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아프면 쉬는' 문화 정착을 위한 상병수당 제도의 시범사업이 4일부터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일 아픈 근로자들의 쉼과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 6개 지역에서 상병수당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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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건복지부

 

상병수당은 질병 등 건강 문제로 근로 능력을 읽은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지난 20년 7월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상병수당 내용을 포함했다. 한국형 상병수당은 오는 7월부터 시범사업이 시행되며 공모를 통해 6개 시·군·구를 선정했다. 상병수당 시범 지역은 서울 종로, 경기 부천, 충남 천안, 전남 순천, 경북 포항, 경남 창원 등 6개 지역이다. 해당 지역의 근로자는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일을 못할 경우 해당 기간 동안 하루 4만3960원(올해 최저임금의 60%)의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다.  


1999년 국민건강보험 제정 시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으나 상병수당은 지금까지 시행되지 않았다. 업무상 상병의 경우 산재보험에서 치료비와 소득 상실에 따른 비용을 보장해 주고 있지만, 업무 외 상병의 경우 건강보험에서 치료비만 제공하고 있다. 2021년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중 약 46%만 유급병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병수당제도는 1883년 독일에서 처음 도입됐고,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5월 물류센터 직원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를 통해 필요성이 부각됐고 같은 해 7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 사회적 협약이 체결되며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상병수당이 도입되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상황에서 확진자의 휴무를 독려할 수 있어 직장에서의 집단감염 차단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1단계 시범사업은 4일부터 1년간 6개 지역에서 시행된다. 각기 다른 3개 모형을 적용해 모형별 정책효과를 비교·분석한다.


부천과 포항은 입원 여부와 관계없이 질병·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7일, 최대보장 기간은 90일이다. 종로와 천안 역시 근로활동이 불가능한 기간에 대해 상병수당을 지급하되 대기기간은 14일, 최대보장 기간은 120일로 적용한다. 순천과 창원은 근로자가 입원하는 경우에만 의료이용 일수만큼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3일이며 보장 기간은 최대 90일이다.


'근로활동 불가 기간'을 지급 기준으로 삼는 부천·포항(모형 1), 종로·천안(모형 2)에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2개, 종합병원 13개를 포함한 총 223개다.


지원대상은 시범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만 15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취업자다. 임금근로자 외에도 자영업자, 고용보험에 가입돼있는 예술인,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일용근로자와 같은 비전형 근로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상병수당은 최저임금의 60%인 4만3960원이다.


이외에 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지정한 '협력사업장' 근로자의 경우 시범사업 지역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거주지와 무관하게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출산전후휴가급여·육아휴직급여, 산재보험 휴업급여·상병보상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긴급복지 생계지원을 받는 사람, 공무원·교직원 등은 지원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 부상·질병의 유형이나 진단명에는 제한이 없다. 다만 미용 목적 성형, 단순 증상 호소, 합병증 등이 발생하지 않은 출산 관련 진료 등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상병수당을 신청할 때는 의료기관으로부터 1만5천원의 비용을 내고 상병수당 신청용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한다. 발급 비용은 신청인이 수급대상으로 확정되면 환급된다.


한편 정부는 참여의료기관이 상병수당 시범사업이라는 정책실험 연구에 협조한다는 점을 고려해 시범 기간 한시적으로 환자 1인당 2만원의 연구지원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 명단은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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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운동본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6월 3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상병수당 보장성 확대를 촉구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고 이와 관련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시작도 전부터 설계가 잘못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장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데다 수당을 받는 기간에서 제외되는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의 상병수당 도입은 세계적으로 한참 뒤처져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50조(부가급여)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이며 시행령에 관련 내용도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9년에는 '의료 및 상병수당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병수당으로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 이상을 지급하도록 권고했는데,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음에도 상병수당은 도입하지 않았다.


상병수당 제도가 뒤늦게라도 도입되지만, 복지·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제대로 된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무상의료운동본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도입하려는 상병수당 제도는 대기기간이 최대 14일로 지나치게 길고 보장 수준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으로 낮아서 반쪽짜리"라고 비판했다.


대기기간은 휴무 시작일부터 상병수당 지급 개시일까지의 기간으로, 이 기간이 지나야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휴직 전에 상병수당을 지급받는 등 악용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대기기간을 설정했다고 설명하지만 수당을 받는 근로자는 그만큼 수당으로 소득 보전을 받지 못한다.


상병수당 도입 추진의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쉬지 못 하는 근로자들의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정작 상병수당을 받기는 힘들다. 시범사업 모델 중 대기기간이 7일 혹은 14일인 경우에서는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코로나19의 격리기간(7일)이 지난 뒤다.


보장 수준 역시 최저임금의 60%라서 ILO가 권고하는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에는 한참 못 미친다. 쉬면서 치료를 받을 동력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 간사는 "시범사업 수준으로는 소득이 충분히 보전되지 않는 데다 대기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없는 취약노동자들에게는 제도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시범사업 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25년에야 상병수당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인데 이미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 늦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느긋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병수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제도이긴 하지만,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의 지난 2020년 9월 '우리나라의 병가제도 및 프리젠티즘 현황과 상병수당 도입 논의에 주는 시사점'(김수진·김기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근로자들이 아플 때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높다.


'아파도 출근한 사람의 비율'(23.5%)은 '아파서 쉰 비율'(9.9%)의 2.37배로, 유럽국가들 평균인 0.81배보다 크게 높았다.


이런 비율은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일용직, 용역업체 근로자,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근로자, 저임금 근로자에게서 특히 높았다.


상병수당 제도가 실효성을 갖고 아프면 맘 편히 쉴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유급휴가를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사연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493개 민간기업(상시 10인 이상 근로자 고용 사업장)의 취업규칙 자료를 분석한 결과 취업규칙에 병가제도가 있는 곳은 42% 수준이었고, 유급으로 병가를 제공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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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시범 실시..."설계부터 잘못"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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