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번호 안 넣을 거면 명함은 왜 주나요?”
최근 만난 스텔란티스코리아 방실 대표는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사무실 전화번호조차 없는 명함을 기자에게 건넸다. 이름과 직책, 회사명과 이메일만 적힌, 일견 간결해 보이는 이 명함은 오히려 한 기업의 소통 철학 부재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읽힌다.
방 대표는 과거 폭스바겐코리아 르노코리아 등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던 홍보 책임자 출신이다. 20년 이상 자동차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만큼 기자들과도 오랜 인연이 맺어 있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 터.
하지만 지난해 그가 스탈란티스코리아 사장으로 전격 취임하고 난 뒤 변한 건 아닐까. 지프, 푸조 등을 판매하는 스텔란티스코리아는 최근 국내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프는 올해 15월 누적 677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 대비 45% 급감했다. 푸조 역시 같은 기간 345대 판매로 28.5% 감소했다. 올해 초 방 대표가 제시한 “전년 대비 2530% 성장” 목표와는 거리가 먼 성적표다.
그렇기에 이 대표의 소통 방식은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기업 리더십 전반을 평가하는 시금석이 된다. 리더의 태도 하나, 명함 한 장이 기업문화와 조직 철학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스텔란티스코리아 측은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대표님 번호가 너무 전면에 노출될 경우, 미디어나 딜러 등 비즈니스 관계자들이 부서장을 거치지 않고 대표님과 직접 소통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관련 부서 임원들이 난처해지거나 업무 과부하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부 회의 일정이 많은 만큼 연락이 닿지 않으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공식적인 소통 창구는 이메일로 통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회사의 내부 방침이고, 효율적 업무 분담이라는 점에서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명함은 단지 효율만을 따지는 도구는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열린 태도의 증표다. 특히 외부와의 접점이 많은 CEO라면, 기본적인 소통 채널의 부재는 자칫 ‘닫힌 조직’이라는 인식을 낳기 쉽다.
이런 배경에서 온라인 여론도 엇갈린다.
“명함에 번호 없으면 업무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의무로 번호 기재한다”는 비판적 의견이 있는가 하면, “연락 폭주를 피하려는 고육지책일 수 있다”, “업무용 폰이 따로 없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어떤 이는 “그게 대한민국의 카스트 제도다. 기록한 사람은 출세 못한 사람, 기록 안 해도 되는 사람은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라는 냉소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간결함’이 아니라 ‘열려 있음’이다. 소통하지 않는 리더십이 만든 침묵은, 때로는 실적 부진보다 더 깊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Communication business card' without phone number...Is communication disconnection poor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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