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중앙정보부, 그들이 원하는 대위법적 질서
드라마 '메이드인 코리아'에서 중앙정보부 부산의 수장인 황국평(박용우)국장, 그리고 그 자리를 밟고 올라서는 백기태(현빈).
그 둘은 그 중정부장 자리의 상징적인 메타포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다. 곡이 가진 음악적 특성 자체가 그시대 중정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격동의 70년대, 그 뜨거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차갑고 정교한 바흐를 듣는 황 국장과 백기태에게 감독이 바흐를 쥐여준 이유는 명확하다. 이 곡이 가진 '대위법의 수학적 질서' 때문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자신만의 것인 '질서'와 통제의 메타포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의 나열이 아니다. 3의 배수마다 정교한 카논이 등장하는, 바흐가 설계한 거대한 수학적 건축물에 가깝다.
영화 '설국열차'의 윌포드나 '메이드인코리아'의 백기태에게 이 음악은 자신이 통제하는 시스템의 완벽함을 상징한다.
때론 고독한 천재성,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자신만의 것인' 세계관 속에 침잠해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이기도 한다.
독립적인 선율들이 엄격한 규칙 아래 조화를 이루는 대위법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이 음악을 통해 "나는 당신들과 다른 차원의 질서 속에 산다"는 오만한 우아함을 드러낼 때 쓰인다.
바흐의 음악, 특히 이 곡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된 건축물과 같다. 70년대 중정의 세계관이 그렇다.
그들은 세상을 혼돈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질서 속에 두고 싶어 했을 것이다. 30개의 변주가 엄격한 규칙(카논의 형식 등)에 따라 배치된 것처럼, 백기태에게 국가나 조직은 자신이 배치한 음표들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순환'과 '운명'의 메타포
이 곡은 처음에 연주했던 '아리아'로 다시 돌아와 끝을 맺는다. 이 드라마와 곡의 상징성은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이는 백기태가 믿는 권력의 영속성 혹은 보수적인 회귀 본능을 상징하지 않을까? 하지만, 주인공이 아무리 세상을 바꾸려 저항해도 결국 시스템(아리아)은 변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임윤찬 연주 유튜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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