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시중은행들이 고금리 대부업체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었다.
최근 6년간(2020~2025년 8월) 1·2금융권이 대부업체에 빌려준 자금은 38조1,998억 원, 이를 통해 거둔 이자 수익은 2조5,400억 원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은행이 3,947억 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겉으로는 ‘포용금융’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고금리 사채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한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을 비롯해 IBK기업은행(1,670억 원) 등이 대부업체에 거액의 자금을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중심이던 대부자금이 이제는 시중은행의 수익상품처럼 구조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업체는 은행에서 싸게 빌린 돈을 연 20% 안팎의 금리로 재대출하고, 은행은 연체 위험 없이 이자를 챙긴다”며 “결국 서민의 빚이 은행의 배당금이 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른바 ‘서민금융 우수대부업자 제도’가 불러온 부작용은 명확하다.
금융당국은 2021년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저신용층 대출절벽을 막기 위해 우수대부업자에게 은행 차입을 허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제도권 자금이 고금리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합법적 창구를 만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감독원 공식 문서에서도 “대부업 대출이 감소하면 오히려 불법사금융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즉, 제도 자체가 ‘규제 완화 → 고금리 유지 → 불법사금융 확산’으로 이어지는 모순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감독의 실효성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은행이 ‘우수대부업자’에게 공급한 자금이 실제로 저신용층 대출에 사용되는지 검증할 장치가 없다. 일부 대부업체는 은행에서 조달한 저리 자금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거나, 신규 대출이 아닌 기존 고금리 대출의 상환재원으로 돌려쓰는 사례도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합법적인 정부 제도에 따라 지원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은 본지 질의에 “금융당국이 도입한 ‘서민금융 우수대부업자 제도’에 따라, 선정된 대부업자에게 자금을 공급한 것”이라며 “2025년 기준 22개 우수대부업자 중 18개사를 지원 중이며 이는 저신용층 신용공급 확대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제도는 본질적으로 ‘서민금융을 가장한 은행의 그림자수익 모델’”이라고 지적한다.
한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은행이 직접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대부업체를 앞세워 이자 장사를 하는 구조를 합법화한 것”이라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윤리적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금융권의 순이익은 지난해 22조 원을 넘으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서민금융 접근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대출규제(DSR)와 금리상승으로 인해 저신용층과 청년층은 은행에서 밀려나 대부업체로, 그마저도 막히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결국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이 “제도권 밖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우수대부업자 제도는 명분상 포용금융이지만, 실제로는 금융권의 이익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며 “은행이 서민의 고통을 기반으로 수익을 쌓는 구조를 방치하는 것은 금융공공성의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서민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고금리 시장이 합법화되고, ‘우수대부업자’라는 간판 아래 은행자금이 흘러드는 지금, 결국 피해는 저신용자와 서민의 몫이다.
포용금융을 말하는 정부와 은행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금융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고금리 대부업 지원이 아닌 직접대출 중심의 금융복원, 그리고 은행의 사회적 책무 강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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