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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판단 보호법’ 기업에 면죄부 될까

  • 류근원 기자
  • 입력 2025.07.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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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대재해처벌법과 정면 충돌 우려… 형사책임 둘러싼 법철학 대립

“정당한 경영 판단이라면, 회사에 손해가 나도 위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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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국민의힘 유상범(왼쪽)과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 회동 장면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이른바 ‘경영판단 보호법’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법은 이사·감사 등 기업 임원진의 합리적 판단에 대해 형사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발의 취지는 기업이 “형사처벌 우려 없이 적극적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일부 법조계에서는 “결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명백한 면책 장치”,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법적 우회로”라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형법상 배임죄 요건 완화다. 기존에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경영상 판단이 합리적이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이 가능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이라는 전제가 충족되면, 결과적 손해가 발생해도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도록 면책 조항을 도입했다.


또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에도 손을 댔다. 고의적 배임 등 중대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가액에 따라 처벌 수위를 높여, ‘진짜 배임’과 ‘정당한 경영’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겠다는 설명이다.


유 의원은 법안 발의 후 “기업이 경영판단 하나 내릴 때마다 형사처벌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지나치게 위축된 시장 환경”이라며 “이 법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안전판”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법안이 ‘결과 책임’을 강조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철학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직접적 형사책임을 묻는 구조다.


즉,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관리 책임을 다했는지” 여부를 기업이 입증해야 한다. 반면, 경영판단 보호법은 경영진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구조다.


이처럼 “결과책임 vs 과정면책”이라는 법철학의 근본적인 충돌은, 향후 재판 현장에서 양 법의 상충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노동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사고에 대해 경영진이 “경영상 판단이었다”는 논리를 들어 형사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의원 측은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들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경영판단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 판례를 통해 발전했으며, 독일 상법 제93조는 경영 판단이 “합리적 근거에 기반했다면 면책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제도들 역시 형사책임 면책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서의 면책 원칙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정치권 반응도 엇갈린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법안은 사실상 경영진 면죄부법으로, 윤석열 정부의 기업 편향 입법 기조와 맥을 같이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기업이 형사처벌을 두려워해 신사업 투자나 구조조정 등 정상적 경영 활동조차 기피하는 부작용이 크다”며 “이 법이 경영 리스크를 완화시켜 일자리 창출과 기술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가장 큰 실무 쟁점은 면책 요건의 모호성이다. 개정안은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을 면책 조건으로 내세우지만, 무엇이 ‘충분’하고 ‘합리적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이는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의 해석에 따라 광범위한 면책 혹은 무력화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기업이 내부 감사 자료 몇 장, 외부 자문 보고서 하나만 내도 ‘충분한 정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며 “결국 법 해석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재점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경영판단 보호법은 표면적으로 ‘과도한 형사처벌 방지’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중대재해 등 산업현장 사고에 대한 경영진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특히 법적 해석 여지를 열어놓은 조항 구조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이 법안이 진정으로 기업 생태계의 건강한 활성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책임 회피를 위한 법적 우회로인지는 향후 법안 심의 과정과 국회 논의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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