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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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앙위앤

중국의 유홍준 교수라 할 수 있는 ‘위치우위(余秋雨)’는 “나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두지앙위앤이라고 생각한다”고 과감히 말한다.

 
그가 두지앙위앤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이 조형물의 건축자인 이빙 부자의 애민정신이다. 만리장성 등이 지배자 중심의 욕심이 앞선 조형물이라면 두지앙위앤은 한 군수(郡守)의 백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물줄기를 온순하게 만드는 두지앙위앤의 제방을 보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이곳에서 “작가는 이를 통해 현재의 관료 사회에서 무위도식하는 고위 관리들을 향해 ‘살아 있든 아니면 죽든 간에 반드시 어느 곳에 서 있어야만 하는가’를 힐문할 것이다”며 그 감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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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청산

 사실 이빙이라는 인물 자체가 종교라고 할 만큼 주요한 곳이 두지앙위앤이라면 칭청산은 중국인 사상의 가장 근저에 있는 도교가 태어난 곳 가운데 하나다.

 
후한시대 오두미교를 만든 장릉이 이곳을 바탕으로 세를 만들어 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림, 무당과 더불어 중국 무술의 가장 중요한 성지가 된 것이다.

두지앙위앤(都江堰 도강언)은 청두 북서쪽으로 60㎞ 지점에 있다. 두지앙위앤은 2250여 년 전 진(秦) 소왕(昭王)시기에 이빙(李氷) 부자가 세운 수리 시설이다. 그저 그런 수리시설이라고 생각해 지나치기 쉬운데,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수리 시설도 가치가 있지만 이빙 부자의 애민정신은 후대에 계속해서 위정자들의 귀감이 됐다. 따라서 이후에 계속해서 그의 치적을 기리는 의식과 건물들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빙 부자는 쓰촨 도교에서 신에 가까운 대우를 받을 정도. 고풍스러운 건물과 2년 넘게 이어온 역사의 흔적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지우자이고우 등지에서 발원해 수백km를 흘러온 민강(岷江) 물은 그 고도 차로 성도인 청두를 위협할 만큼 큰 물줄기로 바뀐다. 하지만 이 민강의 물길은 두지앙위앤에서 순한 양처럼 바꿔어, 인간들에게 해를 주는 홍수의 근원이 아니라 농사를 돕고, 각종 생활용수로 바뀐다.
 
바로 이런 작용에는 중국 최고의 수리시설 두지앙위앤이 있다. 두지앙위앤 치수의 가장 기본은 강 가운데 서 있는 진강디(金剛堤 금강제)의 앞부분인 위쭈이(魚嘴)다. 위쭈이는 강의 중간에 위치해 물을 외강(外江)과 내강(內江)으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작용은 청두 등 도시로 들어가는 물줄기의 양을 일정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외강의 입구를 인위적으로 만든 조롱(鳥籠)으로 조절해 물의 양을 조절했지만 1970년대에 댐을 만들어 물의 양을 조절한다.
 
중요한 것은 내강으로 들어온 물의 조정이다. 내강의 물은 페이샤얜(飛沙堰)에서 물 속에 들어 있는 모래나 자갈을 걸러내는 한편 2차적으로 물의 양을 조절한 후 바오핑코우(寶甁口)를 통과해 실용적인 물로 바뀐다.
 
이 때문에 두지앙위앤은 현대의 댐이 갖는 자갈이나 모래의 퇴적 문제 등을 해결하고 2000년 동안 수리 시설의 기능을 해오고 있다.

두지앙위앤은 차분히 돌아보면 4시간 정도 걸리는 적지 않은 공간이다. 전체를 조망하는 친얜로우(秦堰樓)는 약간 높은 지점에 있어서 오르막이 싫다면 이곳에서 여행을 출발할 수 있다.(가는 법은 아래) 친얜로우를 보고, 내려오면서 얼왕먀오(二王廟)를 본다. 얼왕먀오는 이빙 부자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의 옆에는 치수에 관한 기념관이 있다.

얼왕먀오를 보고 길을 따라 내려오면 강의 진강디로 건너가는 안란수오치아오(安瀾索橋 안란삭교)를 건넌다. 건너면 위쭈이가 나온다. 위쭈이를 보고, 괘도차(15위안)를 타거나 걸어서(30분가량 소요) 진강티의 하류 부분인 샤페이얜으로 온다. 이곳을 보고 다시 삭교를 건너면 푸롱관(伏龍觀 복용관) 등이 있다.
 
푸롱관이 있는 이투이공위앤에서 다시 정문쪽으로 나오면서 치수의 치적을 이룬 이들의 동상이 서 있는 공원을 볼 수 있다. 또 이 코스와는 반대로 이투이공위앤 출입구로 들어가 친얜로우 방향으로 나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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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청산(靑城山 청성산)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가장 많이 녹아 있는 도교의 중요한 발상지중 하나다. 중국 도교의 계통은 아주 다양하고, 그 발생지도 산둥성 타이산(泰山)은 물론이고 지앙시 롱후산 등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오랜 도교의 발생지는 쓰촨성이고, 쓰촨 도교의 근원지 가운데 하나가 칭청산이다. 쓰촨 도교는  2세기 무렵부터 시작했는데, 후한 시대 장릉(張陵 ?~156)이 이 지역에서 최초의 교단을 만들었다.
 
그는 교단에 들어올 때 쌀 다섯 말을 바치도록 해서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도 불렀다. 이후 아들을 거쳐 손자 장로(張魯)에게 계승되어 본격 발전하게 된다. 그 본산 가운데 하나가 칭청산이다. 높이 1260m의 칭청산에는 한때 70개에 이르는 도교 사원들이 있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30여 개가 남아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상청궁(上淸宮)과 장릉이 도를 닦은 곳에 세워진 천사동(天師洞)이다. 이밖에도 옥청궁(玉淸宮), 조양동(朝陽洞), 복건궁(福建宮), 원명궁(圓明宮) 등이 유명한 도교 사원이다.

칭청산 여행은 우선 신선들이 조각된 칭청산 대문을 지나서 케이블카를 타고 상청궁으로 올라간다. 상청궁 입구에는 앞뒷면에 ‘도(道)’ ‘대도무위’(大道無爲 큰 도는 인위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쓴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상청궁은 칭청 도교의 중심 건물 중 하나로 각종 도교 문화가 현재화되어 있다.

상청궁에서 산 중턱에 있는 천사동까지는 걸어서 약 40분이 걸린다. 천사동은 수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세워진 수십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청성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교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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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왕먀오

게다가 당 현종, 청 강희제의 친필 등 이곳을 찾은 수많은 고관과 문인, 지식인들이 남긴 각종 글씨와 자취가 풍부하다. 장릉이 도를 닦았다는 곳은 천사동 건물들의 뒤쪽 천연 동굴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는 그의 좌상이 놓여 있었다.

 
천사동에는 또 장릉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그가 팠다는 연못, 붓을 씻었다는 나무통 등이 남아 있다. 천사동 정문 뒤에는 ‘재신전(財神殿)’이 있다. 칭청전산을 돌아보고 대문을 나서면 후산으로 가는 차가 수시로 있다. 또 칭청산은 청두 인근의 휴양도시로 성장해 골프장은 물론이고 각종 휴양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좀 비싼 것이 흠이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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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앙위앤-사람이 힘이 되는 문화의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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