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정부가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공식 추진하기로 하자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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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한일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배상보다는 국내 재단을 통한 판결금 지급을 선택했다.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부터 2018년 확정판결 이후 한일관계를 파행으로 몰아갔던 배상 문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계기로 한일관계는 전면적 회복 국면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하지만 일본 피고기업을 빼놓은 채 배상 논의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 회견을 열고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2018년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현재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도 역시 판결금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총 15명이다. 일본제철에서 일한 피해자,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한 피해자,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3개 그룹이다.


이와 별도로 대법원에 계류돼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제징용 소송 9건을 비롯해 국내 법원에서 다수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포스코,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한국수자원공사, 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농어촌공사, 농협, 수협,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 KT, KT&G, 대한광업진흥공사(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서울대병원, 기상청 등 국내 청구권 수해기업들이 자발적 기부로 우선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 일본 기업도 참여할 수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회견에서 '일본 기업의 자발적 재단 기부를 용인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민간인 또는 민간 기업에 의한 국내외의 자발적인 기부 활동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박진 장관은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책임이 끝났다며 원칙상 피고기업의 판결금 참여를 거부해왔다. 이런 배경에서 피고기업인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기부 참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기업이 판결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한일 양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미래청년기금'(가칭) 공동 조성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은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재원을 마련해 나가는 한편 피해자·유족 등 원고를 개별적으로 만나 판결금 수령에 대한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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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했다. 사진=연합뉴스

 

생존 피해자들은 이번 정부의 국내 재단을 통한 판결금 지급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조속한 종결을 원하는 유족들도 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피해자 지원단체와 대리인단도 정부 해법에 대해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강제집행 절차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피고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야당도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짓밟은 2차 가해이자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되는 폭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후 하야시 외무상의 약식 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확인한다"고 밝혔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들어있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직접 다시 언급한 것도 아니며, 강제징용에 대한 새로운 사과도 아니다.


이에 정부는 "일본이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피해자 측은 사죄로 인정하지 않는 등 입장이 엇갈렸다.


한일은 해법 발표와 함께 징용 갈등에서 파생됐던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해제를 위한 협의에 즉각 돌입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 판결에 반발해 2019년 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에 나섰고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에서도 제외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산성은 이를 해제하기 위한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개최하기로 했으며 협의를 진행하는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수출규제와 연동됐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도 조만간 정상화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한층 강화할 발판도 마련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날 해법 발표를 즉각 환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오늘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들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의 신기원적인 새 장을 장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이달 중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등 장기간 중단된 한일 간 셔틀 외교도 재개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양자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한일 정상이 양국을 오고가는 것이 중단된 게 지금 12년째 됐다"며 양국 간 이에 대한 논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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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국내 재단 통해 배상 추진…피해자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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