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시간이 흐르면 성장하고, 쇠퇴하며, 때로는 다시 태어난다. 화려한 신도시의 불빛 뒤편에서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던 원도심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비어 있는 상가, 닫힌 셔터, 끊긴 사람의 발길. 도시의 기억과 역사, 그리고 공동체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재개발이 아니라 ‘삶의 회복을 위한 도시재생’,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상권 재생’에 집중해야 한다.
도시재생의 본질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그동안의 도시정비사업은 물리적 정비에 집중해왔다. 도로를 넓히고, 건물을 새로 세우고, 외관을 바꿨다. 그러나 주민이 빠져나간 거리에 다시 생기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재생이라 부를 수 없다.
상권 활성화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 주민이 손님이 되고, 주민이 상인이 되며,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낼 때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상권협의체, 로컬 비즈니스 랩(Local Business Lab), 청년창업 플랫폼 같은 공동 기획 구조가 필요하다.
단순한 보조금 지원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이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 중심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지역의 상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의 손으로 기획된 콘텐츠와 서비스가 자리 잡아야 한다.
도시재생은 도시행정의 변화와 실천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지자체와 주민들이 변화의 핵심 매개자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상권지원이 시설 개선 위주였다면, 이제는 ‘공간-사람-콘텐츠’를 연결하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래된 상가 건물을 단순히 리모델링하는데 그치지 말고, 지역의 이야기와 문화를 담은 ‘테마형 상권’, ‘문화창업거리’, ‘야간관광특화구역’ 등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스마트 상점 기술보급사업, 디지털 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 생활SOC 연계형 도시재생사업과 같은 정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데이터 기반으로 운영하면, 상인도 소비자도 이익을 얻는 스마트 상권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단순한 행정 주체가 아니라, 로컬 크리에이터와 시민, 기업을 연결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도시재생과 상권활성화를 단발성 공모사업이 아닌, 중장기 혁신정책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현재 도시재생뉴딜, 전통시장 현대화, 청년창업지원, 스마트 상점 보급 등 다양한 사업이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이 현장에서는 중복되거나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국가상권재생 플랫폼’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공공임대상가 확대, 장기임대형 청년창업존 도입 등을 통해 민간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지역의 고유성을 살린 로컬 브랜드 육성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농촌은 로컬푸드, 해안지역은 로컬투어, 도시형 지역은 로컬디자인 산업으로 특화하는 등 지역별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 아래, 상권을 지역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시장 지원이 아니라, 상권을 통한 일자리 창출, 청년 창업, 지역 문화 재생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도시재생을 통한 상권 활성화는 주민·지자체·정부의 협력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주민은 지역의 주체로서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실행에 나선다. 지자체는 정책과 공간을 제공하며 실천을 지원한다. 정부는 제도와 재정으로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
이 세 주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면, 도시재생은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경제와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결국 도시를 살리는 힘은 ‘사람과 협력’에서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가균형발전’과 ‘생활권 중심 도시정책’은 도시재생형 상권활성화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 이제는 중앙 중심의 획일적인 도시개발에서 벗어나, 생활권 단위로 자립할 수 있는 상권 중심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지역상권활성화특별법 제정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도시재생 분야 확대 ▲상권재생 전담기구 설치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재개발이 과거의 도시를 지웠다면, 도시재생은 과거를 다시 쓰는 일이다. 그 안에서 경제와 문화, 사람의 관계가 다시 연결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이다.
도시재생은 벽돌을 다시 쌓는 일이 아니다. 낡은 거리에 사람의 온기와 이야기를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다. 빈 점포를 채우는 것은 벽돌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모여야 상권이 숨 쉬고, 상권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이제는 도시재생의 초점을 건축에서 사람으로, 하드웨어에서 공동체로 옮길 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두 번째 성장기는, 다시 그 골목길에서 시작된다.
- 공공정책 연구 경력 21년, 정책분석평가사 1급, 소상공인 지도 사 1급
- (사) 한국 동행 서비스협회 수석 부회장
- 前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연구부 연구위원
- 前 건국대, 남서울대, 한세대, 한서대, 백석대 등 외래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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