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공직 생활을 끝내고 부부 수필가로 활동하는 정동호씨와 도혜숙씨가 공동수필집 ‘자투리에 문패달기’(해드림출판사)를 출간했다. 이들 부부 수필가는 공직에서 물러날 즈음 한국방송대학교 국문학과에 함께 입학해 젊은이들 틈에서 공부하고 졸업할 만큼, 부부 사랑이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백세시대라는 불리는 요즘 제2기 인생을 새롭고 멋지게 꾸려가고 있다.
‘자투리에 문패달기’에는 이들 부부가 서로 손 잡고 걸어온 40여 년, 낙엽을 밟으며 부스럭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에 휩쓸리는 몽돌처럼 자그락거리면서 살아온 삶의 숙성된 숨결이 깊게 배어있다.
이들 부부의 삶은 공직생활에서 오는 평탄함보다 하루하루가 힘든 여정이었고, 막다른 골목 같은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 송이 작은 꽃을 그리며 서로 평자도 되고 격려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걸어왔다. 그래서 이 수필집에는 가슴에 고인 투박한 그림자들을 소박한 마음으로 그려냈다. 고갯마루 돌탑 쌓듯 하나 둘 모아서, 그걸 부부의 이름으로 작은 책 한 권에 엮게 된 것이다.
정동호 수필에서 보이는 인간성 회복과 선비정신
저자의 오랜 공직 환경이 일부 작품에서도 투영되는데, ‘선비정신’이나 ‘인간성 회복’ 등이 그것이다. 물론 선비정신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측면과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굳이 밝혀야 할 필요도 없이 이 수필집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천착하였다.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저자의 성품은 가히 선비의 후예답기도 하다.
[군자란은 사랑에 까탈 부리지 않고 잔병치례도 없다. 이름 그대로 군자답다고나 할까.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배불리 먹기를 구치 않고, 거처에 안락함도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은 진정한 군자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조금만 추워도 못 참고 작은 더위에도 호들갑을 떤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다 하는 사람이 없고, 채우고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고 더 채우려고 한다.]
이들 수필에서처럼 저자는 소재를 일반적으로 전개하기보다 사물을 비껴 비유적으로 끌어간다. 예컨대 ‘군자란’이나, ‘목련’ 등과 같이, 메시지를 직접 날것으로 꺼내들기보다 꽃의 특성을 비끼면서 선비정신이나 인간성 회복 등 이 시대 우리가 새겨들어야할 덕목들을 제시함으로써 필요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좀 더 쉽게 밀착시켜주는 것이다.
선비정신의 재현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시대적 소명의식이다. 불의(不義)에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 죽음과 맞바꾼 그런 정의로운 정신이 작품 군데군데 깔려 수필의 중후한 품위를 더한다.
도혜숙 수필의 비유와 상징의 함수
뇌수술을 받아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면서, 이미 초월적 해탈의 경지에 접어든 체험이 수필에도 녹아 있다. 또한 저자는 어느 누구보다, 우리나라의 토속 말을 일구고 있다는 것이 먼저 두드러진다.
비유와 상징은 곧 문학의 본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의 경우는 비유와 상징을 뺀다면 사실상 시가 성립되지 않지만 수필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비유와 상징에 대해 민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동요나 가요의 한 구절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도혜숙 수필에서도 사실상 비유나 상징 일색으로 창작된 수필들 있다. 그러고 보면 저자는 시인으로서의 소질도 타고 났다. 이름에서 솔내음이 나고 흔들바위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벌써 도인을 상상하게 된다. 소나무의 상징을 생각하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울림이 단비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과 상통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구름 속에 숨어 있는 달빛소리 또한, 차라리 유언이라기보다 혼을 흔드는 소리라고 해야 어울린다.
부부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지켜준 신념의 보금자리
말할 것도 없이 수필은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작은 깨달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의 인생관이나 사회관 등에 의해 터득하게 되는 어떤 자기만의 충격, 그 피안의 안식, 그 이념의 현실적 덕목이다. 자기만의 이론적 해탈이다. 짧지 않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얻은 고뇌에 찬 자기신념의 은신처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안주의 지릿대가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방황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지탱해 줄 신념의 보금자리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방황하게 될 것이 아닌가. 열반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살면서 자신이 안주할 영원한 천국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정동호·도혜숙 부부 수필집 ‘자투리에 문패달기’에는, 이들 사랑을 돈독하게 지켜준 크신 분의 사랑이 있어 수필의 영안도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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