴 정도로 화제가 된 산이고, 우리 지식인들이 꼭 다녀가 보고 싶었던 산이다.    주시지니엔관은 그런 주희를 잘 설명한 곳이다. 전시장 안은 주희 시절에 강학했던 학당의 벽이 보존되어 있어 애틋한 감정을 준다. 주자학이 한국이나 일본 등에 끼친 영향도 설명되어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1
  • 푸투오산(普陀山), 바다위에 만들어진 불국
    현대는 수많은 생각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여행자는 때로 한가지의 생각 속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가도가도 끝없는 티벳 고산에 빠지고, 역사 자신만을 바라보며 갈 수 있는 사막을 염원한다.    중국 4대 불교 명산에 들어가는 푸투오산은 불교라는 바탕만 두고 가면 된다. 불교가 철저히 구현되어 있는 섬이기에 그런 느낌이 더 강렬하다. 항저우에서 동쪽으로 100㎞ 거리에 있다.    불교가 철저히 구현되어 있는 섬, 푸투오산   중심인 푸딩산(佛頂山)은 전성기 때 218개의 절이 있었던 불교의 고향이다. 섬에 있어 해천불국(海天佛國)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안에는 다양한 사찰이 있는데, 명말청초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사실 이곳의 사원들은 하나가 천개이고, 천개가 하나다. 한 사원만 자세히 볼 수 있으면 굳이 모든 사원을 둘러볼 필요가 없다. 물론 한 사원에 대한 이해를 마친 여행자는 더 많은 사원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천개의 사원을 봐도 그중에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여행은 헛된 것이다.      또 원나라때 다보탑(多寶塔), 명나라 때 관음비(觀音碑), 청초의 구룡전(九龍殿)은 특히 유명하다. 최근에 푸른돌에 세긴 오백나한탑이나 33미터 높이의 난하이관인(南海觀音) 동상, 청동주조의 동대전(銅大殿)도 새로운 명물이 됐다.    33미터 높이의 난하이관인(南海觀音) 동상   난하이관인리상(南海觀音立像 남해관음입상)은 쑤앙펑산(雙峰山)남쪽에 세운 관음보살상이다. 3층으로 되어 있으며, 총 높이는 33미터인데 그중 불상은 18미터의 높이다. 연대는 2미터고, 그 기반이 되는 초석은 13미터인데, 넓이가 5500평방미터다. 1996년 음력 9월 19일 기공해 1997년 준공했다.    바이부샤(百步沙 백보사)는 바오타 동쪽 100미터 해변에 있다. 남북으로 600미터쯤 되는데 자오양둥 북쪽 치엔부샤와 대조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200미터면 해변이다. 푸딩산(佛頂山 불정산)은 푸투오산의 주봉이다. 해발 291.3미터고 올라가서 푸투오산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파위찬스(法雨禪寺 법우선사)는 푸투오산에서 두 번째로 큰 절이다. 백화등 왼쪽, 광시봉 밑에 자리잡고 있다.    명나라 만력 8년(1580)에 건축을 시작하여 청나라 강희제 38년(1699년)에 완공해 지금까지 절의 기능을 하고 있다. 천왕궁전, 옥불궁전, 원통궁전, 대웅보궁전, 장경집 등이 있다.    푸지찬스(普濟禪寺 보제선사)는 백화당 남쪽, 영주봉 밑에 자리잡고 있다. 송나라 때 건립된 관음불사다.    푸지찬스(普濟禪寺 보제선사)   푸투오산의 교통은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우선 조우산(舟山) 북부 주지아지엔(朱家尖) 섬 북쪽에 푸투오공항이 만들어져, 베이징, 샤먼, 산토우, 상하이, 난징, 칭다오와 항공편이 있다.    고속버스가 푸투오산 가는 부두인 선지아먼(沈家門)까지 운행하고 있다. 푸투오산으로 가는 배편은 보통 상하이와 닝보에서 운행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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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1
  •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절경, 중국 동남
    중국 지도를 봤을 때 상하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곳은 왠지 낯설다. 그 낯섦은 지명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닝보, 원저우(溫州), 푸저우(福州), 추안저우(泉州), 샤먼(夏門) 같은 도시는 물론이고 옌탕산이나 우이산도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여행이 거의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옌탕산   하지만 이곳은 결코 우리와 먼 도시만은 아니다. 닝보의 옛 지명은 명주(明州)로 송과 육로가 막힌 고려는 배를 통해 이곳과 적지 않은 교류를 했다. 그 아래인 추안저우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도시에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교류가 가장 명확해진 것은 최부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다. 1487년 죄를 짓고 도망간 이들을 잡는 임무를 띠고 제주로 파견된 최부는 고향 나주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부음을 듣는다.    35세의 그는 태풍이 채 그치기도 전 뱃군들에게 지시해 육지로 가는 배를 출발시킨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는 표류하고, 천신만고 끝에 중국 동부의 한 해안에 닿는다.    처음에는 왜구로 오해받아 고통을 겪지만 그의 신분이 밝혀지자 황명으로 길을 출발해 중국 동부를 지나서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그 기록이 〈표해록〉인데 〈동방견문록〉, 〈하멜 표류기〉와 더불어 세계 3대 여행기로 꼽히는 명작이다.    최부의 표해록 그가 도착한 곳은 지금의 저지앙성 린하이(臨海)다. 구글 어스에서 제주에서 린하이까지는 직접 거리로 재어 보면 720km 정도니 적지 않은 바닷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멀다고만 할 수 없는 길이다.    사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이 길을 다니던 무역 항로가 적지 않았으니 아주 가까운 길이다. 실제로 저지앙이나 푸지엔에는 우리 민족이 모여 살던 신라방이나 고려촌 같은 지역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곳이 필자를 가슴조이게 하는 것은 서하객이란 인물 때문이다. 이 중국 동남해안의 가장 위쪽에는 중국 불교 4대 명산인 푸투오산이 있다.    푸투오산은 바다 위에 만들어진 불교 명산으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원저우 인근에는 옌탕산이 있다. 중국 여행의 살아 있는 신화인 서하객(徐霞客 1586~1641)이 가장 좋아했던 곳이 옌탕산이고, 그에 못지않게 좋아했던 곳이 우이산이다.    그는 수차례씩 이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탐험가답게 다양한 코스를 개발했다. 중국 여행가의 대명사인 서하객은 항상 여행을 꿈꾸는 기자에게 있어서도 가장 흠모할 만한 인물이다.    명 만력제 14년(1587년)에 지앙쑤성 지앙인(江陰)에서 태어난 서하객(원명 홍조弘祖)은 아버지가 강도들에게 피습당해 죽는다.    거기에 서하객이 살던 지앙인 인근 우시(無錫)에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이 있었는데, 이곳이 동림당이 처음 생겨난 곳이다.    동림당은 만력제 때 강압정치에 반대하던 학자 출신의 거사 집단이다. 훗날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탄압(1625∼1626)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학파인데, 학문과 의지가 뭉쳐진 학문 그룹이다.    서하객도 이 동림당에 심취해서 학문을 배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왕씨는 아들의 운명을 감지했는지 직조업으로 돈을 벌어서 아들의 여행을 권장한다.    거기에 결혼한 허씨가 아들만을 남기고 죽자, 그는 서서히 여행에 심취한다. 당시에는 쉽지 않은 길이었던 광시나 윈난까지의 여행을 감행하는데,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탐구욕도 강해서 점차 탐험가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많은 곳을 찾았지만 서하객이 가장 사랑했던 곳은 옌탕산이었다. 1613년 첫 번째로 옌탕산을 찾은 후 그는 1632년에 두 번 옌탕산을 찾았다. 화산이 바닷가에서 분출해 다양한 모습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상으로도 가치가 있는 산이다.    서하객은 옌탕산의 산길에서도 탐험가의 소질을 발휘해 롱비(龍鼻)동굴 등을 발견했으며, 낙차 197m의 거대한 폭포인 따롱추(大龍湫) 폭포의 발원지도 산길을 직접 헤매어 적어 놓았다.    서하객은 그밖에도 톈타이산(天台山), 황산, 우이산, 루산 등은 물론이고 베이징이나 멀리는 광시, 윈난까지 들르는 여행가의 면모를 보였다.    일행은 우선 따롱추를 봤다. 물이 많지 않았지만 197m 위에서 쏟아지는 한 줄기 물길이 바람을 따라 호수 위에 괘적을 남기고 있었다.  따롱추   서하객의 여행기는 훗날 집안이 청조의 침입으로 몰락하면서 화재 등으로 거의 소실됐다. 그런데 서하객이 죽은 지 43년 후에 그의 기록을 정리해서 다양한 여행기를 펴낸 이가 이기(李奇)다.    이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건륭 41년인 1776년에 〈서하객 유기(徐霞客 遊記)〉가 출간된다. 그런데 이기는 서하객이 고향에 잠시 들렀을 때 정을 나누었는데, 서하객이 다시 여행을 떠난 후 집에서 쫓겨나 재가한 후 태어난 아들이었다.    성씨도 다르고,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흔적을 쫓아서 펴낸 가족사의 아이러니가 인상적이다. 사실 그의 어머니도 그 시간에 쫓겨나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더 미묘한 느낌이 든다.    사실 푸젠 성 추안저우(泉州)나 저지앙 원저우(溫州), 명주(明州)로 불리던 닝보(寧波) 등은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와 많은 교류가 있었던 도시들이다.    폐쇄적인 국가 정책과 왜구의 강세로 교류가 끊어지면서 미리 나온 정착민은 고향을 잊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들은 봄이면 고향땅으로 휠휠 날아가는 제비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을까. 그 제비들의 여정을 생각하며 선잠에 빠져들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15
  • 베이징 여행, 자신의 키워드를 찾아라
    베이징의 대표 여행지는 황제의 궁전인 구궁,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톈탄, 황제들의 여름 궁전인 이허위안 등이다.    물론 이곳은 중요한 여행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곳들은 그저 지나치는 여행지가 될 가능성이 많다. 때문에 필자는 자신에 맞게 베이징 여행의 테마를 정하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그를 위해서는 패키지 여행보다는 자유여행을 선택하길 권한다.    기본 준비가 끝났다면 자신에게 맞는 여행지를 찾아야 한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지를 찾아야 한다. 우선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후통(胡同)을 권한다.    베이징 시내에 존재하는 작은 골목인 후통을 돌아볼수 있는 인력거   후통은 베이징 시내에 존재하는 작은 골목들을 말한다. 왕푸징의 동서나 스차하이의 주변의 후통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은 현재 베이징인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베이징을 잘 느낄 수 있다. 건축학도처럼 건물에 관심이 있다면 베이징스구이화짠란관(北京市規劃展覽館)을 봐야 한다.    이곳은 베이징 시의 도시계획을 상세히 전시한 곳으로 간단한 과거 흐름은 물론이고 10년, 20년 동안 베이징의 도시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 수 있다.    1층에는 뒤에 옌산(燕山) 산맥을 병풍 삼아 펼쳐진 베이징 평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형 공간이다. 2층은 좀더 좁혀 베이징 시내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벽에 1000:1로 제작된 높이 10m, 넓이 9m의 청동판에 1949년도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3층은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고성의 변천이나 중심 오피스타운 모형 등 각종 형태로 베이징의 핵심 계획을 설명한다.    4층으로 가면 2020년까지 베이징 시가 어떻게 발전할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교통 계획, 녹화 계획, 2020년까지 도시 발전 순서, 3D 전시실 등을 볼 수 있다.    문학도라면 유명인들의 옛집에 꼭 들러봐야 한다. 궈모루(곽말약), 루쉰(노신), 마오둔(무순), 라오서(노사), 량치차오(양계초), 캉요웨이(강유위) 등을 찾아보면 한결 더 그 문인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은 연암 박지원, 단재 신채호, 김산, 이광수, 김원봉 등 많은 우리 선인들도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그런 장소를 찾아서 자신만의 여행을 설계하는 것도 여행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할 것이다.    예술인 거리 중 하나인 따산즈(大山子)   미술인이라면 따산즈(大山子), 지우창(酒廠), 환티에(環鐵), 쑹좡(宋庄) 등으로 나누어진 예술인 거리 가운데 취향에 맞추어서 한두 곳 찾아볼 필요가 있다. 또 도심에 있는 화랑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여행길에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지난해 개관한 궈지아따쥐위안(國家大劇院)도 둘러보면 좋다. 이곳은 저녁에는 공연장으로 쓰이지만 낮에는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오픈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내부에는 중국 음악이나 공연 전반을 전시한 공간들도 있어서 꼭 봐야 할 곳 가운데 하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동선을 짜는 것이다. 미리 정보를 충분히 얻어서 여행을 간다면 중간에 실수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을 만들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베이징을 한 번에 다 보고 오겠다는 생각보다는 두 차례 정도로 나누어서 편안하고 유익한 여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코스를 기획하는 게 좋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 오피니언
    2020-04-07
  • 샹그릴라-천개의 달이 뜨는 호수와 만년설
    여행자들의 천국 리지앙에서 4시간 육로로 티벳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중디엔(中甸)에 닿는다. 이제 이곳의 행정명은 샹그릴라다.    그들은 1933년 발표된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인 샹그릴라(香格里拉)가 그곳이라 선전한다.    쑹찬린스서 바라 본 샹그릴라 사실 운남과 쓰촨, 티벳으로 이어지는 고산지역은 모두 샹그릴라의 특색을 갖고 있다. 라마교, 모계사회, 만년설산 등이 이곳의 특징이다. 어찌보면 누추한 티벳인들의 삶이 어색하지만 맑은 하늘을 보고, 오체투지로 포탈라궁이나 근처 라마교 사원을 찾는 이들을 보면 샹그릴라가 그곳이라 해도 크게 부정하고 싶지 않다.    샹그릴라는 해발 4000m 이상 되는 설산이 470개나 있고, 세계에서 제일 깊은 협곡인 후토샤(虎跳峽)가 있는 곳이다. 중원으로 흘러드는 창지앙디이완(長江第一灣)이 여기에 있다.    윈난에서 규모가 제일 큰 장족 불교 사원인 거단(丹), 숭잔린스(松贊林寺), 둥주린스(東竹林寺), 나파하이(納룔海), 비구톈디(碧沽天地), 취안타이(泉臺), 바이수이타이(白水臺) 등이 있는 이곳은 조용하고 우아하며 식물이 많고, 아무 오염도 되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만년설산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민둥산을 드러내고, 동충하초나 천마, 홍경천, 설차 등 희귀 약초는 갈수록 채집량이 줄어든다. 때문에 그들은 샹그릴라의 붕괴를 예감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샹그릴라 주변에 있는 몇 개의 호수가 중요한 여행지다. 비타하이(碧塔海 벽탑해)도 그중 하나인데 중뎬현 동쪽 25km에 있다. 비타(碧塔)는 ‘푸른색의 탑’이라는 의미다.   비타하이(碧塔海 벽탑해) 또 호수에는 각종 희귀한 물고기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비타하이(碧塔海)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은 중뎬에서 솽치아오(雙橋)로 간다. 솽차오에서 직접 말을 타거나 걸어서 8km쯤 가면 비타하이에 도착한다. 여름철에 이 길은 풀이 우거져 있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다른 한 가지는 솽차오에서 차를 타고 12km 가면 마루탕(馬鹿塘)에 도착한다. 여기서 약 2km 걸으면 비타하이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보거나, 후시초디엔(湖西草甸) 장(藏)족 거주 지역에 갈 수도 있다. 한적한 호수에서 올라오는 길은 짧지만 숨차다.    바이수이타이(白水臺 백수대)는 비타하이를 더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바이수이타이는 중뎬현 동남쪽 100km 산바샹 바이디촌(白地村)에 있다. 여기는 중뎬 나시족의 주요 거주지의 하나다.    중국 고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동파(東巴)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다. 해발 2380m로, 바이수이타이는 탄산칼슘 백색 침적물이 형성한 곳인데 약 3km2를 차지하는 계단 모양으로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매년 2월 8일에는 나시족들이 ‘차오바이수이(朝白水)’라는 행사를 벌이는데 나시족들이 모여 가무와 음식,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쳰후산(千湖山 천호산)은 중뎬에서 뎬장(甸藏)공로를 따라 남쪽으로 50km 가면 샤오중뎬샹(小中甸鄕) 투안지에촌(團結村)에 있다. 쳰후산은 장족어로 라무둥춰(拉姆冬措)로 발음된다. 신녀들이나 여신선들이 노닐었다는 뜻에서 선뉘쳰후(神女千湖) 혹은 셴뉘쳰후(仙女千湖)로 불린다.    호수는 해발이 3900~4000m나 되는데 여러 개로 나누어졌다. 산비하이(三碧海) 다헤이하이(大黑海)를 중심으로 사방 150㎡의 면적의 호수가 1000개가 넘는다. 이 호수들은 각각의 모습을 달리하는데, 이러한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관찰하는 것도 볼 만하다.    중뎬에서 차마고도를 따라 가다 보면 둥주린스(東竹林寺 동죽림사)를 만난다. 캉취스산린(康區十三林) 중의 하나인 거단(丹) 둥주린스(東竹林寺)도 이 지역의 주된 여행지 가운데 하나다.    둥주린스는 1667년 청나라 강희제 때 건설되었다. 초기에는 작은 절이었으나 청나라 말에는 이미 승려가 700여 명, 생불 10명으로 늘어났다. 가는 길에 바이망쉬에산(白茫雪山)을 만난다.    윈난성에서 면적이 제일 크고 해발이 제일 높다. 열대 원시 삼림으로 여름이 여행하기 제일 좋은 계절이다. 이때는 도로 옆에 눈이 녹아 많은 곳에 물이 고이며, 진달래가 무성하며, 여러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원숭이들의 재롱은 또 다른 볼거리다.    메리쉐산(梅里雪山 메이설산)은 샹그릴라 설산 가운데 가장 빼어난 봉우리다. 티베트불교 니마파(尼瑪派)의 분파인 가쥐파(枷居派)의 수호신이 있는 산이다.    메리쉐산(梅里雪山 메이설산) 태자13봉으로 불리는 13개의 봉우리가 좌우로 펼쳐진 모습이 장경인데 그중 최고봉인 가와격박(佧瓦格博)는 6740m로 아직 아무도 등정하지 못한 처녀지다. 장족어(藏族語)로 설산의 신이라는 뜻이다.    이 산을 가장 보기 좋은 계절은 1~5월이다. 그 외 계절은 구름이 많아서 보기가 힘들다. 산이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샹그릴라에서 출발할 경우 더친에 약간 못미친 지역부터 더친을 지나서 있는 페이라이스 인근이다.    페이라이스가 있는 지역과 설산의 사이에는 란창강이 지난다. 따라서 페이라이스에서 설산까지는 직선 거리로 15km 정도인데 날이 맑으면 산의 전경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환호하게 한다. 산의 전경을 보는 페이라이스에서 다시 차를 타고 굽이 굽이 산길을 타고 하산해 난창강을 지나면 밍융빙추안을 비롯해 설산 아래 지역들을 만날 수 있다.    밍융빙추안이 이곳의 대표 트레킹 코스다. 주차장에서 중간 기점인 타이즈먀오(太子廟)라는 사당까지는 일반인이 걸어서 2시간 반 정도 걸리고 말이 2시간쯤 걸린다. 말은 주차장에서 1인 150위안 정도에 흥정하는데 잘 깎아주지 않는다.    일행이 지쳤다면 갈 때는 말을 타고, 올때는 걸어오는 것도 좋다. 타이즈먀오에서 30~50분쯤 걸어야 빙천 아래에 도착한다. 온난화로 만년설 지역이 갈수록 위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반도를 닮은 만년빙화가 신비롭다.    글=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01
  • 리지앙-세계 유일 상형 문자가 통용되는 곳
    리지앙은 한번 도착하면 결코 떠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다.    리지앙고성  고성의 중앙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그 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은 그 물로 아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밤이 되면 소망을 실은 종이배가 떠다닌다.    리지앙의 중심부에 있는 리지앙구청(麗江古城)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형 문자가 통용되는 곳으로도 알려졌다.    사방 10km에 달하는 고주택가인 구청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 미래와 현재를 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일상 탈출을 꿈꾸는 수많은 자유 여행자들의 집결지기도 하다.    이곳은 좀 비싼 구역으로 맑은 물가로 난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마음에 드는 여행객을 찾는 곳이다.  리지앙에서 제일 이름 있는 음식 거리는 스팡지에(四方街) 옆에 있다.    스팡지에(四方街)에서 다시치아오(大西橋)에 이르는 길가에 수십 개의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다. 길옆에서 가게를 하는 음식점들은 싸궈미판(砂鍋米飯)과 주미시엔(煮米線)으로 사람을 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거리를 ‘리지앙미셴지에’(麗江米線街)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지앙의 야경   리지앙의 야시장은 구청에서 나와 신따지에 산차 골목 일대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자들은 구운 감자, 구운 닭날개 등을 맛볼 수 있다.  위룽쉬에산(玉龍雪山 옥룡설산)은 리지앙구청에서 15km 떨어져 있다. 맑은 날은 고성의 기와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름처럼 거대한 옥룡이 승천하는 듯한 자태를 뽐낸다.    안에는 윈산핑(云杉坪), 바이수이허(白水河), 간하이즈(甘海子), 빙타린(氷塔林) 등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여행자들은 보통 윈산핑이나 간하이즈를 선택해서 옥룡설산을 여행한다.    바이수이허(白水河)는 우아한 시골이다. 나무들이 무성하며, 샘물이 흐른다. 이곳 샘물은 높은 곳에 있거나, 폭포처럼 움직이거나, 움직임이 없는 것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바이수이(白水) 강변에는 주차장 음식점, 윈산핑으로 가는 리프트도 있다.    간하이즈는 위룽산 동쪽의 큰 풀숲이다. 매년 봄과 여름이 교차될 때는 백화가 만발하다. 간하이즈에는 휴가지와 위룽쉬에산 빙천 근처로 가는 대형 리프트가 있다. 유람객들은 리프트를 타고 눈의 발원지에 가서 만 년 정도 되는 빙타린을 볼 수 있으며, 스키도 탈 수 있다.     현지 여행사에서는 보통 하루에 5개 지역을 여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윈산핑은 위룽산 동쪽에 있는 약 1km 되는 풀숲이다. 설산이 한쪽에 서 있고 주위에는 천 년의 윈산(云杉)림이 있다.    이곳에 가길 원하는 여행자들을 아침 8시에 위취안빈관(玉泉賓館) 북쪽의 아리바바(阿里巴巴)호텔에서 다쥐에 가는 미니 버스를 타고 산핑(杉坪)에서 내리면 된다. 윈산핑(云杉坪)-위펑스(玉峰寺)-바이사비화(白沙壁畵)-헤이롱탄(黑龍潭)-리지앙구청(麗江古城). 이 패키지는 아름다운 설산과 나시, 장족, 이족 등 소수 민족들의 춤을 볼 수 있다.   리지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는 구청에서 느끼는 밤의 낭만도 있지만 후탸오샤의 트레킹도 빼놓을 수 없다. 후탸오샤(虎跳峽 호도협)는 창지앙의 상류인 진사지앙은 위롱쉐산(玉龍雪山)과 하바쉐산(哈巴雪山) 사이에서 깊은 골짜기를 이룬 곳이다.    후탸오샤   후탸오샤의 총거리는 17km고, 상하 차이가 200m다. 하지만 중간에 가장 높은 지점은 2670m로 적지 않은 경사를 갖고 있다. 일반트레킹 길인 능선은 강과 3km가량 떨어져 사이좋게 흐르고 있다. 강은 물길이 웅장해 아름답고 능선은 아름다운 산 풍경과 멀리 펼쳐진 설산이 조화를 이뤄, 세계 트레킹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로 꼽힌다.    여행지는 보통 상류 치아오토우(橋頭 행정명 후탸오샤전(虎渡峽鎭))를 기점으로 보는데, 입구에 큰 돌이 강 중심에 누워 있는데 급류가 30m 넓이의 돌 옆으로 흘러내린다. 파도 소리는 하늘을 놀라게 하고, 물은 흰 거품을 뿜는다고 표현한다.    옛날에 호랑이들이 강 중심에 있는 돌을 디디면서 강변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후탸오샤’(虎跳峽)라는 이름이 생겼다. 여행은 보통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루 만에 여행을 마칠 수 있는 강변길과 2박 3일이 걸리는 능선 트레킹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도 출발점은 보통 상류와 하류인 치아오토우와 따쥐(大具)로 구분한다. 따쥐로 갈 경우 위에롱쉐산을 건널 때 입장료를 징수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치아오토우에서 트레킹을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발 2680m에 위치한 루구후(瀘沽湖 노고호)는 리지앙 지구 닝랑이주(寧같彛族) 자치현에 자리 잡고 있다. 현존 유일의 모계 사회라고 해서 많이 알려진 곳이다.    루구후는 산으로 둘러싸인 중간에 있는 고원 호수인데 호수 면적은 50㎢, 평균 깊이는 40m이고 제일 깊은 곳은 93m다. 넓은 호수가 기온을 조절하여 사계절이 봄 같다. 온도는 20℃ 정도이고 강수량이 적다.    루구후 중심지인 루어수이춘(落水村)에서 저녁이면 불놀이에 참가할 수 있다. 아침에 하는 루어수이(落水) 여행은 말 타고  산오르기, 씨름, 전통 배타기 등이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리거다오(里格島), 융닝(永寧), 혹은 스촨다주이(四川大嘴), 줘수어(左所)에 가볼 수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 오피니언
    2020-03-31
  • 시솽반나-차마고도가 시작되는 작은 태국
    태국어로 시솽(西雙)은 12란 숫자며, 반나(版納)는 3만 평의 밭을 가리킨다. 평균 해발고도가 2000여 미터가 넘는 운남이면서 해발 고도가 해수면과 같은 이곳은 그래서 이방의 땅 같은 곳이다.    반나 황금상 하지만 이곳이 보이차(普洱茶)의 고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차나무가 자생했고, 차를 보관하기 힘들었던 이곳의 지형은 보이차라는 독특한 차 세계를 만들었다. 중국 발효차의 대명사가 됐고, 이제 한국에도 마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솽반나는 윈난의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다. 겨울에는 리지앙을 넘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솽반나가 여행자들에게 좋다. 중국 내륙 소수 문화뿐만 아니라 태국, 라오스 등 주변 국가들의 정취가 같이 혼융되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솽반나 징훙 징훙(景紅 경홍)은 시솽반나의 주요 지역이다. 징훙시는 민족풍 정원으로 도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외안네이(園內)에는 여우타이(有泰), 허니(哈尼), 지누오(基諾), 뿌랑(布郞), 야오(瑤) 등의 민족전람관과 민주꺼우창(民族歌舞場), 민주티위창(民族體育場)이 있다.    전통 결혼의 소개, 떠우지(斗鷄), 퍼우수이(潑水), 띠우바오(去包), 코끼리(大象)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춘환공위안(春歡公園)은 타이위족 말로 해석하면 ‘영혼의 화원’이라고 한다. 또 만팅꿍위안(曼聽公園)라고도 한다. 열대약용식물원(熱帶藥用植物園)에 악어호수(鰐魚湖)가 있어, 악어와 코끼리의 공연도 볼 수 있다.   열대약용식물원 코끼리 징홍을 기점으로 여행할 경우 몇 개의 노선이 있다. 시셴징홍(西線景洪)에서 다러중셴(打洛中緬) 변경 방향은 징쩐빠지아오딩(景眞八角亭) 경진팔각정 멍하이(덟海)행 버스를 타면 된다. 미얀마의 샤오멍라시장(小덟拉市場)을 볼 수 있고 쇼핑도 하고 민속 공연도 볼 수 있다. 왕복 270km다.    둥셴징홍(東線景洪)은 샤오멍룬(小덟侖)으로 간다. 배를 타고 란창지앙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전원 풍경과 멍바라왕국(덟巴拉王國)의 궁전, 사찰, 궁정무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아침 시장, 쇼핑, 멍룬식물원(덟侖植物園)을 볼 수 있다.    난셴징홍(南線景洪)은 240지에베이(界碑)로 가는 방향이다. 여행 자원이 많은데 만페이롱순타(曼飛龍筍塔 5위안), 다멍롱헤이다(大덟龍黑塔)를 본 후 소가에서 온천욕을 한다. 변경 무역시장에서 쇼핑도 할 수 있으며, 왕복 160km로 징홍에서 멍롱행 차를 타면 된다.    베이셴징홍(北線景洪)은 산차허로 간다. 산차허산린공위안은 야생 코끼리 계곡(野象谷)이라고도 한다. 민속 관광 케이블카를 타고 야생 코끼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징홍에서 관핑(關坪)으로 간 후 택시로 산차후 야상쿠로 간다.  최근 들어 ‘차마고도’라는 말은 많이 알려졌다. 하나는 푸얼차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그 원산지인 시솽반나에 관심이 몰렸기 때문이다. 푸얼차의 고향인 도시 자체가 푸얼인 징홍 옆의 한 도시다.    이곳에서 만든 차들은 일정한 발효 과정을 거친 후 마방으로 불리는 상단에 따라 티베트, 인도로 전해졌는데 이 길이 바로 차마고도다. 푸얼을 기점으로 따리-리지앙 수허(束河), 펀즈란(奔子欄) 등도 차마고도의 주요 도시다.    차마고도가 유명세를 탄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하게 방송된 다큐멘터리 덕분일 것이다. 거대한 협곡의 장경 속에서 고단한 인생을 그린 이 다큐는 많은 호응을 받았고 차마고도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 오피니언
    2020-03-17
  • 베이징 - 전세계 음식의 살아 있는 전시장
      베이징의 장점은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대부분 음식을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선 베이징 요리의 대표인 베이징 덕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따통카오야   필자는 베이징 카오야를 먹었다고 하려면 취엔쥐더(全聚德)을 권한다. 취엔쥐더는 베이징 카오야의 대표주자다. 취엔쥐더는 이미 베이징에만 10여 곳이 자리하고 있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필자는 치엔쥐더 본점인 치엔먼점을 비롯해 허핑먼뎬, 왕푸징뎬, 톈안먼광창뎬, 야윈춘뎬, 징신따샤뎬 등에서 취엔쥐더를 맛보았다.    사실 아주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장소와 약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치엔먼 본점이다. 그렇다고 모두 취엔쥐더에만 치중할 필요는 없다.    이미 몇 곳의 분점을 낸 따통카오야뎬이나 폔이팡카오야뎬도 가게 이름처럼 비교적 저렴하게 좋은 품질의 카오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음으로 먹어야 할 요리는 훠궈다. 일단 훠궈는 넓게 보면 쓰촨식 매운 샤부샤부인 훠궈와 베이징식 안 매운 샤부샤부인 쑤안양로우(풌羊肉)로 나눈다.    훠거  베이징에서 훠궈로 유명한 곳은 진산청(金山城), 바즈훠궈, 황청라오마(皇城老큙), 탄위토우훠궈(譚魚頭火鍋)등을 비롯해 많다.    반면에 안 매운 쑤안양로우는 베이징 출신의 동라이순(東來順)과 네이멍구에 본사가 있는 샤오페이양(小肥羊), 허베이 출신의 푸화페이뉴 등이 대표주자다.    동라이순은 우리나라 신선로를 닮은 그릇이 인상적이다. 샤오페이양은 소스로 먹는 마장(麻醬)이 인상적이다. 물론 고기 상태도 좋다.    푸화페이뉴는 베이징 인근 후이주(回族) 마을인 따창(大廠)에서 직영하는데 쇠고기의 질이 아주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후이주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소나 양만 먹는데 오랜 시간 동안 위생관념이 발달해 베이징인들도 이 점을 높이 산다.    음식은 쇼핑과 더불어 여행에 가장 큰 즐거움이다. 사실 수천 개의 베이징 음식점에서 꼭 가야 할 미식 다섯 곳을 뽑는 일은 무리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가 체험해보기 꼭 바라는 곳들을 소개한다. 쿵이지는 한국에도 체인이 있지만 베이징에도 있다. 스차하이 중 호우하이에 인접한 쿵이지(孔乙己)는 오래된 건물로 되어 있는 곳이다.    살아 있는 취샤(醉蝦)는 복잡한 심사를 주지만 데운 황주에 약간 짧조름한 샤오싱(紹興) 음식을 먹으면 루쉰이 된 느낌이 들어서 좋아한다.    동포로우(東坡肉)는 꼭 맛보시길 바란다. 웨루산우(岳麓山屋)는 스차하이 중 치엔하이 중간과 왕징에 있다. 우리처럼 매운 음식이라 느낌이 신선하다.    쿵이지 동파육   딩타이펑(鼎泰)은 널리 알려진 딤섬 체인이다. 좀 찾기가 힘들지만 맛도 좋고 분위기도 괜찮다. 아판티는 베이징에서 가장 개성 있는 음식점 중 하나다.    신장 음식점이지만 공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환상적인 미모의 공연자들이 시선을 잡는다. 신장산 와인과 독특한 향의 양꼬치도 잊지 말아야 할 메뉴다.    거쌍메이둬(格桑梅)는 캐나다 대사관 맞은편에 있는 티베트 음식점이다. 음식도 특색 있지만 인테리어나 공연으로 신비한 느낌을 더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 오피니언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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