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한 아침, 완주로 향했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쯤. 익산역에서 다시 버스로 반 시간 더 달리니 삼례였다. 도시의 끝과 시골의 시작이 엇갈리는 곳, 풍경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주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있던 어떤 단어처럼 느껴졌다. 쉼, 혹은 멈춤.
삶이 조금 빠르다고 느껴질 때, 그 단어를 떠올리면 숨이 고르게 쉬어지는 기분이 든다.
삼례읍에는 오래된 창고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양곡이 수탈되던 흔적.
110년 전 지어진 창고는 여전히 그 시절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지금은 전시공간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예술을 보고,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소풍을 온다.
하지만 벽은 여전히 오래된 숨을 쉬는 듯했다.
“쉬어가삼(례).”
관광센터 벽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유치했지만, 그 말에 마음이 풀렸다.
자전거를 빌려 비비정으로 향했다. 1.2킬로미터, 전기자전거라 힘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까지는 무료다.
가을빛이 만경강을 따라 흘렀다. 기러기가 쉬어간다는 비비낙안, 이름만으로도 다정했다.
철교 위를 건너다 멈춘 예술열차 네 량이 보인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점심은 ‘새참수레’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한식 뷔페. 로컬푸드로 만든 음식이 정갈했다.
배가 고팠던 탓일까, 모두 허겁지겁 먹었다.
음식보다 따뜻한 건 그 자리의 공기였다. 다들 말이 적었고, 대신 웃음이 많았다.
오후에는 송광사로 향했다.
종남산 자락에 기대 앉은 절은 고요했다. 몇몇 건물은 복원 중이라 발길이 묶였지만, 그 또한 시간의 한 모양이었다.
절 한쪽의 백련다원 찻집에서 마신 쌍화차가 진하게 남았다.
달지 않고 따뜻했다. 입안보다 마음이 먼저 풀렸다.
완주는 분주함이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오직 여행공방 본부장과 군청 직원만이 서둘렀다. 나머지는 다 느려졌다.
누군가는 산을 찍고, 누군가는 찻잔을 찍었다. 모두가 조금씩 멈춰 있었다.
완주군의 특산품, 봉동의 생강밭에 들렀다
보리와 함께 키운 생강은 향이 강했다.
서울에서 자원봉사 온 대학생들이 웃으며 생강을 캐고 있었다.
흙 묻은 손, 밝은 얼굴. 이상하게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근처의 ‘커피한잔’이라는 카페에서 마신 생강차는 향이 깊었다.
얇게 썰어 설탕을 버무린 생강청말랭이는 달달했다.
네아이의 엄마인 사장님은 귀향 4년 차라 했다.
도시에서 내려와 이런 곳에서 커피를 내리는 일, 그 자체로 완주였다.
저녁은 ‘텐플러스’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벽면 가득 상장이 걸려 있었다. 쉐프는 말이 적었고, 음식이 대신 말을 했다.
감 샐러드, 알리오올리고파스타, 한우 불고기 피자.
지역의 재료들이 낯선 옷을 입고 나왔다.
이상하게 익숙하면서도 처음인 맛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봤다.
익산역까지 30분.
도시의 불빛이 가까워지는데, 초침은 여전히 느리게 움직였다.
그날 완주에서 배운 건, 느림이 아니라 ‘멈춤의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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