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대한민국의 골목 상권은 거대한 디지털 물결 속에 있다. 필자가 몸담은 비스타컨설팅연구소는 지난 한 해 동안 스마트상점기술보급사업 전문기관(경기권역)으로서 수많은 현장을 누볐다.
서빙 로봇이 뜨거운 국밥을 나르고, 테이블 오더가 정확하게 주문을 받으며, AI가 식자재 재고를 관리하는 풍경은 이제 낯선 미래가 아닌 치열한 생존의 현주소가 되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스마트 기술의 성과는 명확했다. 구인난에 시달리던 사장님은 서빙 로봇 덕분에 한숨을 돌렸고, 주문 실수로 인한 고객 클레임은 키오스크 도입 이후 현격히 줄어들었다.
스마트 기술은 고물가·고임금 시대에 소상공인이 버틸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생존 파트너’이자, 가게 운영의 효율을 극대화해 준 혁신적인 도구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전문기관으로서 수많은 도입 매장을 모니터링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똑같은 최신 로봇과 키오스크를 도입했는데, 어떤 가게는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어떤 가게는 "편해지긴 했는데 손님은 그대로"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기술이 만들어준 ‘여유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한다. 스마트 상점의 목적이 ‘사람을 없애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 반복적이고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기계에 맡김으로써, 사장님이 ‘진짜 상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시간을 벌어주는 데 있다.
성공하는 스마트 상점의 사장님들은 기술을 통해 확보된 체력과 시간을 오롯이 고객에게 재투자한다. 과거에는 홀을 뛰어다니며 주문받고 서빙하느라 진이 빠져 손님 얼굴조차 제대로 못 봤다면, 이제는 그 일을 로봇과 태블릿에 맡긴다.
그리고 사장님은 그 시간에 테이블을 돌며 "오늘 고기 맛은 어떠세요?"라고 말을 건네고, 단골손님의 안부를 묻는다. 육체적 피로가 줄어드니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 미소는 곧 서비스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즉, ‘하이테크(High-Tech)’가 도입되었기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하이터치(High-Touch, 감성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스마트 상점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기술은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상인에게 인간다움을 되찾아주는 따뜻한 조력자다.
지난 몇 년간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노력으로 스마트 기술의 하드웨어적 보급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이제 2026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우리는 정책과 현장의 목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바로 ‘기술 활용의 고도화’다.
기기를 매장에 들여놓는 ‘설치(Installation)’가 1단계였다면, 이제는 그 기기를 통해 혁신된 운영 프로세스를 고객 만족으로 연결하는 ‘가치 창출(Value Creation)’의 2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서빙 로봇을 조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로봇이 서빙하는 동안 사장님은 어떤 멘트로 고객을 응대해야 만족도가 높아지는가"와 같은 ‘스마트 접객 매뉴얼’이 보급되어야 한다.
데이터 분석 기능을 켜는 법을 넘어, "AI가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가게만의 신메뉴를 기획하는 법"을 컨설팅해야 한다.
스마트 기술은 훌륭한 날개다. 하지만 그 날개를 달고 어디로 날아갈지는 결국 조종사인 소상공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우리 전문기관들의 역할 또한 단순히 기기를 보급하는 '전달자'에서, 기술을 통해 경영을 혁신하도록 돕는 '페이스메이커'로 진화해야 할 때다.
가끔 "기술 때문에 삭막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현장의 답은 다르다. 오히려 기술 덕분에 가게가 더 따뜻해질 수 있다.
무거운 쟁반을 나르느라 찡그렸던 사장님의 얼굴이 로봇 덕분에 펴졌다면, 그것만큼 따뜻한 변화가 어디 있겠는가.
소상공인에게 전할 말은 스마트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단순히 인건비 절감 도구로만 보지 말라는 점이다. 이는 주방과 카운터에 갇혀 잊고 지냈던 ‘장사의 본질’, 즉 고객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정책 입안자들께는 이렇게 제안드린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프라를 아주 잘 깔아왔다. 이제는 그 위에서 소상공인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2026년의 스마트 상점은 기계 소리만 요란한 곳이 아닐 것이다. AI와 로봇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그곳에서, 사장님은 가장 여유로운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 기술로 완성된 여유 속에 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곳.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골목 상권의 미래다.
약력
- 공공정책 연구 경력 21년, 정책분석평가사 1급, 소상공인지도사 1급
- 한국동행서비스협회 부회장
- 前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연구부 연구위원
- 前 건국대, 남서울대, 한세대, 한서대, 백석대 등 외래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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