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와 세계화의 그늘, 미래 세대에 남겨진 숙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님, 당신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1980년대 영국을 대대적으로 개혁했습니다.
그때 총리님이 집무실 책상에 올려두고 교과서로 삼았던 책이 바로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의 명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이었죠.
총리님은 하이예크의 주장, 즉 정부의 계획과 개입은 결국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는 믿음 위에 ‘대처리즘’을 세웠습니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했고, 규제를 풀었으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정책, 곧 ‘대처리즘’이라 불렸습니다.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을 듯도 합니다. 1970년대 영국은 ‘병든 유럽의 환자’라 불릴 만큼 위기에 빠져 있었으니까요.
워낙 강성인 노조들의 파업에 온 국가는 마비되었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의 허상이 국가 재정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렸으니 말이죠.
1975년, 보수당 대표가 된 직후 총리님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하이예크의 책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당신은 하이예크의 사상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했었죠.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총리님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리님, 아직도 하이예크의 시장 만능주의를 믿습니까?”
문제는 고혈압 환자에게 과도한 양의 강력한 약을 투여한 것과 같았다는 점입니다. 병은 잡았지만, 정작 몸의 생기까지 함께 잃어버린 것이죠.
광산과 공장의 비효율은 사라졌지만, 그 대가로 한 세대의 노동자들과 지역 공동체가 함께 희생당했습니다.
‘국가의 부담’은 줄었지만 ‘개인의 불안’은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의 아버지 같은 중산층 노동자들의 몰락 말입니다.
◆ 시장이 낳은 ‘승자독식’의 길
하이예크는 시장이 스스로 효율적이고 공정한 ‘자생적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을수록 개인의 자유와 경제는 꽃핀다는 논리죠.
실제로 대처리즘은 한동안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작용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총리님이 굳게 믿었던 자유 시장과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Globalization)’는 막대한 부를 창출했습니다.
하지만 그 부는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규제 완화는 초국가적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게 했고, 기업들은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옮겼습니다.
그 결과 기술과 자본을 가진 소수의 ‘승자’만이 막대한 부를 가져가고, 나머지 다수는 그 혜택에서 소외되는 ‘승자독식(Winner-Take-All)’ 구조가 심화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금융회사들이 런던으로 몰려와 돈잔치를 하는 동안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네요.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한 채 부모의 집에 얹혀 살고 있습니다. 예전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대도시로 나가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되었죠.
하이예크는 ‘노예의 길’을 경고했지만, 현실은 ‘겉잡을 수 없는 불평등의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 위기 앞에서 무너진 시장의 신뢰
자유 시장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시장의 탐욕과 규제 실패가 빚어낸 거대한 위기를 막아선 것은 시장이 아니라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은 정부의 긴급 개입이 아니던가요? 자생적 질서가 아닌 거대한 공적 자금만이 시장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의 팬데믹과 공급망 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효율’만을 추구하며 전 세계에 촘촘하게 엮었던 공급망은 단 한 번의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글로벌 생산 라인이 끊길 리 없다”고 자신하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죠.
이제 각국은 단순히 싼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안정적인 자국 내 생산(Resilience)’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습니다.
대만의 TSMC와 삼성 반도체 공장이 미국으로 불려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장을 짓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자유와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여겼던 하이예크의 처방이 오늘날 ‘안보’와 ‘회복 탄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 앞에서 재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 미래 세대의 불안과 고립주의의 역설
시장이 낳은 불평등과 위기의 반복은 결국 극단적인 정치적 흐름을 낳았습니다.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는 미국의 고립주의와 유럽의 포퓰리즘을 키우게 되는 것이죠.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는 결국 브렉시트(Brexit)와 같은 고립주의를 탄생시켰다니까요? (총리님은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 노동자들과 유럽의 저숙련 노동자들은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세계화의 ‘승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삶은 세계화 덕분에 좋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외의 값싼 노동력과의 경쟁으로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대형 쇼핑센터의 옷값과 장난감 값은 쌀지언정, 직장을 잃는 결과였다고 할까요?
하이예크와 총리께서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자유’는 강하게 신봉했던 정책의 부작용 때문에 오히려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세계화는 후퇴하고,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미래 세대에게는 더욱 암울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서
대처 총리님, 이제 우리는 시장이 모든 문제의 답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처방은 광산과 공장의 비효율을 잡았지만, 그 대가로 한 세대의 노동자들과 지역 공동체가 함께 희생당했습니다. ‘국가의 부담’은 줄었지만 ‘개인의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당신께 “아직도 하이예크의 시장 만능주의를 믿습니까?”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그 답변은 이미 불평등과 위기에 놓인 우리의 암울한 현실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죠.
진정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렇습니다.
“‘국가의 독재’도, ‘시장의 폭력’도 아닌,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회복을 함께 이루는 제3의 길은 없는 것일까?”
대처 총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대처리즘은 20세기의 문제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21세기의 복잡한 문제, 즉 기후 변화,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저출산 등은 오직 자유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은 하이예크의 자유주의와 무조건적인 국가 개입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것입니다. 시장의 창의성을 존중하되 그 성과가 모두에게 분배되도록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포용적 시장경제(Inclusive Market Economy)’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자유를 위해 시장을 강조했지만, 이제 우리는 시장의 부작용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지켜내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이 들어야 할 경고
총리님, 이것은 이제 영국의 유산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이예크식 경쟁의 그늘과 케인즈식 복지의 한계를 동시에 목격한 우리는 시장의 효율성과 사회의 연대성을 동시에 추구할 새로운 공식을 찾아야 합니다.
거대 플랫폼 독점과 청년 실업의 늪에서 우리는 단순한 규제나 복지가 아닌 ‘창의적 기회의 확산’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합니다.
중소기업 생태계 조성, 공정한 기회 보장, 그리고 지속 가능한 복지 모델을 하나로 엮는 ‘한국형 새 사회계약’을 서둘러 설계해야 하고요.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우리는 ‘다 함께 잘사는 경제’가 유일한 생존 전략임을 깨닫고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불안 속에서 디지털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 위기 속에서, 그리고 기후 위기가 에너지와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가운데 우리는 ‘안전하면서도 혁신적인 사회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45년 전 대처 총리께서 하이예크의 책을 펼쳤듯 우리는 이 모든 과제를 아우르는 청사진을 당장 손에 쥐어야 합니다.
총리의 ‘대처리즘’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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