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경북 영주시의 분만취약지 지원병원에서 출산 직후 산모가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병원은 매년 수억 원의 국비·지방비를 지원받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이었지만, 정작 응급 상황에서 사용 가능한 혈액조차 확보하지 못해 비극을 막지 못했다. 이 사고는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제도적 허점이 만든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숨진 산모의 남편은 이제 막 태어난 셋째 아이를 안고, 정부를 향해 청원에 나섰다. 그는 “아내는 고령 산모였지만 병원은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혈액도 없는 병원이 지원사업 대상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인재”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청원을 통해 “정부가 인구소멸지역에 더 높은 의료 수가를 보장해 민간 병원이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역별 가산수가 확대와 산모·영유아 의료 인프라 유치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복지부의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현지점검표’는 분만취약지 병원이 혈액형별로 적혈구 5파인트 이상을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 상황과 혈액 수급 사정에 따라 탄력적 운영 가능”이라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이 모호한 문구는 병원 측이 자의적으로 기준을 낮춰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줬고, 결국 사고 당일 산모에게 돌아갈 혈액은 없었다고 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본지의 취재에 혈액 준비 불찰을 시인했다. 위험 산모는 아니었기에 미리 준비 하진 못했고 오전에 다른 환자에 급히 사용했다고 밝혔다.
분만취약지 지원병원은 매년 지자체와 복지부의 점검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점검은 보조금 집행과 장비·시설 기준 위주로 진행돼, 응급 대응 역량이나 혈액 비축 실태는 사실상 방치됐다. “혈액을 조금만 보유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의 관행적 행정이 결국 한 산모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응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분만용 혈액을 별도 비축해야 함에도, 타과와 공유하며 책임을 방기했다”며 “복지부의 모호한 지침과 관리 부실이 맞물려 구조적 실패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주시의 경우, 2024년 한 해 출생아 330명 중 해당 병원에서 출산한 사례는 39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산모들은 대부분 안동이나 원주의 대형병원으로 ‘출산 원정’을 떠났다.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이래서 어떻게 안심하고 아이를 낳겠느냐”는 불신과 분노를 쏟아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의료사고를 넘어, 분만취약지 제도 전반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냈다. 형식적 점검, 모호한 지침, 실효성 없는 지원체계가 맞물려 생명을 지켜야 할 제도가 오히려 위험을 키운 셈이다.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명확한 혈액 보유 기준, 실효성 있는 점검, 응급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제도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출산 직후 수혈조차 받지 못해 아내를 잃었다”는 유족의 절규는, 개인적 비극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제도의 민낯을 드러냈다. 복지부의 허술한 지침과 병원의 부실 운영이 결합해 만들어낸 구조적 실패,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생명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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