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 판결 수용… 박근혜·윤석열 ‘표현의 자유’ 후퇴 논쟁 재점화
국가정보원(국정원)이 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자와 국민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 10월 17일 서울고등법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정원이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부당하게 배제하고 압박한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국정원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이번 사건으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분들과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오·남용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며,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7-2부는 배우 문성근, 방송인 김미화 등 문화예술인들이 2017년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와 이명박 전 대통령,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공동으로 원고들에게 각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권 비판 예술인들을 특정해 지원사업 배제, 방송 출연 제한, 프로그램 퇴출 등 불이익을 가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11월 7일 상고 포기 방침을 확정했다.
국정원은 이번 사과문에서 제도적 개선 사항도 함께 밝혔다. “2017년 국내정보 부서를 폐지했고, 2020년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통해 ‘정치개입 금지’, ‘국내 보안정보 삭제’ 등 비가역적 조치를 완료했다”며 “향후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유사한 형태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 사실이 국가조사와 법원 판결로 공식 확인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약 9,473명의 문화예술인과 46개 단체가 명단에 포함돼 있었으며, 세월호 추모 활동, 시국선언 참여, 정부 비판 발언 등을 이유로 배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재판에 넘겨졌으며, 법원은 “정권 비판 인사를 조직적으로 관리·배제한 것은 헌법질서를 위반한 범죄”라고 판단했다. 국가의 배상책임 역시 인정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공식적인 명단이나 문건은 공개된 적이 없지만, 예술계 내부에서는 지원 배제·전시 검열·예산 삭감 등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정권 비판 성향의 작가나 단체가 공공기관 사업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예술지원 구조가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으며, 심사위원 제도와 투명한 평가 절차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까지 반복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여전히 취약함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문화정책이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예술 지원에서 완전히 손을 떼거나, 독립적 심의 시스템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이날 사과문을 통해 “이번 사건으로 상처받은 문화예술인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국가권력의 오남용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과 사과를 계기로, 권력기관의 정치 개입 금지와 예술계 표현의 자유 보장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제도화될지가 향후 핵심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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