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18(월)
 

인천시 강화군이 조선후기 문신 이건창 생가를 복원(1997년 1월)하면서 원래 모습과 전혀 다른 엉터리 복원을 진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원래 있던 고건축 자재를 재활용하지 않고 빼돌린 의혹이 있으며, 매년 유지관리비로 약 1억 5천여만원을 집행하는 등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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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생가 복원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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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은 이건창 생가 복원후 달라진 점에 대한 해명이 없었다

 

이건창(1852∼1898)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영재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생가는 인천시 기념물 제30호다.  

 

이건창 생가는 원래 대궐같이 크고 웅장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외관만 보아도 양반집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의 기초는 크고 반듯한 돌로 축대를 쌓아 주변보다 높아서 건물 자체가 기품과 위엄이 있어 보였었다.

  

1997년 복원공사 전 건물은 함석집(그 이전은 초가집)이긴 하였으나 이건창의 가문이 양반 계층이었던 점이 사료로써 증명되고, 뒤뜰 담장 주변에 많은 기와 조각이 많이 널려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원래 기와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천시와 강화군은 발굴조사 등 기본적인 조사연구도 하지 않고 초가집으로 조성하고 기와 조각 등 중요자료를 모두 폐기 처분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바깥채의 사랑방에는 마당 쪽으로 마루가 있었는데 복원한 건물에는 바깥 마루가 없다. 바깥채의 경우 안채와 다르게 후에 개축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최소한 '몇 년도 경에 개축되었다'고 표기하고 보존하는 것이 올바른 문화재 보존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강화군은 문화재로 지정된 원래의 건물을 완전히 철거한 후 엉뚱한 건물을 신축해 놓고 이건창 생가 복원공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래의 담장은 이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강암 등으로 나즈막히 쌓은 돌담이었으나 지금은 붉은색 진흙과 깬 돌로 쌓고 그 위에 초가지붕을 얹은 형태로 변했고 원래는 안채만 담장으로 둘러져 있었으나 바깥채까지 담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담장은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담장 형태가 아니다. 

  

 아궁이는 실제 사용하지도 못할 정도로 작고, 굴뚝은 소꿉장난하듯이 세워놓았으며, 건물의 벽도 원래의 건물은 하얀 회가 발라져 있었으나 지금은 붉은 진흙 색으로 되어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3조에 따르면 '문화재의 보존ㆍ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창 생가 복원 후의 전체적인 외형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양반집 풍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영화세트장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건조 문화재는 안전이나 관리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래의 지반과 건물형태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부분적으로 보수하여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건창 생가는 원래의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지반까지도 평평하게 밀어버리고, 원래의 건물에 대한 실측도 반영하지 않고, 아무런 고증도 없이 군청 담당자의 상상력만으로 다시 지은 것으로 이는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단순한 창작물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건창의 조부 충정공 이시원은 개성부유수와 이조판서를 지냈고, 부친 이상학은 증이조참판을 역임했으며, 이건창 자신도 한성부소윤, 안핵사, 승지 등의 관직을 역임한 양반 가문이었고, 강화도 토박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마을주민들이 인근 여러 필지의 토지를 “양반네 땅”이라고 부를 정도로 상당한 재산을 가진 가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인천시와 강화군은 이건창이 강화도 시골구석의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입신양명한 인물인 양 실제 거주할 수도 없을 만큼 작고 초라한 집을 지어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재 관리자이자 행정청인 인천시와 강화군이 문화재를 훼손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역에 살았던 A씨가 이러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인천시와 강화군은 ‘당시의 복원공사는 이건창이 살던 당시의 가옥의 복원이 아닌 가족들이 구한말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난 후, 일제강점기 이후 살았던 후손들이 살던 안채를 전면 해체하여 원형대로 복원하는 공사를 실시’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건창 후손들이 살았던 건물을 복원한 후 이건창 생가(태어난 집)라면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인 꼴이다. 


제보자는 "강화군은 당초 시 기념물(이건창 생가)로 지정된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현재의 건물을 새로 지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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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이건창 생가' 엉터리 복원에 '혈세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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