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마음으로 예비 시댁에 인사를 갔다. 이렇게 열렬한 환대는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보통 부모님 눈엔 제 자식은 넘치고 며느릿감은 기울기 마련인데 두 분 모두 사고뭉치 아들을 치워버려서 후련한 심정들인 것 같았다. ‘째깍째깍’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내 손에 쥐어주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인 듯 터지는 웃음을 참고 계셨다. ‘이 분위기 뭐지?’, 난 기분이 좋으면서도 떨떠름해졌다.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았을 때 우대리는 “어머니, 지금까지 어머님 속을 썩여드렸다면 앞으론 이 여자 속을 썩이며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얼떨결에 건네받은 시한폭탄을 바라봤다.
우대리는 입이 미어져라 갈비찜을 쩝쩝거릴 뿐이었다. 시부모님은 철부지 아들과 살게 된 며느리가 진심으로 안 됐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얘한테 돈 같은 거 맡기지 마라” 아버님은 우려의 말씀을 남기셨고, “그래도 지 새끼 하나는 끔찍이 위할 거다” 어머님은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첫 만남에 동병상련 아픔을 함께 나누게 된 시부모님과 나는 그 흔한 고부갈등 없이 평온한(?) 신혼을 맞이하게 된다.
인사를 드리기 전 우린 소박한 반지예식을 치렀다. 양평 여행길에 우대리가 “우리 아이 태어나면 끼워주자”며 알록달록 귀여운 백일반지를 내 새끼손가락에 끼워준 것이다. 반지란 무릇 둘 간의 두근두근 약속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부모가 개입(?)하는 결혼준비가 시작되자 ‘영원한 약속’이 ‘체면치레’가 되어갔다.
반지 맞추러 가는 날은 멘붕이었다. 시부모님이 다이아 오부를 해주시는데 남편 반지를 어느 수위로 맞춰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진땀이 삐질삐질 났다. 이불 집에서는 수저반상기세트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몰랐냐며 면박을 줬다. 예단 하나에도 내가 모르는 ‘정답’이란 게 있었다. 일사천리 부모가 나서서 준비해주는, 강보에 쌓인 우대리가 부러웠다. 난 고아와 같은 먹먹한 심정이 되었다.
“엄마, 한번이라도 들여다봐야하는 거 아냐? 그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날 난 시골에 계신 새엄마에게 전화해서 폭풍 잔소리를 해대고 순댓국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음침한 아저씨들의 흘깃대는 눈초리를 느꼈지만 내겐 소주의 쓸쓸한 골방이 필요했다. ‘결혼이 뭐라고 이리 복잡한 거야?’ 섭섭할까봐 야외웨딩사진을 찍고, 기울까봐 다이아반지를 사는 결혼이라니, 어느새 나는 공장에서 남들과 똑같은 결혼을 찍어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를 들으며 “닥쳐, 닥쳐” 노래를 불렀다. 순수와 속물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에 매달린 내 모습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매순간 거스를 수 없는 상식의 옷을 껴입느라 혼미했고, 거인의 거대한 수틀에 수놓아진 핏기 없는 신부가 되어갔다. 아름다운 면사포를 쓰기 위해 수틀에 갇힌 나를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BEST 뉴스
-
김건희 ‘판도라 폰’ 공개되자… 도이치 공범 이준수 추적, 행방 묘연
김건희 여사의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가 공개되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숨은 인물’로 지목돼온 56세 이준수 씨의 실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8월1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 -
매출 3억 원 하렉스인포텍, 2조8천억 홈플러스 인수?
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 인수전에 ‘하렉스인포텍’이라는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억 원에 불과하고, 직원 수도 20명 남짓한 소규모 비상장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2조8천억 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을 내세우며 홈플러스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 -
투썸플레이스-포르쉐 케이크, ‘환불불가’ 논란 확산
투썸플레이스가 글로벌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와 협업해 출시한 ‘포르쉐 911 케이크’가 환불 및 교환 불가 정책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포르쉐 911 케이크’ 사진=투썸플레이스 제공 10월 한정으로 판매된 이 제품은 포르쉐 911의 디자인을 형상화한 패키지와 케이크 형태... -
‘매우 혼잡’ 대한항공 라운지…아시아나 승객까지 쓴다고?
#. 16일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타고 인천에서 시드니로 떠난 대한항공 고객은 이날 대한항공 앱에서 2터미널 라운지 혼잡 정도를 검색했다가 깜짝 놀랐다. 2터미널에 있는 3개의 대한항공 라운지가 전부 빨간색으로 표기되며 ‘매우 혼잡’이라고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새롭게 연 ... -
삼성화재, 한방병원 100여곳 상대로 ‘무차별 소송’ 논란
서울 서초구 삼성화재 강남사옥 앞이 또다시 항의 현장이 됐다. 지난 23일 대한한방병원협회(한방병협)는 ‘무차별 소송 남발, 삼성화재 규탄 제2차 항의집회’를 열고 “삼성화재 만행, 이재용이 책임져라”, “환자 치료 방해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본사 앞을 에워쌌다. 사진=... -
인천공항까지 진출한 중국인 불법 콜택시 ‘흑차’
이미지=김은혜 의원실 제공 인천국제공항 일대에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불법 택시, 이른바 ‘흑차(黑車)’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공항 이용객을 상대로 무허가 운송 영업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당국의 단속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