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을 대표하는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장기 법정 공방이 항소심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2017년 시작된 이 분쟁은 단순한 기업 간 소송을 넘어, 국내 바이오 산업에서 균주와 제조공정이 어디까지 보호받는 영업비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건의 출발점은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톡신 제품 ‘나보타’를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안착한 데 있다.
메디톡스는 이에 대해 대웅제약이 자사의 핵심 기술인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제조공정을 부정한 방식으로 취득·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 측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품질과 안정성을 좌우하는 것은 균주 자체와 이를 배양·정제하는 공정이며, 이 영역은 논문이나 특허로 모두 공개되지 않은 고도의 노하우이자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대웅제약이 해당 기술을 활용해 개발 기간을 비정상적으로 단축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반면 대웅제약은 균주 도용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보툴리눔균은 토양 등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며, 자사는 독자적으로 균주를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제조공정 역시 학술 논문과 업계에 공개된 기술, 그리고 자체 연구개발의 결과일 뿐 영업비밀로 보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후발주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술 침해로 단정할 수 없으며, 나보타의 성과는 정당한 연구개발의 결과라는 논리다.
이 사건의 흐름을 바꾼 것은 2023년 2월 선고된 1심 판결이었다. 법원은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취득·사용해 나보타 개발 기간을 단축했다고 판단하고, 약 400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동안 업계 안팎에서 제기돼 온 의혹이 법원의 판단을 통해 ‘영업비밀 침해’로 공식 인정된 셈이다. 다만 이 판결에 대해 양측 모두 불복하면서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왔다. 메디톡스는 손해액 산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고, 대웅제약은 침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판결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의 핵심은 균주 유사성 또는 동일성을 어느 수준까지 입증해야 법적으로 침해로 볼 수 있는지, 제조공정 중 어떤 부분까지 영업비밀로 보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손해배상액 산정이 적정했는지에 맞춰져 있다.
특히 이 사건은 과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단과도 맞물려 있다. ITC는 2020년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며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양측 합의로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국내 항소심 판결은 한국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두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내 바이오 산업 전반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항소심에서도 1심 판단이 유지될 경우, 바이오 분야에서 인력 이동과 후발주자의 기술 개발 방식에 강한 제약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1심 판결이 뒤집힌다면, 자연계 균주와 공개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발 전략이 보다 폭넓게 인정되며 기술 보호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분쟁은 특정 제품이나 기업을 넘어, 정당한 기술 경쟁과 영업비밀 침해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를 가르는 기준 재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항소심 판결은 손해배상 규모 이상의 의미를 갖고, 향후 한국 바이오 산업의 연구개발 전략과 기술 보호 질서를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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