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정부 주요 온라인 서비스 약 70여 개가 중단됐다. 모바일 신분증, 정부24, 국민신문고 등 대민 서비스가 동시에 멈추자 국민 생활 곳곳에서 불편이 이어졌고, 국가 핵심 데이터 인프라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
행정안전부와 관리원 측은 사고 원인을 “UPS(무정전전원장치)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작업 중 전원을 차단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순히 “교체 작업 중 사고”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모호하다.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맥락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배터리 자체 결함·운용 절차의 적정성·작업 관리 부실 등 다층적인 문제가 얽혀 있을 가능성이 드러난다.
이곳에 설치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효율과 저장 용량이 뛰어나 UPS와 데이터센터에 널리 쓰인다. 하지만 작은 이상에도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 전원 차단 과정에서의 스파크, 절연 파손에 따른 단락, 셀 과열로 인한 열폭주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잔류 전압이나 노후·불량 셀이 겹치면 위험은 더욱 커지고, 밀집 설치된 데이터센터에서는 작은 불꽃도 대형 재난으로 확산될 수 있다. 전산실에는 총 192개의 리튬이온 배터리팩이 설치돼 있었으며, 이번 화재로 상당수가 연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사용된 UPS 배터리의 제조·공급사는 LG에너지솔루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기술적 위험뿐 아니라 인프라 구조적 결함도 함께 드러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본원은 UPS 이중화 시스템을 갖췄지만 배터리가 모두 한 공간에 설치돼 있어 화재 발생 시 전체 전원이 차단됐다. 서류상 이중화였지만 실제로는 단일장애점(SPoF) 구조였던 셈이다.
재해복구(DR) 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24와 국민신문고를 비롯한 서비스가 동시에 멈춘 것은, 백업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 기대만큼 기능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UPS 교체 작업이 평일 저녁, 정부 시스템이 정상 가동 중인 시간대에 진행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안전 대책을 추진해왔고, 최근 약 33억 원 규모의 “UPS 배터리 화재 대응시설 구축 전기공사”를 발주했다. 이 사업은 배터리실 분리와 이격거리 확보를 통해 전체 전원이 동시에 마비되는 위험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관리 주체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지만, 예산과 입찰은 행정안전부 차원에서 조율됐다. 그러나 개선책이 현장에 적용되기 전에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직후 정부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는 즉각 상황을 점검하고, 인명 안전과 서비스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발표했다. 그러나 화재 진압에 약 10시간이 소요되면서 서비스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렸다.
현재까지 화재 원인은 확정되지 않았다. 교체 작업 중 스파크가 발생했을 가능성과, 배터리 자체 결함 가능성 모두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조사는 배터리 상태, 교체 절차 준수 여부,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기록, DR 체계의 실제 작동 여부 등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사고는 배터리의 기술적 위험과 인프라 관리 허점이 동시에 드러난 사건이다. 배터리 안전성 검증 강화와 함께, 분산 배치와 실질적 복구 체계 확보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유사 사고는 반복될 수 있다. 이번 화재가 국가 데이터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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