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흔히 ‘아이템’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공간’에서 완성된다.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이다. 상권 입지, 임대료, 유동인구, 공간 활용 구조 등 부동산 요소가 창업의 생존률을 좌우한다. 그만큼 부동산은 창업의 무대이자 진입장벽이며, 더 나아가 지역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축이다.
국내 자영업자의 평균 창업비용 중 임차보증금, 권리금, 인테리어 등 부동산 관련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어선다.
특히 대도시 중심상권의 경우 보증금 수천만 원, 월세 수백만 원이 기본이다.
상권의 인지도나 접근성은 높지만,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아 ‘좋은 입지를 가진 사람만이 창업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 주요 상업지역의 평균 월 임대료는 2019년 대비 약 27% 상승했다. 반면 소상공인 창업자들의 평균 순이익은 같은 기간 10% 이상 감소했다. 이는 부동산 비용이 창업 생태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예전에는 유동인구가 많고 유흥시설이 밀집한 ‘핵심 상권’이 창업 성공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며 소비 패턴이 급변했다.
대형 상권 중심의 오프라인 소비는 줄고, 대신 주거 인접형 생활상권, 이른바 ‘로컬 커머스(Local Commerce)’가 부상했다. 배달, 픽업, 소규모 체험형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거리보다 생활권’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 변화는 부동산 가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홍대·강남의 공실률이 상승하는 동안, 망원동·성수동·연남동 같은 골목상권의 임대료는 오히려 상승했다. 소비자의 ‘체류형 소비’와 지역 정체성이 결합된 공간이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창업자는 더 이상 부동산을 단순한 ‘임차 공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생활 데이터, 이동 패턴, 지역의 콘텐츠 흐름을 읽는 ‘공간 전략가’로서의 관점이 필요하다.
2024년 이후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로 상가 매매가와 임대료가 일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상가 거래량은 감소했지만, 역으로 보면 창업자에게는 ‘합리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실제로 중심상권 내 2~3층 점포나 코너가 아닌 골목길 점포가 이전보다 20~30% 낮은 임대료로 거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시장 변동기에 주목할 만한 흐름을 ‘공유형 창업 모델’이라고 한다. 공유주방, 공유오피스, 팝업스토어 등은 초기 부동산 비용을 대폭 절감하면서도, 상권의 반응을 실험할 수 있는 유연한 창업 방식이다. 이는 부동산 시장의 냉각기가 오히려 창업 혁신의 실험기지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동산과 창업의 관계를 개인경제의 문제로만 좁혀볼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노후화된 상가, 공실 상가, 유휴 부지 등이 청년 창업공간이나 문화복합 매장으로 변모하는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확산 중이다.
예를 들어, 대전 중구의 ‘성심당 골목상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 상권은 창업자들의 유입으로 지역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며 ‘창업이 도시를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창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지역 공간의 콘텐츠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도시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이제 창업의 성공 여부는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가 좌우한다. 과거에는 상권 조사라 해봐야 주변 유동인구나 경쟁 점포 수 정도를 살폈지만, 이제는 AI 기반 프롭테크(PropTech) 기술이 상권의 미래 가치를 예측한다.
소비 패턴, 유동 경로, 임대료 추이, 심지어 SNS 키워드 분석까지 종합해 창업지의 ‘예상 매출’과 ‘적정 임대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시대다.
정부나 지자체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정보시스템’, 서울시의 ‘상권분석서비스’ 등을 통해 데이터 기반 창업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창업자들은 체계적인 정보 없이 ‘상권의 명성’만 믿고 진입했다가 높은 임대료에 밀려난다. 부동산 시장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의 상권 투명화와 창업자 교육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을 창업 생태계 정책과 연계해야 한다. 첫째, 유휴 상가를 활용한 공공 창업공간을 확충해야 한다. 공공임대 상가나 빈 점포를 청년·소상공인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도시형 창업 허브’ 모델은 지역 활성화와 부동산 시장 회복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상가 임대차 정보의 공개와 임대료 안정 장치가 필요하다. 임대료 급등은 창업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다. 상권별 임대료 공시제나 장기임대 상가제 도입은 창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프롭테크 기반 창업지원 플랫폼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구축해, 창업자들이 데이터 기반으로 입지를 선택하고, 부동산 소유자는 상권의 효율적 관리로 수익성을 높이는 상생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은 창업의 토대이고, 창업은 부동산의 가치를 재생시키는 힘이다. 결국 두 산업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공간경제의 두 축이다. 부동산을 이해하는 창업자, 창업을 이해하는 부동산 시장만이 미래 도시의 성장동력을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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