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돌봐오던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64세 어머니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최고 사형이나 무기징역이다. 최소의 경우라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양형기준상 권고형은 징역 4∼6년이었고 재판부는 이보다 더 낮은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그마저도 법정 구속을 하지 않는 집행유예 판결을 했다.
지난달 8일 이 사건의 결심 공판에서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어머니 A씨는 "제가 이 나이에 무슨 부귀와 행복을 누리겠다고 제 딸을 죽였겠냐"며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이어 "나쁜 엄마 맞아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제가 딸을 잘 돌봤어야 했는데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며 "죄가 너무 크다"고 자인했다. 이어 "(범행) 당시에는 버틸 힘도 없었다"며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장애가 있던 38세 딸 B씨를 줄곧 돌봐왔다. B씨는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다. A씨는 의사소통조차 하기 힘든 딸을 극진히 키우면서 거의 매일 대소변까지 받아왔다.
A씨 아들은 법정에서 "어머니 A씨는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누나 머리도 예쁘게 따주고 이쁜 옷만 입혀서 키웠고 대소변 냄새가 날까봐 깨끗하게 닦아줬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38년간 힘들게 딸을 지켜오던 엄마는 또다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사건 발생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딸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A씨 아들은 "어머니는 누나가 대장암 진단을 받자 많이 힘들어했지만, 항암을 희망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다"며 "혈소판 수치가 감소하면서 항암마저 중단했고 누나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며 "저와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당시 A씨는 몸무게가 많이 줄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아들에게 말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씨의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살인 혐의를 적용한 이상 중형을 구형하지 않을 수 없었다. A씨에게 검찰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인천지방법원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A씨에게 실형이 아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애로 인해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피해자는 한순간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며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피고인은 범행 이전까지 38년간 피해자를 돌봤고,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라며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면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A씨의 잘못만을 탓할 수는 없다. 장애인 가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재판부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 부족도 이번 사건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들과 함께 선고 공판에 나온 A씨는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법정 밖에 나오면서 오열했다.
법원 관계자는 "A씨의 경우 살인 혐의지만 정상참작으로 법정형에서 절반의 형이 감경돼 처단형의 범위는 징역 2년 6개월∼15년"이라며 "재판부가 처단형 범위 안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여러 사정을 고려해 집행유예 판결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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