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투어는 왜 트립닷컴의 광고 문구에 칼을 빼들었나
- 일상적 문구 논란 뒤에 숨은 OTA 주도권 싸움
국내 여행업계 1위 사업자인 하나투어가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을 상대로 광고 문구 유사성을 문제 삼아 내용증명을 발송한 것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이를 단순한 브랜드 보호 차원을 넘어선 과도한 대응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가 된 트립닷컴의 슬로건 ‘떠나자, 트립을 믿고’는 하나투어가 팬데믹 이후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구축한 ‘떠나자, 하나만 믿고’ 캠페인과 문장 구조와 운율이 유사하다는 이유이다.
하나투어 측은 브랜드 인지도 구축에 약 100억 원이 투입된 만큼, 유사 카피가 영업상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광고·마케팅 업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약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떠나자’, ‘믿고’와 같은 표현은 여행업계 전반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돼 온 일상적 언어에 가깝고, 특정 기업만의 고유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수준의 문구 유사성까지 문제 삼기 시작하면, 여행업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광고 카피 자체가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의 초점은 문구의 유사성 자체보다도 하나투어가 선택한 대응 방식에 맞춰져 있다.
글로벌 플랫폼을 상대로 곧바로 내용증명이라는 법적 절차에 준하는 수단을 꺼내 든 것은, 창작권 보호라기보다 국내 1위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압박에 나선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행업계는 상품 구성과 프로모션, 광고 카피가 빠르게 닮아가는 구조적 특성을 가진 시장이다.
이런 환경에서 업계 선두 기업이 비교적 경미한 사안을 법적 문제로 끌고 갈 경우, 전체 시장에 위축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나투어가 강조한 ‘100억 원 마케팅 투자’ 논리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브랜드를 키웠다는 사실이 곧 일상적 표현에 대한 독점 권리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돈을 많이 썼다고 해서 보편적인 문구까지 브랜드 자산으로 묶을 수는 없다”거나 “그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자본력이 큰 기업일수록 언어 사용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번 논란은 브랜드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글로벌 OTA와의 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방어적 태도로 해석된다는 평가가 많다.
트립닷컴의 대응 역시 하나투어의 ‘승리’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립닷컴은 문제 제기 직후 해당 슬로건 사용을 중단하고 메시지를 수정했지만, 고의적 도용은 부인했고 공식 사과나 재발 방지 확약도 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잘못을 인정했다기보다는, 불필요한 논쟁을 키우지 않기 위해 한 발 물러선 것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하나투어가 얻은 것은 명확한 법적 판단도, 브랜드 우위에 대한 공식적 인정도 아닌 애매한 ‘논란 종결’에 그쳤다는 평가다.
이번 사안은 하나투어가 브랜드 보호의 기준을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 그리고 국내 1위 사업자로서 어떤 방식으로 시장 리더십을 행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진짜 강한 브랜드는 카피를 문제 삼기보다, 따라올 수 없는 상품과 경험으로 격차를 벌린다”고 말했다.
이번 ‘카피 논란’은 하나투어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쟁 환경 변화 속에서 국내 1위 사업자마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낸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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