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21(토)
 
매장에서 제품을 구경한 후, 저렴한 가격을 찾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쇼루밍족이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스마트폰과 가격비교 앱 등으로 인해 탐색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유통 채널이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기업은 온·오프라인 채널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구매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30대 한구경 씨(가명)는 TV를 새로 장만하려고 한다. 집 근처 전자제품 매장에 찾아가 전시된 제품들을 자세히 구경하고 나니, L사의 M모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다. 한구경 씨는 주저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 가격비교 앱을 실행시킨 후, M모델의 바코드에 갖다 대었다. 몇 초 지나자, 화면에 M모델을 C온라인 쇼핑몰에서 20만원 싸게 살 수 있다고 나왔다. 뿌듯한 기분에 ‘구매’ 버튼을 누른다.

한구경 씨는 제품 구경은 매장에서 하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일명, 쇼루밍족이다. 쇼룸(Showroom)이 제품을 구경만 하는 장소인 것처럼,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경만 하고, 구매는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쇼루밍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모두 향유하려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comScore의 조사에서, 쇼루밍을 하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더 저렴해서’와 ‘제품을 사전에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가 상위에 꼽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 소비자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쇼루밍의 이유로 ‘가격 만족’과 ‘품질 만족’이 높게 나타났다. 즉, 쇼루밍은 제품 품질에 대한 확신도 갖고 싶고, 가능한 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심이 반영된 행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쇼루밍족은 더 이상 니치 세그먼트가 아니다

전체 소비자 중 쇼루밍족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InsightExpress가 18~29세 스마트폰 사용자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가격 검색을 해 본 사람은 ’09년 15%, ’10년 40%, ’11년 59%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전체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comScore의 조사에서도 35%의 응답자가 쇼루밍을 해 봤다고 대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서, 한국 소비자 역시 23%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 비교 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쇼루밍족의 비중이 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조사들은 여러 소비 품목을 종합해서 쇼루밍 경험을 조사했기 때문에 쇼루밍족의 비중이 다소 높게 나타날 수 있다. 품목별로 쇼루밍족 비중을 분석해 보자. comScore 조사에서 쇼루밍 가능성이 높다고 나타난 소비자 가전 중 냉장고, TV, 컴퓨터 모니터를 대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Stevenson의 조사를 토대로 소비자를 제품 정보 탐색 경로와 구매 경로에 따라 4개 세그먼트로 나눠본 결과, 이 중 정보 탐색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를 활용하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세 번째 세그먼트가 바로 쇼루밍족이다. 2011년 냉장고를 구매한 미국 소비자의 8.0%가 쇼루밍을 통해 냉장고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1.8%에 불과했던 쇼루밍족의 비중이 9년 사이 4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 기간에 오프라인으로만 정보를 탐색하고 구매하는 순수 오프라인족의 비중은 대폭 줄어들었다. TV 역시 쇼루밍족의 비중이 2.7%에서 14.8%로 크게 높아졌고, 순수 오프라인족의 비중은 크게 낮아졌다. 컴퓨터 모니터의 경우 2002년에 이미 쇼루밍족 비중이 14.5%로 상당히 높았고, 2011년에는 그 비중이 6.9% 상승해 21.4%를 기록했다. 반면, 오프라인족들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기존 주류였던 오프라인 구매족의 비중은 줄어들고, 쇼루밍족의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제 쇼루밍족은 니치 세그먼트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의 고객 세그먼트로 자리 잡고 있다.

쇼루밍족, 왜 많아지는가?

특정 소비자 행동이 증가하는 것은 해당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Benefit)이 늘어났거나, 소요되는 비용(Cost)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쇼루밍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살펴보자. 소비자들은 쇼루밍을 통해 제품 품질에 대한 확신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매장에서의 제품체험 기회와 온라인의 유리한 가격은 과거부터 존재했다. 쇼루밍족이 증가한 이유를 쇼루밍의 혜택 변화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쇼루밍족의 증가는 쇼루밍에 소요되는 비용의 하락 때문일까? 우선, 온라인 쇼핑에 대한 불안과 같은 심리적 비용의 하락을 쇼루밍족의 증가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기 전인 2000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인터넷 사용자의 8.9%만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해 본 경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사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는 제품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고, 얼굴을 본 적 없는 운영자를 믿기 힘들었고, 보안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온라인 쇼핑몰들은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인 정보 및 결제 관련 보안 인프라를 강화하고, 품질 보장 및 환불 정책 등을 마련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소비자들의 리뷰도 쌓이면서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좋은 평판을 가진 쇼핑몰과 거래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 대한 비용 부담이 적은 세대의 인구 비중이 늘어난 것 또한 전반적으로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줄어든 배경으로 작용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이용을 활발히 했던 10~30대가 성장해 이제 한국인 인구 구조의 허리층까지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에 친숙한 세대층이 넓어지면서, 온라인 쇼핑층 역시 넓어져 20대의 90%, 30대의 78%, 40대의 49% 정도가 온라인 쇼핑 이용자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온라인 구매에 대한 심리적 비용이 줄어들면서 한국의 경우 만 12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의 64.5%, 미국은 18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의 71%가 인터넷 쇼핑 이용자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가격비교 앱의 증가 역시 쇼루밍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기존 소비자가 쇼루밍을 하기 위해서는 매장에서 제품과 가격을 확인해 본 후, 집에 가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사이트를 찾아보고, 찾지 못하면 다시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 모두 소비자 관점에서는 큰 비용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가격비교 앱의 증가로 이러한 탐색 비용이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가격비교 앱을 실행하기만 하면, 스마트 쇼퍼(Smart Shopper)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2012년 4분기 기준 한국은 59%, 미국은 48%에 달한다. 스마트폰이 쇼루밍을 촉진시키는 하드웨어 역할을 한다면, 양질의 데이터베이스와 편리한 검색 기능을 갖춘 가격비교 앱이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고 있다. Nielsen의 조사에 의하면, 2010년~2011년 두 번째로 빠르게 증가한 앱 카테고리가 바로 쇼핑 관련 앱이었다. 아마존의 ‘Price Check’ 앱의 경우, 앱을 실행시켜 제품 바코드나 제품 사진을 찍으면 동일 제품을 아마존에서 얼마 더 싸게 살 수 있는지 알려주고, 바로 구매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 앱은 천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와 같은 인프라 덕분에 온·오프라인 비교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줄어든 만큼 쇼루밍족이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쇼루밍족, 계속 증가할까?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심리적 비용 하락과 온·오프라인 비교 탐색 비용 하락 등의 요인은 오프라인 구매족을 쇼루밍족으로 이동시키는 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수록, 일부 쇼루밍족이 온라인으로만 정보를 찾아보고 구매하는 순수 온라인족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온라인으로만 정보를 찾아보고 구매하는 것이 더 간편하기 때문이다.

향후 쇼루밍족과 순수 온라인족 비중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아보기 위해, 과거 추이를 살펴보자. 냉장고와 TV의 경우, 9년 동안 쇼루밍족의 비중은 크게 늘었지만, 순수 온라인족의 비중 증가는 크지 않았다. 특히 냉장고의 경우 순수 온라인족은 거의 없다. 반면, 모니터의 경우, 2002년 쇼루밍족 비중은 순수 온라인족 비중보다 5.8% 높았다. 하지만 쇼루밍족보다 순수 온라인족의 비중이 더 빠르게 증가해 2011년 두 세그먼트의 비중이 거의 비슷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냉장고와 TV의 경우, 구매 전에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구경하려는 보수적인 구매 성향이 유지되는 반면, 모니터는 제품을 보지 않고도 구매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왜 품목별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모니터는 냉장고나 TV에 비해 제품이 표준화 되어 있어, 온라인으로 주요 스펙만 비교해 보면 잘못 구매할 가능성이 낮다. 설사 잘못 구매해도 냉장고나 TV에 비해 가격이 낮기 때문에 매장 방문까지 하면서 신중하게 구매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표준화 정도, 구매 관여도 등 제품 특성으로 인해 제품별로 쇼루밍족과 순수 온라인족의 비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두 세그먼트의 비중 변화 역시 품목별로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TV, 냉장고와 같이 관여도가 높거나, 상대적으로 표준화가 덜 되어 있는 아이템일수록, 구매 전 매장에서 제품을 시연해 보고자 하는 니즈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향후에도 쇼루밍족의 비중이 순수 온라인족의 비중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다만, 3D,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같이 온라인으로도 제품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할 경우, 예상보다 순수 온라인족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반면,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표준화 정도가 높은 모니터의 경우, 과거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순수 온라인족이 쇼루밍족보다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2009년에 단기적으로 두 세그먼트 비중이 역전된 적도 있다. 향후 쇼루밍족의 비중이 정체되거나 완만한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쇼루밍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쇼루밍은 막을 수 없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 가장 먼저 쇼루밍족의 증가를 체감한 곳은 유통업계이다. 미국 2위 전자제품 유통업체였던 Circuit City는 2009년 수익성 악화로 파산했다. 1위 업체인 Best Buy 또한 쇼루밍을 막기 위해 여러 자구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약 12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 반면, 온라인 유통업체를 대표하는 Amazon.com의 경우, ’07년 이후 매년 30% 이상 무서운 매출 성장률을 보이며 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쇼루밍을 피해가려고 하기 보다 트렌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쇼루밍은 소비자가 자신의 니즈에 맞게 유통 채널을 최적화하면서 나타나는 행태이다. 소비자에게는 유통 채널이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상적인 유통이란 품질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고, 경제적인 이득도 주면서, 발품, 손품 팔지 않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온·오프라인 채널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구매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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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 제품보고 온라인으로 사는 쇼루밍족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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