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Home >  오피니언 > 
-
'우루무치' 신장성의 중심...실크로드 여행의 거점
우루무치(烏魯木齊)는 신장성의 성도다. 166만km2(남한 면적은 9.9만 평)의 거대한 이 성은 세계 제2고산인 K2(중국명:쵸거리펑 喬戈里峰 8611m)가 파키스탄을 국경으로 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타클라마칸 사막 또 세계 2대 사막까지 신비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백리유전으로 대표되는 자원의 보고다. 그 중심도시인 우루무치는 타클라마칸에서 좀 떨어져 주위에 산과 물이 있어 비옥한 토지를 이루고 있다. 우루무치는 중국 최대의 자치구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구도(區都)이다. 우루무치는 생각보다 발전한 내륙 도시로 독특한 오락 문화를 갖고 있는 곳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먹을거리다. 우루무치에는 특색 음식과 특산품이 많다. 중국 거리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카오양로추알의 고향이 이곳이다. 원료가 신선하고 좋은 만큼 맛도 뛰어나다. 카오취안양은 1∼2년 된 연한 양고기를 골라 씻어서 가는 소금으로 간을 하고 생강, 달걀, 밀가루 등으로 섞어서 만든 즙을 발라 낭캉에 넣어서 찌는 요리이다. 밀봉한 낭캉은 고기의 향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고기가 특히 맛있다. 사오주아판은 쌀, 기름, 양고기, 당근, 양파 등으로 찐 후 만든 것이다. 포도 등의 재료로 만든 단 사오주아판은 관습에 따라 오른손의 엄지, 식지, 중지로 찍어 먹는다. 얼다오치아오(二道橋) 우루무치의 가장 친근한 여행지는 오래된 거리인 얼다오치아오(二道橋)다. 이곳은 우루무치에서 가장 오래된 위구르주족 마을이다. 갖가지 신장 풍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지에팡난루(解放南路)가 그곳인데 음식, 음악, 민속 공예 등을 느낄 수 있다. 시내 여행으로는 우루무치 시의 관광 명소인 홍산(紅山)에 올라가서 우루무치 시를 내려다본다. 산은 910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홍산 정상에는 1788년에 만들어진 9층 탑 진용탑(鎭龍塔)이 있는데 당시 대홍수가 지난 후 용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홍산상창(紅山商場) 앞에서 버스를 타면 신지앙위구르자치구박물관(新疆維吾爾自治區博物館)에 갈 수 있다. 이곳에는 12개 소수민족 공예품과 문물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텐산 톈츠(天池) 우루무치의 여행은 톈츠(天池)를 시작으로 하는 것이 좋다. 우루무치에서 110km 정도 떨어진 톈산 톈츠(天山 天池)는 백두산 천지보다 약간 작은 3㎢ 크기이고, 높이는 1980m에 있는 고원 호수이다. 평균 수심은 105m. 호수 뒤쪽으로 설산인 보꺼따펑(博格達峯)이 솟아 있다. 호수에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천막집인 파오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 주목왕(周穆王)과 서왕모가 이곳에서 만났다는 말이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 갖다 붙인 것이다. 톈츠 지역은 우선 호수에서 5km 정도 떨어진 스먼(石門)에서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출입구 같은 길을 지나서 구비길을 지나면 시샤오톈츠(西小天池)를 지난다. 여행단에 따라 서는 데가 있다. 다음은 주차장인데 주차장 위에서 유람선을 타면 달마동(達摩洞), 왕무먀오(王母廟)를 보고 하이시마터우(海西碼頭)에 내릴 수 있다. 이 선착장에서 조금 들어가면 수이수산좡(水秀山莊)이 있는데, 2일 동안 머물 사람은 이곳에 여장을 풀어도 좋다. 이곳에서 더 오면 민수원화춘(民俗文化村)도 숙박 시설이 있다. 톈츠는 고산이니만큼 방한복을 착용해야 한다. 바이장거우(白場溝 백장구)에 있는 난산(南山) 목장은 상당히 크다. 서쪽에서 봤을 때 시바이장거우(西白場溝), 쥐화타이(菊花臺), 둥바이장거우(東白場溝), 자오삐산(照壁山), 먀오얼거우(廟爾溝), 따시거우(大西溝) 등으로 나누어진다. 난산에서 시바이장거우까지는 80km, 북쪽은 톈산의 커라우청산(喀拉烏成山)의 기슭이고, 그 중간에 해발 2252m의 난산 목장 최대의 평원이 자리한다. 안은 소와 양의 바다라 불릴 만큼 강한 인상을 준다. 각종 볼거리가 있고, 하자크 유목민들의 생활 문화나 먹을거리 등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
투루판(吐魯番) '여기가 중국이 맞아!' 중국 속 아랍
둔황에서 우루무치로 향하는 길에 투루판(吐魯番)이 있다. 이곳은 고대 비단길의 중요한 도시다.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향기로운 포도, 과일의 고향이다. 이 지역의 과일은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 씻기만 하고 그냥 먹어도 된다. 2000여 년 동안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 아직도 서 있는 가오창(高昌), 지오허(交河)성, 베즈크리크(柏孜克里克) 천불동의 벽화, 천년된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아스타나(阿斯塔那) 무덤, 구조가 독특한 청나라 이슬람 건축인 수공타(蘇公塔)가 이곳에 모여 있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훠얀산(火焰山) 사진=조창완 여행작가 제공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훠얀산(火焰山), 웅장한 인공 지하 강인 칼징(坎兒井), 포도원 아가씨들의 사랑 노래, 별미가 있는 바자르 풍습, 웨우알(緯吾爾)족의 노래와 춤, 2400만 년 전 코뿔소 화석은 투루판을 고대 문화 역사 유산이 집중된 곳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투루판 시를 중심으로 봤을 때, 주요 여행지는 삼각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우선은 푸타오거우(葡萄溝)-베즈크리크(柏孜克里克)천불-아스타나묘-까오창구청-칼징-지아오허구청-투루판의 방향이다. 이것을 편하고 빠르게 보려면 단체로 차를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존스카페의 게시판 공고를 통해 같이 갈 동료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여행지 간에 공공버스와 택시를 적절히 결합해서 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자전거를 빌려서 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존스카페에서 자전거를 임대해 준다. 또 우루무치나 투루판에서는 수시로 1일이나 2일짜리 투루판 여행 상품을 파는데 웃돈이 많지 않으므로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공타(蘇公塔 소공탑)는 투루판의 상징탑이다. 투루판 시 동부 교구 2㎞의 포도향 무나거(木納格)촌에 있으며, 특이한 모양의 이슬람 고대 탑이다. 지금도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영험한 탑이다. 수공타(蘇公塔 소공탑) 사진=조창완 여행작가 제공 수공타는 신장에 남아 있는 제일 큰 고대 탑이고 서기 1778년에 건설되었다. 이 탑은 청나라의 유명한 장군인 투루판 왕 으민허주어(額敏和卓)의 둘째 아들인 수래만(蘇來曼)이 아버지의 행적을 기념하고 청나라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스스로 7000량(兩) 백금을 내어 건설한 것으로 높이가 44m나 된다. 이슬람 건축 사상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탑의 정상에 관측소가 있는데 사면에 창문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북방의 톈산, 훠얀산, 푸타오거우(葡萄溝), 남방의 투루판 시 주택을 모두 볼 수 있다. 지아오허구청(交河故城 교하고성)은 투루판 시 서쪽 10km의 얄내즈고우(雅兒乃孜溝) 30m 절벽의 평평한 마루에 있으며, 남쪽에 얀산(鹽山)이 있고 북쪽에 지오허(交河)가 있으며 지세가 아주 험하다. 지아오허구청(交河故城 교하고성) 사진=조창완 여행작가 제공 주위에 물이 있기 때문에 도시의 형상이 버드나무 가지 같고 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땅이며 남쪽에서 북쪽까지 약 1650m이고 동서향 제일 넓은 곳이 약 300m인데 항공모함을 닮았다. 지오허구청은 처스치안부(車師前部) 왕국의 국도이고 당나라 유적지이다. 건설 구조가 독특하고 세계에서 제일 크고 제일 오래되고 제일 잘 보존된 흙 도시다. 3000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당대에는 안서도후부(安西都濩府)가 건설되기도 했으며, 13세기에는 몽고의 침략을 받아 약탈되기도 했다. 성은 관부와 민가, 동문, 사원 구역 등으로 잘 구분되어 있다. 가오창구청(高昌古城 고창고성)은 웨우얼 언어로 두후청(都護城)이라고도 불린다. 즉 ‘왕성’이라는 뜻이다. 실크로드의 중요한 무역과 여행의 중심이다. 가오창구청(高昌古城 고창고성) 사진=조창완 여행작가 제공 성은 기원전 1세기 때부터 건설됐다. 460년에는 베이량(北凉) 왕조가 고창국(高昌國)을 건설했다. 이후 840년부터 1275년까지 가오창(高昌)은 후이구한(回쭞汗) 왕국의 수도였다. 627년 당나라 현장법사가 3년 동안 이곳에서 강의해 불교를 숭상하게 됐는데, 왕과 의형제까지 맺었다. 투루판 시 동쪽 45m의 훠얀산 남쪽의 무터우가우(木頭溝)하 삼각주에 있고, 비단길에서 필히 지나야 되는 지역이고 중요한 대문이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부터 가오창은 중원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무역 거래가 아주 활발하고 세계 각지의 종교가 가오창을 통하여 내륙에 진입했으며 세계 고대 종교가 제일 활발하고 발달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13세기에 몽골족의 침입을 받아 황폐화됐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됐던 아스타나(阿斯塔納)의 무덤은 투루판 시에서 40여km 떨어져 있고, 고대 가오창 왕국의 공공 묘지로 가오창 고성에서 2km떨어져 있다. 동서로 5km, 남북으로 2km다. 가족 단위로 각 구역을 분리해서 무덤이 형성되어 있으며 천연 자갈로 경계가 구분되어 있다. 무덤에서 문서, 묘지, 회화, 토우, 도자기, 목·금·석등 물건과 고대 돈과 비단, 면모방 직물 등 진귀한 문물 1만여 개가 출토되었다. 특히 여기서 발굴된 미라는 이집트의 미라와 견줄 만큼 세계에서 유명하다. 베즈크리크(柏孜克里克) 천불은 투루판 동쪽 45km의 훠얀산 중간 부분의 무가우허구(木溝河谷) 서안 절벽에 있는 석굴 사원이다. 베즈크리크(柏孜克里克) 천불 사진=조창완 여행작가 제공 남쪽이 가오창구청까지 15km이며 신장의 비교적 크고 유명한 불교 석굴사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 현재 83개 동굴에서 40여 개 벽화를 찾았는데 총 면적이 1200m2일 만큼 벽화들의 규모가 크다. 20세기에 독일인에 의해 도굴되어 중요한 벽화들이 독일로 이동되었는데, 28폭의 가장 좋은 그림들이 전쟁 중 폭격으로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다. 서유기의 종착지 훠얀산(火焰山 화염산)은 투루판 분지의 북쪽에 있고 동서 방향이며 길이가 100여km에 이르고 제일 넓은 곳의 폭은 10km이다. 훠얀산에는 풀 한 포기 없고 새 한 마리도 없다. 한여름이 되면 아주 덥기 때문에 연기가 많이 나고 빨간색의 산이, 날아다니는 용과 같으며 아주 웅장하다. 〈서유기〉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투루판 시에서 동북향으로 10km 지점에 표지석이 있고, 경관이 가장 좋다. 이 훠얀산의 중간에는 남북 8km의 신선한 협곡이 있는데, 좋은 포도 산지로 유명한 푸타오거우(葡萄溝)다. 이곳에서는 13개종이 매년 6000t씩 생산되는데, 중국에서도 최상질의 포도로 알아준다. 포도 관련 시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포도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칼징(坎兒井)은 중국에서 동서를 관통하는 만리장성과 남북을 연결하는 따윈허(大運河)와 같이 유명한 중국 고대 3대 공사 중의 하나로 위대한 지하 수리 공사인데 지하운하로 보면 맞다. 칼징(坎兒井) 내부 사진=조창완 여행작가 제공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부터 초기 형태를 갖추었고 비단길의 발전에 따라 점차 서쪽으로 중앙아시아와 버쓰(波斯)에 전입했다. 칼징은 지면 경사도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빨아들여서 관개한다. 통계에 따르면 투루판 분지의 칼징은 1237개가 있으며,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칼징은 853개이고, 총길이가 5000km를 넘었으며, 물량은 10m3/초이다. 제일 깊은 것은 90m 이상이고, 길이는 보통 3∼8km이며 제일 긴 것은 10km이상이다. 일반적으로 관광하는 칼징은 투루판 6km 지점에 있다 투루판은 포도의 고향이고 포도의 나라다. 역사서에 따르면 2000여 년 전 서한 시기에 장치안(張騫)이 서역(西域)에 사절로 나갔을 때 바로 여기서 포도 종자를 발견했다. 투루판 포도는 투명하며 달고 즙이 많다. 포도의 종류가 아주 많고 우허바에(無核白), 홍포도, 흑포도, 장미향, 바에부레이크(白布瑞克) 등 500여 가지의 좋은 품종이 있고 ‘세계포도식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미과도 포도와 더불어 신장을 대표하는 과일 중 하나다. 우리의 참외와 비슷하며 ‘명귀지과, 과중지왕’(名貴之果, 瓜中之王)이라고 불린다. 하미과의 외형은 타원형이고 껍질이 노란색이나 청색이고 무늬가 있다. 과실의 살이 많고 하얀색, 청색, 오렌지색이다. 하미과는 진나라 때부터 궁에 진상되었다. 투루판의 하미과는 껍질이 두껍고 살이 맛있으며 저장하기도 쉽다. 현지에서는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
란저우(蘭州), 사막으로 떠나는 긴 여행의 시작
란저우 시는 깐수성 중부에 위치하고 있다. 황허(黃河)의 양쪽으로 형성된 도시를 자세히 보고 싶다면 자전거를 빌려서 하루만 여행해도 금방 그 근거를 알 수 있다. 강변을 따라 풍경을 볼 수 있다. 삔허로우(濱河路) 공원이나 붜랑(博浪) 공원을 보고 맞은편에 있는 바이타산(白塔山)에 가서 시내의 전경을 보면 된다. 란저우의 음식은 간식 종류가 많은데 종류가 많고 맛이 독특하다. 대다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다. 전국에서 유명한 란저우뉴러우미엔(蘭州牛肉面) 이외에 냥피즈(釀皮子), 러뚱궈(熱東果), 우이또우탕(灰豆湯), 초우미엔펜(炒面片), 라툐우즈(拉條子), 일반 가정에서 잘 먹는 음식이 있다. 좀 거창한 요리로는 새끼 돼지구이인 란저우카우샤오주가 있다. 약 40일을 자라 4.5kg된 새끼 돼지를 골라 씻어서 석탄으로 굽고 잘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춘삥(春餠), 허예삥(合횘餠), 쯔마삥(芝麻餠) 등과 함께 먹는 요리다. 물론 새끼 돼지가 불쌍하다면 피해야 한다. 란저우라미엔(蘭州拉面) 란저우라미엔(蘭州拉面)은 어떻든 란저우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란저우 라미엔은 칭탕뉴로우라미엔(淸湯牛肉拉面)이라고도 하는데, 란저우시에서 제일 유명한 특산 음식이고 현지 사람에게 ‘란저우의 맥도날드’로 불린다. 라면은 청나라 광쉬(光緖)시대에 회족 노인 마바오즈(馬保子)가 처음으로 만들어 냈는데 쇠고기가 연하고 국물이 많고 면이 쫄깃쫄깃하여 중국과 외국에서 선호한다. 란저우라미엔은 일청(一淸 : 탕이 청하다), 이백(二白 : 무가 하얗다), 삼홍(三紅 : 고추기름이 빨갛다), 사록(四綠 : 향료용 채소가 푸르다), 오황(五黃 : 국수가 노랗다)이란 5대 특징이 있다. 국수는 굵기에 따라 아주 굵은 면발, 굵은 면발, 중간 면발, 가는 면발, 아주 가는 면발 등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다. 면은 손으로 직접 만들며 2분도 안 돼 한 그릇을 다 만들기 때문에 란저우 사람들이 가장 쉽게 먹는 음식이다. 거리마다 라면점이 있고 그중 핑량루(平凉路)에 있는 진띵(金鼎), 우뚜루(武都路)에 있는 마쯔루뉴러우미엔관(馬子祿牛肉面館), 장이에루(張죄路)에 있는 민족음식점이 특히 유명하다. 문화평론가 위치우위(余秋雨)의 글을 보면 이 란저우에서 알게 된 한 라면집 주인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문화대혁명 때 마씨 성을 가진 이가 운영하는 라면집에서 라면을 먹던 한 배우가 갑자기 체포되어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 주위에서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을 때, 그 라면집 주인 마씨만이 그의 주위에 식량을 주어 생활이 가능하게 했다. 20년 후 그 배우가 복권되고 성공해서 그를 찾았을 때도 그는 여전히 그전처럼 맛있는 라면만을 말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요 여행지는 바이타산(白塔山 백탑산)이다. 란저우 시 황허 북쪽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바이타산은 산머리에 원나라 백탑이 있어 바이타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바이타산 백탑은 몽고에 가서 칭기즈칸에게 인사하러 가다가 란저우에서 입적한 시장 싸쟈파이(薩迦派) 라마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산 아래는 오래된 다리인 중산쵸(中山橋)가 있는데 중산쵸와 백탑이 연결되어 하나의 몸과 같다. 이곳은 란저우 시에 가면 반드시 돌아봐야 할 곳이다. 삔허로우(濱河路 빈하로)는 남북으로 난 란저우 시내를 인도하는 강가에 있는 도로로, 중국에서 제일 긴 시내 거리다. 여행자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 황허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가 공원에 꾸며놓은 갖가지 인상적인 것들을 볼 수 있다. 핑싸뤄옌(平沙落雁), 붜랑(博浪), 쓰처우구따오(絲綢古道), 항허무친(黃河母親) 등 아름다운 조각상을 볼 수 있고 〈서유기〉를 토대로 만든 각종 장식물들도 있다. 중간에는 중산티에치아오(中山鐵橋)가 있는데 바로 바이타산공위안(白塔山公園)과 연결되고, 쑤이처공위안(水車公園) 등도 연결된다. 깐수성보우관(甘肅省博物館 감숙성박물관)은 란저우 시 치리허(七里河) 구 요의빈관(友誼賓館) 건너편에 있다. 박물관 안에는 각종 다양하고 특이한 신석기 시대의 컬러 도자기와 깐수성 한지안(漢簡), 각 시대의 문물 7만 5000여 건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특히 아름다운 컬러 도자기 문화와 석굴 예술 보물이 유명하며 이들은 중국 고대 문화 발전과 교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재이다. 그리고 가로 8m, 높이로 4m로 된 황허 고대 코끼리 화석의 복사품도 있다. 란저우에서 좀 멀지만 빙링스스쿠(炳靈寺石窟 병령사석굴)는 란저우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란저우 남서쪽 100km, 용징셴(永靖縣) 35km에 있는 거대한 석굴군이다. 주변에 중국 최대(산샤댐 건설이전까지) 수력댐인 류지아샤(劉家峽) 댐이 있다. 병령(炳靈)은 티베트어로 ‘십만불’(十萬佛)이라는 뜻인데, 불상의 수보다는 불상이 많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빙링스는 서진(西秦) 건홍(建弘) 원년(420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절 내에는 694개의 석조상과 82개의 진흙상, 벽화 900m2가 있는데, 도합 20개 굴이다. 27m의 대불상 위에 있는 당술굴 벼랑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석굴은 27m의 대불상 위에 있는 당술굴(唐述窟 第169窟)로 예술 가치가 높다. 그밖에 125감(龕)에 있는 석조 석가모니와 다보불이 유명하다. 빙링스 굴의 조각이나 벽화는 6조시대 이 지역의 사회 모습과 민속, 음악, 무용 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의 기능도 하고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저자
실시간 기사
-
-
무란웨이창-광활한 대륙과 초원의 내몽골
- 중국 문화 저술가 위치우위의 <천년의 정원>에는 피슈산좡에 대한 묘사가 첫 부분을 장식한다. 특히 그가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청나라 황제들이 만리장성의 수리를 주장하는 주변의 요청을 거듭하고, 장성의 바깥인 청더에 별궁을 세운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강희제는 장성 수리에 반박하면서 “진이 장성을 축조한 이래, 한·당·송 역시 항상 수리를 하였는데, 그렇다고 어찌 당시인들 변방의 환난이 없었단 말인가?… 오직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국토 수호의 유일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나라의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니, 변경이 절로 굳건하게 될 것이다”는 논리로 장성 수리를 거절하는 한편 청더에 별궁을 세우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란웨이창(木蘭圍場)을 설치한다. 무란웨이창으로 가는 길 무란웨이창은 사냥을 하는 한편 군대의 진을 연구하는 장소로 왕들에게 항상 연구하고, 신체를 단련하는 연습을 하는 장소다. 실제로 그와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치세는 청나라가 중국의 대부분 지역을 통일하는 한편 경제·문화적으로도 가장 융성한 국가를 만들게 했다. 흔히 베이징에서는 빠상차오위앤으로도 불리는 무란웨이창은 청더에서 출발할 경우 3시간쯤 걸리는 웨이창셴(圍場縣)을 경유한다. 다시 이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앞서 보았던 모습과 달리 울창한 숲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현재 여행지로 개발된 무란웨이창의 시작이다. 대문을 통과하면 울창한 전나무나 낙엽송으로 된 숲이 펼쳐지고 산길을 오른다. 구절양장의 길을 지나면 정상부에 도착한다. 이 정상부에 〈황제의 딸〉의 촬영장인 위에량후(月亮湖)가 있다. 위에량후는 말을 탈 수 있는 시설부터 몽고빠오나 통나무집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호수에서는 조각배를 타거나 모터보트를 즐길 수 있다. 또 북방 삼림대의 시작인 백화나무 숲을 볼 수 있다. 다시 조금 가면 하산 길이 시작된다. 앞으로는 일망무제의 고산삼림대가 장관을 이룬다. 이 산 너머에 훈찬타커 사막이 있다. 만약 이 삼림대가 없었다면 베이징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오는 황사량의 수십 퍼센트가 증가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방풍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마운 삼림대다. 언덕을 내려오면 아담한 평지가 펼쳐지고 거기에 여행자 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준4성급 호텔에서 몽골 파오까지 다양한 숙박 시설이 있는데, 밤이 되면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이다. 이곳은 밤이 되어야 본모습이 드러난다. 이곳의 대형 파오들에서는 각기 특색을 갖춘 전통 공연이 식사와 함께 선보인다. 전통 몽골 공연에서 잡스러운 댄스파티까지 호텔마다 열리는 다양한 연회에 빠져보는 재미가 일품이다. 또 길거리에는 전통 몽골 술에 양이나 소를 바비큐하여 파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술도 그 지방의 다양한 약초로 담은 술에서 양젖을 발효해서 만든 몽골식 바이주(白酒 빼갈)나 맥주까지 흥겨운 판이 벌어진다. 또 사방에 터지는 폭죽과 캠프파이어로 여행자들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밤이면 반소매로는 버티기 어려울 만큼 시원한 날씨가 여행자들을 뼈 시린 피서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곳에서 10분만 새로 닦인 길을 따라 가면 작은 강이 나온다. 청더를 지나는 루완허의 발원지인데 이곳에서는 시시하지만 래프팅도 가능하다. 이 강을 지나면 네이멍구가 시작된다. 씁쓸하게 이 길목에서 입장료를 징수한다. 네이멍구로 들어서 얼마 가지 않으면 홍산쥔마창(紅山軍馬場)이 나온다. 이곳은 중국의 군대에서 쓰는 말을 기르고, 훈련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감탄하게 되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초원형 산들이다. 평안한 풀들이 자라는 작은 산들은 여행자들에게 뛰어가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곳에서 말을 타거나 4륜 바이크를 탈 수 있다. 말타기는 보통 한 시간에서 3시간 가량을 탈 수 있다. 한 시간을 타면 초원을 거닐다가 오고, 두 시간을 타면 아오빠오(몽골인들의 서낭당이자 신호대)가 있는 곳에 간다. 3시간이면 자작나무 숲을 다녀올 수 있다. 군마장을 나와 다시 길을 가면 일망무제의 초원이 펼쳐진다. 〈강희황제〉를 찍었던 촬영장도 있는데, 아름다운 몽고빠오와 초원이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만드는 곳이다. 무란웨이창은 청더에서 120km가량 떨어져 있다. 청더에서 갈 수 있지만 직접 가자면 스허잉(四合永) 역이 가깝다. 이곳에서 웨이장까지는 22km가량 떨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가깝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시즈먼장거리버스터미널(西直門長途客運站)에서 웨이장(圍場)행 버스가 많다. 글 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 오피니언
-
무란웨이창-광활한 대륙과 초원의 내몽골
-
-
와이빠먀오-황제의 별장을 둘러싼 마음의 안식처
- 피슈산좡 주변에는 사원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와이빠먀오(外八廟)로 불린다. 가장 큰 곳은 푸투오종청지먀오(普陀宗乘之廟·보타종승지묘 일명 소포탈라궁)다. 멀리서 바라본 소포탈라궁 1767년(건륭 32년)부터 건립돼, 건륭제 60세 회갑(1771년)에 완공됐다. 이 건물은 건륭제 회갑 기념도 있지만, 티베트에 있는 달라이 라마 8세에 대한 경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미 티베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륭제가 라마를 위해 지었다는 점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건륭제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780년 이 사원의 건립에 맞추어 청더를 방문한 박지원 일행은 그들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었다. 오색 능단(두꺼운 비단과 얇은 비단) 폐백을 가지고 반선(판첸 라마)을 보도록 하였는데, 황제까지 노란 수건을 가지고 반선을 대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다. 조선 사신은 서번(서쪽 오랑캐)에게 조아릴 수 없다고 버티다가 황제도 그런 예를 차리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이 과정을 통해 박지원은 국제 정세가 이제 더 이상 중국만이 세계의 중심일 수 없고, 중국 변방에 위치한 나라라고 오랑캐로만 폄하하는 등 중심과 주변을 분리하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곳이나 중심이고 또 주변일 수 있다는 융통성 있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푸투오종청지먀오의 옆에 수미푸쇼우즈먀오(須텆福壽之廟·수미복수지묘)가 있다. 건륭제 45년에 창건했는데, 주된 목적인 건륭제의 생일을 맞아 이곳을 방문하는 판첸 라마 6세를 영접하기 위해 만들었다. 수미푸쇼우즈먀오 때문에 사원의 모양은 티베트 시카체(日喀則·르커저)를 모방했다. 건물의 구조는 푸투오종청지먀오와 비슷한데, 가장 큰 특징은 먀오까오주앙옌뎬(妙高莊嚴殿·묘고장엄전)이다. 이곳은 판첸 라마 6세가 머물면서 독경을 한 곳인데, 1층 중앙에는 석가모니상이 있고, 주변에는 라마의 보좌 등이 배치되어 있다. 두 사원에는 라일락을 비롯한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어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소포탈라궁 유리문 우리 여행자가 많이 머무는 왕징의 옆으로 징순루(京順路)가 지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은 버스는 이곳을 통과하는데, 5분 정도의 간격으로 청더행 버스가 있다. 청더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 30분 걸린다. 우다코우 쪽에 묵는 이들은 시즈먼(西直門) 지하철에 있는 북경북역에서 2101/2108 열차를 타는 것이 편리하다. 청더의 숙박은 그다지 저렴하지 않다. 도착 후 호객인을 통해서 숙소를 찾을 수 있다. 수준 있는 호텔로는 텐보자르지우디엔(天寶假日酒店 TianBao Holiday Hotel)이나 푸닝스상거탕따지우디엔(普寧寺上客堂大酒店 Pu Ning Hotel) 등이 있다. 이 여행길은 제목처럼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만한 곳으로 동행하면서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하자면 바로 본문에 자주 언급되었듯이 〈열하일기〉다. 열하일기에서 노마디즘 등의 정수를 뽑아내서 쓴 책으로 이 길의 해설서이자 여행을 통해 자신을 키우는 여정을 소개한 책이다. 좀 무겁다면 최근에 출간한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고미숙 저/아이세움 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고미숙 저/그린비 간)도 좋다. 〈열하의 피슈산좡〉이란 책은 중국의 문화 해설가 웨난이 펴낸 책으로 열하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전문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피슈산좡의 역사는 사실 강희제, 건륭제 등 중국 최고 황제들의 역사이니 만큼 중국 역사의 최절정을 느끼는 흥미가 있다. 〈천년의 정원〉은 중국의 유홍준인 위치우위가 열하를 보고 느낀 감상을 쓴 글이다. 한족의 입장이지만 위대한 왕조에 대한 경외를 느낄 수 있는 글이 들어 있다. 글 사진= 조창완 여행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 오피니언
-
와이빠먀오-황제의 별장을 둘러싼 마음의 안식처
-
-
청더 피슈산좡 -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황가 정원
- 옌산 산맥을 넘으면 다시 고속도로가 나온다. 고속도로를 타고 40분 정도를 달리면 청더에 닿는다. 청더 10km 전에 쑤앙타산(雙塔山) 등 재미있는 경관이 있지만 볼거리에 비해 입장료가 너무 높으므로 굳이 권하지는 않는다. 피서산장 사자상 청더는 옌산 산맥을 기점으로 북쪽인데 기온이 평균 5℃ 정도는 낮다. 이런 기온으로 인해 베이징의 황제들은 여름에 이곳을 찾아와 더위를 피하는 한편 주변의 평원에서 사냥을 하며, 국력을 키웠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이 많아 요즘은 후텁지근한 느낌을 갖기 쉽다. 우리 가족도 청더를 몇차례 찾았다. 우리 가족이 살던 베이징 왕징에서 가장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교외지역이고, 초원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피서산장 호수 전경 청더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는 피슈산좡(避暑山庄·피서산장)이다. 564만㎡의 거대한 이 별장은 이허위안의 2배, 구궁의 8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황가 정원림이고, 여름에 황제가 이곳에서 업무를 관장하는 한편 외국 귀빈을 맞는 등 전반적인 황궁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피슈산좡의 가장 중요한 여행 지역은 정문인 리정먼(麗正門)을 들어가면서부터 만나는 궁뎬취(宮殿區)다. 말 그대로 이곳은 궁전이다. 리정먼은 1754년 건륭제 때 지어졌으며, 피슈산좡 최후의 관문 역할을 했다. 리정먼을 넘으면 아담한 나무로 둘러싸인 네이위먼(內午門·내오문)이 있다. 이 문의 정면에는 ‘피슈산좡(避暑山庄)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강희제가 쓴 것이다. 그 다음 건물은 전체가 녹나무로 만들어져 난무뎬(楠木殿·남목전)으로도 불리는 단보징청뎬(澹泊敬誠殿·담박경성전)이다. 이 건물 역시 비교적 소박하게 느껴지는데,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접견하거나 축하 연회를 여는 곳이다. 단보징청뎬을 지나면 쓰즈슈위(四知書屋·사지서욱)가 나온다. 이곳은 서재가 아니고, 황제가 단보징청뎬으로 나갈 때 옷을 갈아입는 장소였다. 이 건물 뒤편은 옌보즈수앙(煙波致爽·연파치상)이다. 이곳은 황제의 침전으로 황제가 일상을 보내던 곳이다. 동서 양쪽은 황후의 거실이다. 서쪽에 있는 시누완각(西暖閣·서난각)은 서태후가 거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누완각은 서태후가 거처했던 곳 하지만 강희, 옹정, 건륭제 3대의 치적은 나약한 성격의 가경제(嘉慶帝·제위 1796~1820)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족은 물론이고, 소수민족의 반란이 빈번했고, 서구 제국주의 세력도 중국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유약한 치세를 거치다가 1820년 피슈산좡에서 사망했다. 아버지가 이곳에서 죽자, 아들 도광제(道光帝·제위 1821~1850)는 피슈산좡을 멀리했다.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피슈산좡은 1860년 9월 다시 시끌벅적해진다. 함풍제(咸豊帝·제위 1851~1861)가 온다는 소식이 왔기 때문이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으로 진격해 들어가자 피슈산좡으로 몽진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 함께 따라가지 못하고 위앤밍위앤(圓明園)에 남아 있던 함풍제의 비빈(妃嬪)들은 이곳이 점령당하여 불길에 휩싸이게 되자 모두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이렇듯 함풍제는 선조들처럼 사냥을 하면서 국력을 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란을 피해 도망을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피슈산좡에서 궁뎬취의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다. 남은 지역은 대부분 드넓은 구릉과 평지다. 이곳을 편하게 돌 수 있는 순환차가 있어서 여행자들은 한 시간 남짓이면 쉽게 돌아볼 수 있다. 황제의 야외 파티장인 완수위안(萬樹園)을 지나서 러허(熱河)의 발원지를 볼 수 있다. 러허는 말 그대로 〈열하일기〉의 열하다. 발원지에서 호수까지 20m가 이 강의 전부인데,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강으로도 유명하다. 열하발원지 글 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 오피니언
-
청더 피슈산좡 -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황가 정원
-
-
만리장성...지구 밖에서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 10년 가까이를 살았지만 베이징의 한여름을 나기는 쉽지 않다. 40도까지 수은주로 오르는 고온도 고온이지만 인공비로 인해 습도도 높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나았겠지만 과거라고 다를 리 없다. 그래서 황제들은 이허위안(颐和园)이나 위앤밍위안(圓明園) 등을 세우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 했다. 그런데 사실상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강희제(재위 1661∼1722)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휴가지를 만들었다. 바로 열하(熱河 현지명 청더 承德)다. 베이징에서 청더까지는 기찻길로 256km다. 말을 타고 달리면 하루면 닿겠지만 황제의 행렬은 가마로 서서히 그곳을 향했다. 굳이 바삐 달릴 일은 없으니 그 길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가보자. 사실 황제가 그 길을 향하면 길에는 약 50m 간격으로 공연을 벌였다고 한다. 황제가 아니니 곳곳에서 그런 공연을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에 중앙선을 추월선으로 삼는 중국 운전사들의 곡예와 같은 운전 실력을 감상하면 흥미 만점이다. 만리장성 이 길은 〈열하일기〉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일야구도하기’와 ‘야출고북구기’ 등이 나온 곳이다. 당시 연암 일행은 황제가 수일 내로 당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폭우로 강물이 넘실대는 이 길을 건너서 열하를 향했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뚫려서 청더 가는 길에 중간 도시인 미윈(密雲)까지는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미윈부터는 다시 국도를 타고 베이징 등 화베이 지방의 북쪽 방벽 역할을 하는 옌산(燕山) 산맥을 지나야 한다. 만리장성은 한족들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기마민족을 쌓기 위해 만든 보호막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 가장 통과하기 쉬운 길이 구베이코우(古北口)다. 구(口)는 말 그대로 만리장성의 노선 가운데 지대가 낮아서 관문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북구 장성 중국 역사에 밝았던 연암 박지원은 이것을 지나면서 열하일기 가운데서도 최고의 문장이라는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밤에 고북구 장성을 지나며)’를 썼다. 과거 수없는 전장이었던 그곳을 조선의 선비가 지난다는 것에 연암은 무척이나 가슴 뿌듯했고, 장성의 한 돌에 자신이 지나갔다는 글을 쓰고 스스로도 문장을 지었던 것이다. 보통 베이징 여행때 가는 만리장성은 베이징의 정북에 있는 빠다링(八達嶺) 장성이다.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에 도착해서 많이 가지만 장성의 옛 모습은 없고, 장삿속만 보이는 장성이 빠다링 장성인데 구베이코우 장성의 인근에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장성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는 장성들이 산재해 있다. 동쪽에서 쓰마타이(司馬臺) 장성을 시작으로 진산링(金山嶺) 장성, 구베이코우 장성, 무톈위(慕田峪) 장성, 황화청(黃花城) 장성 등이 차례대로 이어져 있다. 이 장성들은 모두 각기 다른 역사와 특색을 갖고 있다. 현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창청을 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쓰마타이창청을 권한다. 쓰마타이(司馬臺) 장성 이곳은 만리장성의 모든 특징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하여 ‘장성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장성(長城)은 중국 건축물의 최고로 꼽히며, 이 중 쓰마타이창청은 중국 장성의 최고로 손꼽힌다는 말이 있다. 쓰마타이창청의 가장 험한 곳은 ‘시엔뉘로우’(仙女樓)와 ‘왕징로우(望京樓)’로 통하는 길목이다. 높이가 100여m에 이르며, 경사도는 85°로 거의 수직이며 유일한 길목이다. 계단이 발 하나 간신히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작으며, 양쪽으로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진산링 장성 쓰마타이가 장성 건축의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면 진산링 장성은 ‘만리장성 금산독수(萬里長城 金山獨秀 만리장성 가운데 금산령이 으뜸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웅장한 모습이 특징이다. 2인용 작은 케이블카로 올라간 후 5분쯤 걸으면 만리장성이 나타나는데, 곳곳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명승이 펼쳐진다. 동쪽으로 이어진 장성은 이번에는 구베이코우에 닿는다. 구베이코우 장성은 낮은 지역에 있어서 웅장함은 없지만 관문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황제들이 다니던 여정들을 전시한 문화관이 만들어져 여행자를 맞는다. 구베이코우를 지난 장성은 서쪽으로 흘러가 무톈위 장성이 된다. 무톈위 장성은 여러 가지 장성의 특색을 모은 곳이다. 베이징 시내에서도 비교적 접근도가 좋은 곳이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로 올라가 내려올 때는 화다오(滑道 철판 봅슬레이)를 타고 내려오면 스릴 만점의 여행이 될 수 있다. 글=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 오피니언
-
만리장성...지구 밖에서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