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상인회가 기울어가는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작은 미술 전시회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았다.
경기도 김포 시청에서 강화도 방향으로 15분 정도 차로 달려가면 통진읍이 나온다. 통진읍 미술전시회가 열린 김포대로 2244번길 상가 골목에는 모여 있는 70여 개 점포 상인들이 모여 장사를 하고 있다. 이들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통진읍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호 통진한마당축제 집행위원장은 사실 이 지역 토박이는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볼 때 유 씨는 굴러들어 온 이방인일 뿐이다. 하지만 유 씨는 죽어가는 상권을 살려보겠다며 발벗고 이리 뛰고 저리 뛰자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상가 번영회를 들락거리는 유 씨의 모습이 토박이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편의점을 하고 있는 유기호 위원장은 전시회 등 공연전시 분야에서는 이미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유기호 위원장은 은퇴하기 전까지 국내 유명 일간지에서 국제 미술 전시회를 진행했으며 2012년 한중수교20주년 기념 한류콘서트를 기획하면서 중국 현지에서 국내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대형 콘서트를 연출했던 기획자다.
통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2019년 유 씨가 편의점을 비워둔 채 서울을 분주히 오가면서 얼마 후 동네 가게 30여 곳에 예술작품 같은 모양의 돌출 간판 광고물 제작해 내거는 것을 봤다"며 "그때부터 (유 위원장을) '진짜 전문가'로 믿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응모전에서 지원받아 설치한 돌출 광고물은 유 씨가 통진 상가 골목을 예술골목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첫 단추였다.
2020년 들어 유 위원장은 규모가 더 커진 '통진국제청소년미술축제'를 기획했다. 지난 20년 12월 24일 첫 행사가 진행됐다. 문제는 행사 장소였다. 인구 2만8천명의 통진읍내에는 변변한 전시장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로 건물 내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상가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골목길 전시가 탄생했다. 무모할 수도 있는 기획이지만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장애물은 또 있었다. 날씨는 춥고 거리는 한산했다. 통진읍내 상가 골목골목에는 전 세계 어린이가 그려 보내온 미술작품들이 하나둘씩 전시됐다. 상가의 유리창과 벽면 등에 내걸리기 시작했다. 낯선 이국땅 어린이들의 작품이었지만 동네와 묘하게 어울려 통진읍 상가 골목엔 크리스마스의 작은 기적이 피어났다.
전시장이라는 실내 공간을 탈피해 상인 점포 100여 점포에 작품이 전시된 '통진국제청소년미술축제'.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관람객으로 돌변했다. 전시회는 시나브로 입소문을 탔다. '코로나 시국에 전시회라니'라며 방관하던 공무원들과 동네 유지들도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통진읍의 상징이기도 한 해병대도 꿈틀했다. 시장 상인들이 통진읍에 위치한 해병2사단의 해병대 문화거리 조성사업에 협조하기로 약속하면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이번 마을축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기호 씨는 "김선아 김포시청 일자리경제과 소상공인팀장이 큰 힘이 됐다"며 "김포시청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이번 일은 골목잔치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선아 김포시청 일자리경제과 소상공인팀장은 "통진 상권 골목 전시회에서 진심을 느꼈고 지역 축제를 연계해 해병대 문화의 길을 유치하겠다는 유 위원장의 기획에 공감했다"며 "관 중심의 축제가 아닌 상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점에서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제2회 '통진국제청소년미술축제'가 열린다. 지난 번 1회때보다 규모는 더 커졌다. 미술 전시회는 지역 축제로 확대됐고 해병대 문화의 거리 준공식까지 함께 진행하게 됐다.

1회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은 80건였지만 2회 때는 500여 점으로 불어났다. 국내 미술 유관단체도 지원에 나섰다. 통진의 대표적인 문화자산인 ‘통진두레놀이’와 해병대의 군악대가 콜라보를 이루고 주민들과 관이 혼연일체가 돼 마을 축제를 진화시키고 있다.
유기호 집행위원장은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행사를 눈여겨 본 김포시청 관계자와 해병대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면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낡은 도시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면, 방문객이 넘치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점차 탈바꿈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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