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갑질119 젠더폭력신고센터 32건구애 → 거절 → 괴롭힘 → 해고
#이동은씨(가명)는 가족회사에 다닌다. 사장의 아들인 사무장은 동은씨와 1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난다. 입사 초반에 사무장은 동은씨의 몸을 실수인 척 터치했고, 매번 점심시간마다 따로 약속을 잡아 데리고 나왔다. 같이 점심을 먹을 때마다 사무장은 “남자는 성욕이 본능이다”라는 등 불편한 소리를 했다. 참다못한 동은씨가 적당한 핑계를 대며 점심 약속을 거부하자, 사무장은 전화를 걸어 “내가 불편하냐?”고 짜증을 냈다. 그날 이후 사무장은 수시로 밤에 전화를 걸었고, 잘못 전화한 거라고 문자를 남기곤 했다.
동은씨는 사무장에게 근무시간 외 연락을 조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사무장은 “자기가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라며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권고사직으로 처리할 테니 짐 싸고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달라고 통보했다. 사장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지만, 사장은 아들을 잘못 키웠다면서도 동은씨와 사무장을 강제로 3자 대면을 시키고, 동은씨에게 “(사무장이) 동은씨가 사무장의 전 부인을 닮아 각별하게 대한 것 같다, 왜 진작 나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사무장을 감쌌다.

동은씨와 같은 경험을 한 직장인은 적잖다. 직장갑질119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1명은 ‘원치 않는 구애’ 경험이 있었다. 직장에서 원치 않는 구애, 일명 ‘구애 갑질’의 대상이 된 직장인들은 설레어야할 고백이 두렵기만 하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 구애를 지속적으로 받았다(원치 않는 구애)”는 응답이 11.0%로 직장인 10명 중 1명은 ‘구애 갑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치 않는 구애’ 경험은 일터의 약자인 여성(14.9), 비정규직(13.8)이 높게 나타났다.

올해 1월에 직장갑질119에 신고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는 총 138건이었는데, 이 중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관련된 상담은 7.2%(10건)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신당역 살인사건 직후인 9월 21일부터 여성 노무사와 변호사로 구성된 ‘직장 젠더폭력 신고센터’(이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신고 내용은 강압적 구애, 악의적 추문, 신체 접촉 등 성추행, 외모통제, 가스라이팅 등 젠더폭력 전반이다. 2월 10일 현재 기준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 사례는 32건인데, 유형별 분류에서 ‘강압적 구애’가 25%(8건)로 가장 많았습니다. ‘강압적 구애’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를 보면 ‘원치 않는 구애’는 직장에서의 위계 관계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상사나 사장은 처음에는 잘 대해주는 척하다가 상대가 친절하게 받아주면, 사적인 전화를 걸거나 사적인 만남을 요구하고, 추근대기 시작한다. ‘찝쩍대는 상사’에게 불편함을 표현하거나 사적 만남을 거절하면 보복이 기다린다. 헛소문을 내고, 업무적으로 괴롭히고,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다. 말 그대로 ‘구애 공격’이다.

제보 사례에서 ‘구애 갑질’ 행위자는 모두 피해자보다 직장 내 우위에 있었다. 권력행사형 ‘구애 갑질’은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단호하게 대응하기 어려워 행위자가 지속적으로 더욱 집요한 갑질을 할 수 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대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구애 갑질’ 행위자가 대표이거나 그 친인척일 경우 피해 정도는 더욱 심각해진다. 상사의 ‘구애 갑질’을 거부하거나 피하면 업무 환경에도 지대한 악영향이 있다. 피해자는 직장생활과 동료 관계를 염려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다가 ‘구애 갑질’이 계속되면 저항하는데, 이때 행위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업무적 혹은 인사상 불이익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행한다. 견디지 못한 피해자는 해결보다 퇴사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위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애 갑질’을 막기 위해 상사-후임 간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사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79.8%가 “상사의 지위를 이용해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취업규칙에 동의한다”고 응답했고,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취업규칙을 제정하는 것에 72%가 동의했다. 직장에서 우위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급자와 직속 후임 간의 사내 연애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직장인 대부분이 공감한 것이다. 신당역 살인사건에서 보듯 ‘원치 않는 구애’는 스토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용자는 회사 내에서 ‘구애 갑질’이 벌어지는지 조사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율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인사컨설팅 회사에서 150명의 기업 인사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8년 6월 기준 사내 연에 관한 취업규칙이 존재하는 회사가 51%에 달했고, 취업규칙이 있는 회사 중 77%가 상사와 직속 후임 간의 교제를 금지했다. ‘구애 갑질’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잘못된 연애관에서 비롯된다. 직장 동료를 구애의 대상으로 삼아 원치 않는 강압적·지속적 구애로 근무환경을 악화시키고 심지어는 일터를 떠나게 하는 ‘갑질’은 직장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다.
직장갑질119 김세정 노무사는 “‘구애 갑질’은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 분위기와 조직문화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 “여성 동료를 동등한 주체로 대우하는 인식 제고, 더 이상 원치 않는 구애가 낭만적인 것이 아닌 ‘구애 갑질’이라는 사회적 평가, 직장인 여성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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