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생명 일탈회계·지속가능성 기준 논의 앞둔 시점에, 원장 선임 절차 돌연 중단
- 김남근 “회계기준원 독립성 훼손되면 자본시장 신뢰 흔들릴 것”
국가 회계기준을 제정하는 한국회계기준원(KASB)의 차기 원장 선임 절차가 돌연 중단되면서, 회계 투명성과 제도 개혁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시기 연기를 요청한 뒤 추천 절차가 멈춘 점을 두고,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특히 최근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적용 논란과 대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추진 등 회계개혁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라, 회계기준원의 중립성과 전문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성북을)이 확보한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추천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10월 2일 열린 제1차 회의에서 위원회는 당일 논의 예정이던 ▲후보 추천 방법 ▲심사 기준 ▲차기 일정 결정 등 핵심 안건을 모두 보류하고, 후보 추천 절차를 중단시켰다.
위원회는 오히려 정관 및 운영규정 개정을 요구하며 “현직 원장의 추천위원회 참여를 배제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직 원장은 2001년 이후 관례적으로 추천위원회에 참여해왔으나, 이날 회의에서는 원장을 퇴장시킨 채 회의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25일 회계기준원에 별다른 사유 없이 신임 원장 추천 시기를 연기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요청이 원장추천위원회의 파행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국회계기준원은 금융감독원, 거래소, 공인회계사회, 생명보험협회, 전국은행연합회 등 14개 회원기관이 분담금을 납부해 재정을 꾸리는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금융위원회의 일부 권한을 위임받아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IMF 권고에 따라 설립됐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회계기준 제정기구를 둘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으며, 이에 따라 회계기준원은 1999년 출범했다.
이후 국제회계기준(IFRS)을 국내 현실에 맞게 적용한 K-IFRS 제정, 그리고 지난해 신설된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운영 등을 통해 회계 투명성 강화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그 설립 취지인 ‘독립성 확보’가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 개혁 앞두고 제동 걸리나
이번 논란은 특히 최근 금융권을 뒤흔든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문제와 맞물려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을 장기간 예외 인정받아온 ‘일탈회계’를 언제 정상화할지 여부가 보험계약자와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이와 동시에 대기업들이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강화에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회계기준원 원장 선임이 지연되면 제도 개혁 자체가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원장에 선임될 경우, 회계기준원이 정부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남근 의원은 “회계기준원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려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회계 전문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기존 제도를 존중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또 “이번 사안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 대기업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회계 투명성 개혁이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이 회계제도의 신뢰를 지킬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한다.
25년 전 IMF의 교훈으로 세운 ‘독립된 회계기준원’이 다시 흔들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와 국민경제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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