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박항서 감독의 활약으로 끈끈했던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관계가 코로나19 사태로 균열이 생겼다.


베트남 현지의 교민과 베트남 소식을 전해주는 유투브,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베트남 내부의 혐한(한국에 대한 혐오)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2월 29일 한국발 여객기의 하노이 공항 착륙을 갑작스럽게 금지했다. 이날 오전에 인천에서 출발한 하노이행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한 지 40분만에 인천공항으로 회황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전날인 28일 베트남에 도착한 사람들은 베트남 군대 막사에 격리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14일 동안 격리를 해야한다며 여권도 강제로 압수했다고 전했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베트남 민간항공청은 지난 3일 오후 6시부터 오는 6월4일까지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여객기는 번돈공항과 푸깟공항만 이용할 수 있다고 고시했다. 

 

이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공항과 남부 호치민공항에 이어 중부 다낭공항은 물론 그동안 한국∼베트남 노선으로 이용했던 모든 공항에 한국발 여객기 착륙이 금지됐다는 의미다. 

 

번돈공항과 푸깟공항은 그동안 한국 국적 항공사가 취항한 적이 없는 공항으로 사실상 한국과 베트남 항공편은 전면 중단되는 셈이다.

 

한국인 입국 중지 조치를 내린 베트남 정부의 강한 조치에 대한 반감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베트남 무비자 입국이 금지되면서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댓글에는 화해는 고사하고 서로를 자극하는 욕설들이 난무하다.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베트남의 혐한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기폭제는 지난 2월 25일 YTN의 단독 보도에서 비롯됐다. 

 

대구에서 출발한 한국인 20명이 베트남에 입국하면서 일방적으로 병원에 격리되는 등 불합리한 처우를 겪었다는 게 요지다. 일방적으로 여권을 빼앗기고 폐쇄 병동에 갇혀 지냈다는 보도였다. 

 

2월 24일 베트남 당국이 대구에서 출발해 다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과 교민 20명을 의심 증상도 없는데 강제 격리시켰다는 한 교민의 주장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병동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긴 것에 "(격리자들이) 사실상 감금 상태에 놓였다"고 설명했고, 열악한 시설의 근거로 "아침에 빵 조각 몇 개 준다"는 교민 발언을 실었다.


보도가 나가자 정부 성향의 베트남 언론들은 베트남 정부를 옹호하고 나섰다. 여권 뺏은 문제는 덮었다. 한국인이 병원이 아닌 4성급 호텔을 요구했다는 주장과 베트남 국민의 주식인 ‘반미’라는 빵을 '빵쪼가리'라고 폄하했다는 내용을 부각시켰다. 

 

베트남 정부가 먼저 4성급 호텔을 제시했다는 주장과 함께 호텔 측에서 한국인을 거부했다는 내용은 나중에 재확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YTN의 '베트남 한국인 감금' 보도는 베트남 문화에 대한 고려 없이 현지 교민의 감정적인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보도 직후 관련 유튜브 영상 댓글엔 YTN이 한국인의 편향된 시각만 전했고 취재도 불충분했다는 비판 댓글이 달렸다. 한 베트남 교민은 자신의 SNS에 한국인 격리 이유는 동승객 중 발열환자가 있었기 때문이며 '한국이 번호키(자물쇠)를 쓰듯 베트남은 모든 문에 자물쇠를 쓰는 것'이라 반박했다. 

 

베트남 시청자들은 베트남의 주식인 반미를 '빵 조각 몇개'로 비하한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냈다고 반발했다. 격리된 병원이 베트남 기준으로는 하급 병원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YTN의 보도에 베트남 누리꾼의 항의도 빗발쳤다. 어느 베트남인의 페이스북에는 태극기를 훼손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태극기에 코로나바이러스를 그려넣고 사우스 코리아를 사우스 코로나로 표기하는  등 모욕적인 행위를 게시했다. 또한, 북한 김정은이 4월30일(베트남 해방기념일)에 한국을 통일시켰으면 좋겠다는 식의 비아냥을 쏟아내기도 했다.

 

현지 교민은 "1964년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국군이 파병되면서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은 아니였겠지만 지금과 같은 혐한 분위기는 아니였다"고 전했다. 

 

관광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교민들 역시 아예 사업을 접고 국내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남아 있는 교포도 최근 혐한 분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이다. 한국은 1964년 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30만 명이 넘는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그 과정에서 1만6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후 1992년에 와서야 양국은 다시 수교를 맺고 본격적인 외교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여곡절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한국과 베트남이다. 

 

하지만, 지금 베트남의 대응은 냉혹하고 차갑다. 베트남 발전에 국내 기업이 기여한 점, 박항서 감독의 파더 리더십과 성과는 인정하지만 혐한의 분위기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11111.jpg
출처=SNS


베트남의 혐한 분위기를 접한 국내 누리꾼의 감정도 복잡해졌다.

 

일본인의 입국은 열어둔 채 유독 한국인만 입국 금지 조치한 베트남 정부에 대해 큰 실망을 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일부 누리꾼은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베트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공산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는 댓글도 올라왔다.


지난 2월 29일 예정됐던 삼성전자 R&D센터 기공식에 이재용 부회장의 참석이 취소된 것을 두고 당연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 초 본사 인력 및 협력업체 직원 700여 명을 베트남에 최대 3달간 출장 보내려던 계획이 지연됐다. 베트남 정부가 지난달 29일 한국에서 입국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14일 동안 자가격리시키겠다고 결정함에 따라 신규 노동비자 발급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13일, 베트남 정부가 삼성디스플레이 엔지니어들의 입국을 일부 허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한국발 입국자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금지하고, 입국자는 14일간 시설 격리한다는 원칙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직원에 대해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 엔지니어 186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전세기 이날 오전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후 3시(현지시각) 베트남 북부 번돈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베트남 번돈 공항은 하노이 공항을 대신해 베트남 정부가 한국발 비행기의 착륙을 지정한 곳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베트남 북부 박닌성과는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이번 상황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베트남을 여행지로 잡았던 내국인들도 이제는 다른 나라 여행을 고려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베트남 정부가 한국인입국 금지를 풀어도 베트남 여행은 이젠 포기하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올 여름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다는 한 여행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미 출발한 우리나라 여객기를 긴급회항 시킨 사건부터 한국인 입국자 14일 격리조치까지 베트남의 행보가 실망스럽다”며 “빈정 상해서 이번 휴가 계획은 모두 취소할 계획”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또 다른 여행객은 “베트남을 여행하려다 태국으로 행선지를 바꿨다”며 “앞으로 다시 베트남을 방문할지도 의문”이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항공은 한국지점장 명의로 “12일부터 한국지점의 환불신청 접수를 중지하고, 6월 15일부터 접수를 재개한다”고 공지했다. 항공사마다 환불 절차가 빠르거나 늦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예 신청 접수를 거부한 것은 처음이다. 베트남항공은 이미 접수된 환불 신청도 처리가 3개월 정도 늦어진다고 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적인 분위기는 코로나19로 급속히 냉각됐다. 냉각의 수준을 넘어 양국 국민 간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외교와 방역은 다를 수 있다. 긴급하고 비상 상황에서 나온 일련의 사건을 두고 확대 해석해서도 안된다. 더 이상 양국이 서로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전체댓글 0

  • 5132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끈끈했던 한-베트남, '코로나19'로 금갔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