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역대 최다 '텔레그램 n번방'사건 전말(종합)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신상 일부 공개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 성 착취물’ 등을 제작·유통한 혐의를 받는 ‘박사’ 조모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2일 역대 최다 동의 인원인 200만명의 동의를 넘어섰다. 피의자인 '박사' 조씨 외에 해당 방을 이용한 이들의 신상까지 공개하라는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도 100만 명을 넘겼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2018년 9월경 일명 트위터 일탈계 '섹트'에서 '경찰 사칭 성폭행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해당 수사관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텔레그램과 같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SNS에 대해서는 수사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미온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해외 서버의 경우 특정 ip를 찾아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3개월 정도로 수사기관이 협조 공문을 보내고 받는 동안 대부분 흔적이 지워져 검거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게 묻힐 뻔 했던 사건이 지난 해인 2019년 1월 서울신문이 단독으로 텔레그램 비밀방에서 아동 음란물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취재하면서 언론에 알려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진 않았다. 같은 해 4월 시사저널은 텔레그램이 불법촬영물 공유용 범죄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고 8월 12일자 전자신문은 처음으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기사화됐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신고한 것은 두명의 대학생인 '추적단 불꽃'. 지난해 9월 추적인 불꽃의 탐사‧심층‧르포취재물이 공모에서 수상작이 되면서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여진다. 얼마 후 11월 한겨레가 기획기사를 게재하면서 텔레그램 n번방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텔레그램에는 입장료 60만원짜리 ‘고액후원자방’, 입장료 25만원짜리 ‘하드방’, 그리고 무려 입장료가 150만원에 이르는 방도 있다. 이 방들은 등급별로 이름을 가졌는데, ‘실시간 노예방으로 이루어진 최강의 방’도 존재한다.
게다가 이 방은 텔레그램이 아닌 또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에 설치되어 있는데 미국에 서버를 둔 ‘위커’라는 메신저로 텔레그램과 달리 전화번호를 인증할 필요가 없어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고 밝혔다. n번방들 중 ‘박사’라는 닉네임이 운영한 ‘박사방’이 가장 유명한데,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유통하는데 암호화폐로 결제해야만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겨레 기사가 나가자 n번방 가해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19년 11월 29일에 올라왔다. 동의자가 133,313명을 기록해 청원의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졌다. 그러다 올들어 1월 2일 새로운 청원이 올라왔고 드디어 20만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청와대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1월 15일 n번방 사건과 관련해 국제공조수사,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양형기준 상향 등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에는 10만명이 동의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본회의 의제로 못 올리면서 졸속 처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관련 자료집 제공에도 불구하고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리됐다며 비난은 거세졌다.
신문에 이어 방송에서도 텔레그램 n번방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다. 올해 1월 17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뤘는데, 방송 직후 n번방의 운영자로 추정되는 '갓갓'에게 성착취를 받았다는 피해자가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월 19일 귀국 당시 인천공항 현장에서 발표한 메시지를 통해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언급했고, 2월 19일에 관련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원외정당인 여성의당은 세차례의 성명서를 통해 해당 사건의 해결을 촉구했다.
수사가 착수된 후 지난 2월 66명의 n번방 사건 가담자 124명을 검거됐다. 이 중 '박사'로 추정되는 피의자 조모씨를 포함해 총 18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피의자 조모씨는 본인이 '박사'임을 시인하고 공범 중 사회복무요원들이 배후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몰래 유출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지난달 10일부터 경찰청·지방청의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동원해 텔레그램과 다크웹(Dark Web·IP 추적이 불가능한 불법 웹), 음란사이트, 웹하드 등 사이버 성폭력 4대 유통망을 집중 단속했고 한 달 동안 58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n번방’을 처음 만든 인물 ‘갓갓’이라고 불리는 운영자는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구속된 피의자 조씨는 2018년 12월부터 인터넷에 ‘스폰서(성상납) 아르바이트 모집’이라는 글을 올렸다. 피해자가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면 얼굴과 나체 사진을 보내게 한 뒤 유출하겠다고 협박하며, 성행위 영상을 강제로 찍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영상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유료 회원들에게 유포했다. 확인된 피해자만 74명으로, 이 중 16명은 미성년자로 드러났다.
피의자 '박사'의 신상공개와 텔레그램 n번방 유료회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지상파 방송 3사도 뒤늦게 뉴스에 n번방 사건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해 말 '와치맨'(혹은 감시자)으로 알려진 A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해 2월부터 관련 범죄 창시자인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넘겨받아 운영한 인물이다. A씨가 운영하는 대화방은 ‘고담방’으로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그는 “폐쇄된 음란물 공유 웹사이트 소라넷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이후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고 ‘박사’가 그 빈자리를 차지한 뒤 범행을 이어가다 뒤따라 붙잡힌 것이다.
'와치맨'과 '박사'를 검거하면서 3인방 중 남은 사람은 '갓갓' 한 사람뿐이다. 경북지방경찰청이 '갓갓' 검거 작전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갓갓'의 것으로 추정되는 IP주소들을 특정한 상태다.
23일 SBS는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이라는 대화방을 만들어서 운영해 왔던 25살 조주빈.
SBS 보도에 따르면 조씨는 정보통신 전공자로 지난 2018년 대학을 졸업했다. 4학기 중 3학기 평균 학점이 4.0 이상을 받는 등 성적이 좋았고, 학보사에서 활동하며 편집국장을 맡았다. SBS는 조씨가 학보에 게재한 기명 칼럼도 공개했다.
또 학보사 동료의 말을 인용해 “조씨가 성 문제 등으로 일탈 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학보사 동료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기사도 자기 마음대로 쓰고 교수님과도 트러블(갈등)이 있었고, 간사와도 트러블이 있었다”면서도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조용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SBS는 조씨가 지난해 9월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만들어 성 착취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경찰은 SBS가 공개한 조씨의 신상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 주지 않았다. 경찰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 위원회’를 열고 조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