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화재 서초사옥 앞.
한 남성이 차량에서 인화성 물질을 꺼내 사옥 입구 카펫에 뿌리며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외쳤다.
그는 9년째 억울함을 호소해온 교통사고 피해자 손병길(63) 씨였다.
손 씨는 삼성화재와의 오랜 분쟁 끝에 절망감에 빠져 방화의 형태로 잘못된 선택을 시도했고, 이를 제지하려던 아내가 경찰과 함께 현장에서 그를 막았다.
경찰은 화재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손 씨를 방화예비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으며, 이후 구속영장이 발부돼 현재 구속 상태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17년 9월 2일 저녁 7시 35분, 경기 용인 포곡 전대 삼거리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손 씨 부부가 타고 있던 차량은 교차로에서 다른 차량의 강한 충돌을 정면으로 받았다. 차량은 전면이 완전히 파손되어 폐차 판정을 받았고, 손 씨는 파편에 얼굴과 눈을 심하게 다쳤다.
사고로 손 씨는 왼쪽 눈 실명, 삼차신경 손상, 뇌출혈, 후두엽 부종 등 중상을 입었다.
당시 병원은 이를 명백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진단했지만, 삼성화재는 “사고 후 1년이 지나 나타난 증상은 교통사고와 무관하다”며 보상 책임을 부정했다. 손 씨는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는 패소했다.
법원은 “사고와 후유증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삼성화재는 본지 질의에 “당사는 손병길 씨와 총 5차례에 걸쳐 대법원 판결의 세부 내용을 안내했다”며 “손 씨는 이미 확정된 판결과 무관하게 고액의 보상금을 별도로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손 씨는 “삼성화재가 가해 차량의 속도를 시속 5km ‘경미한 접촉’으로 축소했고, 경찰의 초동조사 오류를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폐차가 날 정도로 부서진 사고를 ‘경미한 접촉’이라니 말이 됩니까. 경찰 조사 오류를 그대로 이용해 피해자를 몰아세웠습니다.”
손 씨는 지난 9년 동안 억울함을 호소하며 삼성화재 본사와 강남역 인근에서 1인 시위를 이어왔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인은 본지에 “억울함을 아무리 외쳐도 외면하는 삼성화재에 절망해 남편은 ‘자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가해자는 여전히 삼성화재의 거짓 주장에 기대어 승소한 뒤 평온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남편은 10년 동안 교통사고 피해자로서 지옥 같은 삶을 버텨왔다”며 “그 비애와 좌절이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편이 잘못된 방법을 쓴 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피해를 준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나오기까지 10년 동안의 외면과 고통이 있었다는 점만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보험사와 개인 피해자 사이의 구조적 불균형과 소통 부재를 드러낸다.
법원 판결로 사건은 종결됐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사회적 고립 속에 방치돼 있었다.
손 씨는 실명으로 생업을 잃고, 장애와 생활고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왔다.
삼성화재는 “법적 절차를 모두 마친 사안으로, 회사는 판결에 따라 정당하게 대응했다”고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방화의 형태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된 행동이다. 그러나 그 절망의 배경에는 장기간의 분쟁과 제도의 냉담함은 한번 제고해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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