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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옌탕산, 서하객이 꼽은 최고의 명산
    옌탕산(雁蕩山)은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그 기록을 남긴 서하객이 최고로 꼽은 산이다. 옌탕산이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명산은 맞지만 서하객은 왜 중국 최고의 명산으로 옌탕산을 꼽았을까?    서하객 동상이 있는 옌탕산 여행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는 추억이 결부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서하객은 옌탕산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옌탕산으로 가는 길은 남쪽인 원저우에서 가든, 북쪽인 닝보 방향에서 가든 바닷가 길을 따라간다. 주봉(해발 1000m)인 옌후강(雁湖崗) 위에 호수가 있는데 이곳에 갈대가 많이 자라 흡사 광활한 평원과 같고, 가을에는 기러기들이 이곳에 머물기 때문에 옌탕(雁蕩)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황산보다 이곳을 꼽는 이가 많을 만큼 이름이 높다. 옌탕산은 아직까지 인간의 손길이 덜 미친 자연이 빚어낸 것들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따롱치우(大龍湫)폭포, 링옌(靈岩) 페이두(飛渡), 링펑(靈峰) 야경은 옌탕산의 3대 절경으로 옌탕산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곳이다. 옌탕산 여행의 가장 좋은 시기는 비가 많은 계절인 5~6월 혹은 8~9월이다. 단, 웬저우는 이 시기 자주 태풍이 있다. 비 온 후 맑게 갠 날을 선택하여 여행을 하면 옌탕의 3대 절경을 더욱 잘 감상할 수 있다.  링펑(靈峰 영봉)은 암석이 보여주는 기이한 봉우리와 동굴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다. 중국 유일의 밤에 보는 산 경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링펑 우선 주차장을 출발해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호젓한 여행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맑은 물이 흘러서 산에 온 느낌을 더한다. 앞으로는 울울한 바위로 된 병풍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15분쯤 가면 맑은 못 위에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가 펼쳐진 궈허싼징(果盒三景)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사원이자 링펑의 중심인 합장봉(合掌峰)이 있다.    어두워지면 합장봉 아래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보면서 여러 가지 문양을 즐긴다. 밑에서 하늘을 보면 바위의 문양이 만드는 형상들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링펑 야경인데, 중국의 산 가운데서 밤에 산 그림자로 만든 유일한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링펑 야경은 여행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링옌(靈岩 영암)은 9㎢ 지역으로 여행지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지만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이다. 16개의 봉, 12개의 동굴, 22개의 암석, 5개의 산봉우리, 3개의 문, 3개의 골짜기 등의 볼거리가 있다.    링옌 ,링옌의 중심은 입구에 있는 링옌스다. 아담한 사찰인 링옌스는 우리나라 부안 내소사를 닮은 모양으로 뒤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는 사찰이다.    앞에는 난톈먼(南天門)으로 불리는 봉우리가 있다. 흥미로운 곳은 이곳에서 하루에 두 차례씩 시연되는 공연이다. 수백 미터 높이의 이 봉우리에서 한 사람이 밧줄에 의지해 내려오면서 바위 중간에 있는 약초를 채집하는 장면과 200m 거리인 두 봉우리 사이에 걸린 외줄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시연한다.    여행자들은 아래에서 하늘 높이 펼처진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공연의 가장 좋은 자리는 링옌스 옆 찻집들인데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본다.    링옌스를 벗어나 조금 더 산길을 걸으면 샤오롱치우가 있다. 샤오롱치우는 따롱치우에 버금가는 폭포로 200m 낙차가 인상적이다. 샤오롱치우로 가는 길 오른쪽에는 엘리베이터로 정상부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엘리베이터로 200m를 올라가면 정상부에 닿는다. 조금 걸으면 왼쪽으로 샤오롱치우도 볼 수 있고, 샤오롱치우로 물이 가는 작은 못이 있다.    따롱치우(大龍湫 대용추)는 옌탕산 중서부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시네이구’(西內谷)라고 불렸다. 16개의 봉, 5개의 암석, 3개의 동굴, 4개의 봉우리, 5개의 폭포 등 모두 71개의 풍경이 있다.    이곳은 물의 경치를 주로 하고, 그중에서도 따롱치우 폭포는 ‘산중 제일의 기관(奇觀)’이다. 가는 길에는 많은 묵객들이 써 놓은 글들을 볼 수 있다.    바윗길을 지나면 웅장한 기상의 따롱치우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를 제대로 보려면 비가 풍성한 계절이어야 하는데, 비가 온 후엔 200m 낙차의 따롱치우 폭포는 마치 거대한 용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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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30
  • 코로나19, 한일관계 더 악화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방역협력을 요청하는 외국 정상들과 30번째 전화통화를 했다. 지난 2월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시작으로 3달 사이 30번의 전화통화를 했다. 하지만 일본 아베 총리와의 통화는 없었다. 바로 옆 이웃나라인데 만난 적도 없고 전화 통화가 없었다는 점은 어떤 의미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한일 갈등을 풀지는 못했다. 오히려 더 거세지는 모양새다. 한구고가 일본만은 전세계적인 방역 협조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28일 아사히신문은 일본 후생노동성이 한국산 진단키트를 일본에서 쓰려면 성능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으로부터 유전자 증폭(PCR) 검사 키트 지원을 받을 경우 국립감염증 연구소의 성능 평가를 거쳐야 한다는 일본 후생노동성의 입장은 한국산 진단키트의 성능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방역 당국은 일본에 진단 키트 지원을 검토한 바 없으며 일본의 추가 검증은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작 줄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다. 이를 두고 누리꾼 반응은 "밥 얻어 먹는 주제에 기미상궁 나오라"는 식이라고 아베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수출규제 강화 조치까지 이어진 일련의 갈등에 코로나19 사태가 또 다른 한일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미국과 아랍에미레이트, 인도네시아 등에 우선적으로 진단키트를 지원하고 유렵의 다수 국가와도 방역 체계를 공유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방역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보건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만은 예외다. 여전히 입국제한 조치가 유지 중이며, 서로 방역을 위한 협력은 찾아볼 수 없다. 혐한 감정은 마스크 지원 논란으로 극에 달했고 결국 진단 키트 지원을 둘러싸고도 한일 양국의 입장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일본 아베 정부는 초지일관 혐한 프레임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21일 일본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장관은 일부 파친코 점포가 코로나19 관련 정부의 휴업 요청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는데 이같은 언급의 배경에는 파친코 업계에 재일 한국인이 많다는 배경과 차별이 깔려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출신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아시다시피 파친코점은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운영하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 아베 정권과 함께 재일교포 탄압에 나설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혐한 못지 않게 반일 감정도 극에 달했다. 일본에 마스크를 지원 수출한다는 보도에는 수많은 반일 댓글이 달린데 이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마스크 지원 반대 청원이 다수 올라왔다. “인도적 차원으로 이웃 국가인 일본에게 마스크 지원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일본은 더 이상 대한민국 이웃이 아니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일본에 마스크 지원 반대합니다’라는 청원글에는 “일본은 일단 마스크가 다른 나라들보다 여유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시설 증설, 중국산 수입 등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나라”라며 마스크 지원을 반대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한국의 대응을 조롱해 왔던 국가”라며 “마스크 여유가 있어 해외에 줄 여유분이 남았다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 지원하라”고 글도 올라왔다. 이외에도 “내가 낸 세금으로 일본에 마스크 지원 안 된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했던 대다수 국민은 일본에 마스크 지원하는 것을 반대한다”식의 반일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선 집권 자민당 후보가 압승을 거뒀지만 아베 총리의 임기 연장에 대해선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읿본 내 반 아베 정서가 커지는 분위기다. 아베 정권의 코로나19 대응 미숙으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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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9
  • 지우화산-신라의 왕자 김교각 스님이 머무른 곳
    북으로는 중국 문화의 젖줄인 창지앙(長江)이 흐른다. 남으로는 중국 최고의 명산인 황산이 자리하고 있다, 어찌보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운 산이 지우화산이다.   하지만 1300년전 중국으로 건너간 신라왕자 김교각에 의해 이 산은 존재가치를 확실히 인정받았다. 그래서 그곳을 향하는 마음은 항상 어떤 뿌듯한 마음과 함께 정감이 있다.    안후이 서부의 칭양(靑陽)현 성의 서남부에 위치한 중국 불교 4대 명산으로 가장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있어 참배자도 가장 많다. 이 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톈타이(天臺)이다.    톈타이 경치   톈타이 일출은 중국인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경치 중 하나다. 시선 이백은 아홉 봉우리의 모습이 연꽃과 같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이 톈타이에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만든 이가 김교각이다.    신라의 왕자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의 화신이 되어 절의 번성에 큰 기여를 했다. 특산품으로 지우화 운무차(雲霧茶), 황징(黃精), 천축(인도의 옛 이름) 젓가락, 종이 부채 등이 있다.    산대나무, 겨울 표고버섯, 채소를 원료로 하여 만든 ‘지우화쑤스’(九華素食)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지우화산에 가는 가장 독특한 코스는 상류의 우한(武漢), 지우지앙(九江)이나 하류의 난징(南京)에서 창지앙 유람선을 타고, 츠저우(池州)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지우화산에 가는 방법이다.    츠저우에서 지우화산까지는 53km 남짓이고, 안칭(安慶)항에서도 지우화산으로 가는 차가 있으며 약 122㎞다. 둘째 난징(南京)에서 기차로 통링(銅陵)시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지우화지에에 갈 수 있다. 거리는 92㎞.    셋째, 항저우(杭州)에서 기차를 타고 황산에 이른 후, 황산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지우화산으로 간다. 난징 중앙먼창투치처짠(中央門長途汽車站)에서 지우화산행 버스가 있는데, 4시간 정도면 산문에 닿는다.    톈타이(天臺) 고배경대 허페이(合肥)나 상하이 등지에서도 지우화산행 버스가 운행된다. 내부는 2곳에 케이블카가 운행한다.(케이블카는 대기 시간이 짧은 귀빈 통로가 있다)    로우션바오뎬(肉身寶殿)은 지우화산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794년 김교각 스님이 열반한 후 부도(浮屠)의 법에 따라 시신을 항아리에 담아서 선광링에 두었다. 3년 후 시신을 전각에 탑을 두고, 다시 그 탑 안에 항아리를 두는 방식으로 이 전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우션바오뎬이다.    육신보전   화청스(化城寺)는 김교각 스님과 인연이 있는 또 다른 명승으로 지우화산의 대표 사찰이다. 이곳은 지장보살을 모시는 사찰로 지우화산의 총림이다.    동진(東晋) 시대에 창건했는데, 당대에 더 커졌다. 이곳에는 랑랑타(娘娘塔)가 있다. 랑랑타 옆에는 한 우물이 있다. 이 랑랑타와 우물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김교각 스님을 사랑하던 신라 여인이 고생 끝에 지우화산을 찾아왔다. 그녀는 김 스님이 출가해 승려가 된 것을 보고, 너무 고통스러워 우물에 투신해 자진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스님이 탑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김 스님이 지우화산에 온 후 김 스님 부친이 피살됐다. 때문에 모친이 지우화산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그가 출가한 것을 보고, 슬픔에 3일 밤낮을 울다가 눈이 멀었다. 그런데 이 우물로 눈을 씻고 나서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설이 있다. 때문에 이 우물은 명안천(明眼泉)이라고도 한다. 이런 전설은 얼셩뎬(二聖殿) 등지에 널리 퍼져 있다.    톈타이(天臺)는 지우화산 경치의 중심이다. 톈타이는 해발 1306m로 지우화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다. 이곳은 일출로 유명하다. 케이블카로 올라가 톈타이를 비롯해 연화봉, 사자봉, 관음봉 등 다양한 산들의 풍경을 볼 수있다.    불교 성지의 지우화산이 아닌 자연경관으로도 빼어난 지우화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지우화산에는 톈타이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화타이(花臺)를 비롯해 자연 경관으로도 유명한 곳이 많다.  ■지장보살로 추앙받은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   김교각 스님   우리나라 불교도들에게 지우화산이 남다른 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김교각(金喬覺. 696~794) 스님이 지우화산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던 김 스님에 관한 진위가 2002년 6월 김교각 스님의 형상을 본뜬 금인이 발견됨으로써 그 종지부를 찍었다. 이 금인은 당나라 황제 숙종(肅宗)이 757년(지덕 2년) 스님의 신앙세계를 높이 받들어 하사한 것으로, 당시 스님의 법력을 짐작케 한다.    김 스님은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나 스물네 살에 출가해 중국을 방문했다. 스님은 당의 수도 장안성을 여행하면서 발전된 문화는 물론이고 많은 이들과 교분을 쌓는 한편 중국 최초의 사찰인 뤄양 바이마스를 방문해 고승들과 친견했다.    스님은 샤오린스를 찾아 달마대사의 선종에도 관심을 가진 후 지우화산으로 향해 수행을 시작했다.    그는 명성을 얻어 99세에 열반했는데, 열반한 지 3년 후에 관을 열어보니 생불 상태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각을 만들어 스님의 시신을 안치했다.    이런 김 스님의 수행은 지우화산이 중국 불교 4대 명산으로 성장하는 틀거리를 만들었다. 그에 대한 경외심은 지금도 이어져 스님을 추앙하고자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지장보살상(높이 155m)이 건립 중이며, 중국의 사찰마다 지장전에 스님의 상을 모시고 있다.    자비의 부처인 지장보살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으나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무불(無佛)의 시대에 육도(六道)의 중생을 교화, 구제하기 위해 이를 포기한 보살을 말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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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8
  • 안후이-명산의 높이만큼이나 깊은 중국 고전의 보고
    지리나 문화, 역사 등등으로 봤을 때 안후이는 참 신비한 성(省)이다. 성의 남중부는 중국의 대표 강인 창지앙이 관통하고 있고, 북중부는 화이허(淮河)가 관통한다.    남북 450km 사이에 거대한 강이 두 개나 관통하고, 거기에 남쪽에는 지우화산이 황산 같이 제법 큰 줄기의 산이 있는데 한 성이다. 화이허는 과거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의 바로 그 회수다.    지우화산(九華山)의 텐타이 풍경   사실 필자가 안후이를 돌아본 여정도 이런 지형처럼 갈기갈기 찢겨 있다. 남부에 있는 황산 인근은 유명한 산이라 일찍 여행을 했고 이후에도 다섯 차례 정도 여행했다.    반면에 허페이(合肥)나 펑푸(蚌埠)는 수년전 화이허 대홍수 때 취재차 들렀다. 북서부의 보저우(뛰州)는 지난해 최우석 삼성 부회장님과 삼국지 답사를 위해 들렀으니 지형만큼이나 내 방문 역사도 다양하다.    사실 삼국지의 배경이 되던 시기에도 안후이의 북쪽은 조조가 장악하던 위(魏)나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쉽게 보면 초반기에 유비가 잠시 머물던 쉬저우(徐州)의 영역인데, 유비는 장비의 음주로 이곳을 여포에 빼앗기고 곧 조조가 이곳을 장악한다.    반면에 창지앙은 원술의 땅이었다가 후에 손권이 찾아서 오(吳)나라의 땅으로 삼는 지역이다. 역사만큼이나 여행지도 천양천색인 만큼 안후이는 그 점을 감안하고 여행해야 한다. 큰 여행지는 황산, 지우화산밖에 없지만 다양한 문화의 교차지답게 다양한 문화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산의 옥병루   안후이의 행정 성도는 허페이지만 여행의 도시는 황산이다. “오악(五岳)을 보고 난 후엔 다른 산이 보이지 않지만, 황산을 보고 난 후엔 오악조차 보이지 않는다(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 “황산을 보지 않고 천하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 등 황산에 대한 미사여구는 끝이 없다.    하지만 황산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황산의 아래 마을들에서 수천년간 자라난 중국 인문학의 향기다.    이 지역 여행은 안후이성 중부에 자리한 지우화산에서 시작한다. 지우화산은 신라 스님 김교각 스님을 모신 중국 4대 불교 명산 가운데 하나다.    실크로드를 통해 각고의 노력으로 들어온 중국 불교의 소문을 듣고 신라의 많은 이들이 중국에 몰려든다. 그 가운데는 혜초와 같이 다시 경전의 탄생지인 인도로 간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현장(玄裝 602 ~ 664) 등이 가져온 경전을 연구하고, 스스로 불교를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교각(696~794) 스님이다. 구화산 대부분의 명소는 김교각 스님과 인연이 있다.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혈혈단신 중원을 다니다가 지우화산에 이르러 전설이 되어버린 그를 느끼면서 다니는 여행은 독특한 감상을 줄 것이다.  황산은 앞서 말했듯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산이다. 황산은 안후이성의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보통 들르는 광밍딩에서 즈광거까지의 코스도 2일 여행 코스로는 최적이지만 시하이따샤쿠, 톈두펑 등의 산 위 명소와 페이추이쿠 등 산 아래 명소를 가진 천하 명산이다.    황산의 장점은 사계절 다양한 느낌이 있고,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산 아래에서 도화와 유채꽃이 피고 찻잎을 따는 봄은 신춘을 느끼는 최고의 명소다.    여름은 나무들의 울울함 속에서 더위를 피하는 적소다. 가을은 산 아래 나무들이 독특한 색을 뿜어내고, 겨울은 황산송과 대나무들에 설화가 깃든다. 특히 겨울에는 황산의 명물인 운해를 더욱 쉽게 만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황산의 아래에는 홍춘, 시티, 툰시, 시셴 등의 수백 년 전통의 옛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후이저우(徽州)로 불리는 황산 아래 마을은 지앙시 성에 속하지만 역시 후이저우의 일부인 우셴(등縣)을 비롯해 황산 아래 포진한 많은 마을을 말한다.   후이저우(徽州)의 시디 풍경   이 마을들은 중국 지성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과거 합격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이들이 이곳 마을의 합작 결과였고, 호설암 등은 독특한 장사 수완으로 중국 장사의 최고봉을 이뤘다.    이름하여 휘상(徽商)이라 불리는 이들은 화동뿐만 아니라 중앙에 다양한 문화를 알려줬다. 베이징 덕으로 불리는 오리요리나 경극으로 불리는 전통 공연의 뿌리도 이곳이다. 이 때문에 후이저우 문화는 티베트학, 돈황학과 더불어 중국 3대 지역학으로 꼽히고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8
  • '오월동주'식 공동배송에 나선 일본의 택배업계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택배 물량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면 택배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방법은 없는지 이웃나라 일본의 택배 현황을 알아보자.    본 정부는 이를 통해 2020년대에는 도시에서 ‘드론’을 통한 주문 상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일본 국토교통성 조사에 의하면, 일본 택배 전체 배송량의 20%(약 7억5000만개)가 '재배달' 화물이라 한다. 거의 모든 선진국과 동일하게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급증으로 한 번에 배달이 안 되는 경우가 늘어난 탓이다.    일본은 택배업계 인력의 약 10%(8만5000여 명)가 재배달에 투입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직접 물건을 찾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바로 ‘택배박스’다. 주간 시간에는 도저히 택배 물품을 수령할 수 없는 직장인을 위해 출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직접 물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야마토 운수와 일본우편은 2016년 6월부터 동일본 여객철도(JR 동일본)의 각 역에 택배박스를 설치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 곳곳에 설치된 택배박스들도 급속히 늘어나는 중인데, 일본 정부는 택배박스를 설치하는 기업에게 설치비용으로  최대 1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야마토 운수는 2018년까지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택배박스를 3000개 설치했다고 한다.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택배업계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즉,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는 줄어드는데, 배송해야 할 택배 물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운수업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으로 인해 청년층이 취업을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다. 신규 취업이 감소하는 데다 고령자 퇴직은 늘면서 실제로 배송 유효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처럼 배송할 택배물량은 계속 늘었지만, 배송할 인력은 거꾸로 줄어들자 일본 택배업계와 정부는 '공동 배송'과 '첨단 배송'이라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일본 택배 화물의 93%를 담당하는 점유율 1~3위 택배회사들은 이미 3년 전부터 공동 배송을 시작하여 2017년 현재, 일본 120개 지역에서 실시 중이다.    이로서 같은 배달 동선(動線)을 각기 다른 회사의 배달원들이 중복해서 다니는 비효율이 없어지게 되었고, 투입되는 인력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즉, 택배 3사가 같은 빌딩 내에 각각 배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1개사가 각기 다른 빌딩의 화물을 맡아 일괄 배달하는 구조인 셈이다.    고층빌딩처럼 화물하치장이 없는 경우는 가장 가까운 물류거점까지 각사의 트럭으로 운반한다. 그곳에서 1개사의 트럭으로 모아서 운송하는 방식이다.    일본 택배업체들이 선택한 ‘공동배송’은 그야말로 택배업계의 적과의 동침인 '오월동주(吳越同舟)' 방식이라 할 것이다. 경쟁사가 공동으로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다니 말이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 정부는 첨단 배송 시스템인 ‘드론택배’ 방식과 무인차량 배송방식을 준비 중에 있다.    하늘에는 드론을 띄우고, 도로에는 운전자 한 사람이 무인차량을 끌고 가는 ‘대열주행(隊列走行)’ 방식이다. ‘대열 주행방식’이란 선두 차량에 탄 운전자가 뒤따르는 차들을 무선통신으로 연결해 제어하면서 일정한 속도와 차간거리로 달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2020년대에는 도시에서 ‘드론’을 통한 주문 상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해안가에 건설 중인 아파트의 베란다에는 가로·세로 각각 1m쯤 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드론 포트'가 설치되는 중이다.    그리고 2020년부터는 일본 고속도로에서 트럭들의 대열 주행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자율 주행에 따른 무인차량의 대열 주행을 통해 그야말로 ‘사람’이 필요없는 배송 시스템을 실현하는 최종 목표를 향해 추진 중이다.  유통9단 김앤커머스 김영호 대표  kimncommerce@naver.com   
    • 오피니언
    2020-04-28
  • [201칼럼]코로나19 시즌2,"장기전을 대비하라"
    "코로나19가 끝나도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 "코로나19가 만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 방역은 일상이 될 것"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유럽이나 미국의 팬데믹 상황과 비교해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국민과 의료진, 정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대응한 결과다. 확진자 발생 추이도 최근 안정적 감소 추세로 강도 높게 펼쳐왔던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하기 시작했다.    이영일 논설위원 하지만, 5월초 연휴를 앞두고 코로나19의 장기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탁 순천향대 교수는 "언제든 재유행이 발생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고 말했다. 또 다른 감염내과 교수도 "지금까지는 잘 대응하고 있지만 계속 독같이 잘 대응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것"이라고 조언했다.  美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헨리 키신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도 세계는 그 이전과 전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메르스 유행처럼 종식시킬 수 없으며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코로나19가 약해졌다 하더라도 올 가을이나 겨울에 다시 유행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감기나 독감, 다른 바이러스 유행병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백신이 없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며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생활습관이 일상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국내 환자는 80%는 가벼운 증상만 경험하다 회복된다고 알려졌다. 기저질환이 없고 면역력이 강한 일반인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치명률이 높지 않고 중증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자기 면역을 통해 나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면'이다. 숙면하지 못하는 경우 즉 수면 부족은 인체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린다.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 감염될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7시간 이상 수면을 충분히 취할 경우 잠자는 동안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백혈구 T세포 공격 능력이 높아진다고 밝혀졌다.  숙면 외에도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 섭취도 중요하다. 위에 부담이 되는 찬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신선한 음식을 섭취해야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밀가루나 설탕은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가급적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발효음식 등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이나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과식이나 물 대신 커피, 음료수를 자주 섭취하는 것도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습관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우울증으로 불리는 '코로나블루'. 의외로 보이지 않게 코로나블루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감기 비슷한 증상만 있어도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반적인 감기 증상에도 코로나19 확진 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블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하게 다스려야 한다.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 역시 "스스로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육체나 정신이 편해져야 면역력이 높아진다.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한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걱정이 많으면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질환으로 발달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  면역력을 높이는 운동이나 반신욕, 족욕도 도움이 된다. 또한, 배를 따뜻하게 해주면 면역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과 같은 예방법을 생활습관처럼 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제시했다. 향후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비대면, 비접촉 일상이 일반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감염 대응 자체가 생활습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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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8
  • 샤먼, 중국 동남부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샤먼(厦門)은 중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선발할 때 결코 빠지는 적이 없는 도시다. 남방의 도시지만 바다가 있어 비교적 쾌적하기 때문에 겨울 휴양지로 빠지지 않는다.    샤먼 야경   또 북방의 과일 도시가 옌타이라면 샤먼 남방 과일의 대표 도시로 과일 박람회가 열릴 만큼 물자가 풍부한 곳이다.  샤먼은 작은 섬이 고리를 이루고 물이 감돌며, 경치가 좋고 기후가 적당하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고 꽃이 피어 ‘해상화원’이라고 불린다.    백로가 서식하여 ‘루다오’(鷺島)라고도 불린다. 샤먼 시는 샤먼다오(厦門島), 구랑위(鼓浪嶼), 지메이전(集美鎭), 씽린취(杏林區), 통안셴(同安縣) 및 주위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난푸투오스(南普陀寺 남보타사)는 우펑산(五峰山) 아래에 있는 천년고찰이다. 샤먼 대학의 맞은 편뙤에 있다. 당(唐)나라 때 만들어졌으며, 관음보살을 모시는 절이다.    난푸투오스(南普陀寺 남보타사)   음력 2월 19일, 6월 19일, 9월 19일 관음 탄신일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성대한 행사를 벌인다. 안에는 민난(뙤南佛學院)이 있다.   르광옌(日光岩 일광암)은 샤먼의 내륙 쪽에 자리한 구랑위(鼓浪嶼)의 중부에 자리한 바위다. 해발 92.68m지만 이곳의 최고봉이다. 1647년 정성공(鄭成功)이 이곳을 보고 일본 닛코산(日光山)을 닮아서 ‘황(晃)자를 새겼는데, 이로부터 이름이 유래됐다.    이 바위는 직경 40m의 거대한 바위로 샤먼의 상징과 같은 바위다. 주변에는 구피슈동(古避暑洞), 수이자오타이(水操台), 정성공기념관 등은 물론이고 역대 마애석각의 문화도 볼 수 있다.    르광옌(日光岩 일광암)   정성공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명이 청나라에 망하자 반청복명 운동을 펼쳤다. 나중에 대만을 점령해 이곳을 기반으로 청을 공격했지만 급사했다.    아오위안(鰲)은 원래 해변의 작은 섬이었고, 이곳에 아오토우궁(鰲頭宮)이라는 작은 사원이 있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 사원을 파괴했는데 1950년 천지아칭(陳嘉庚)이 복원했다.   장저우는 푸젠성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대만 해협과 인접하여, 샤먼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며, 동북쪽으로는 추엔저우(泉州)와 접하며, 서북쪽으로는 롱옌(龍岩)과 접하고, 서남쪽으로는 광둥(廣東)의 산머리와 인접해 있다.    장저우산 장저우의 유명한 역사 문화의 도시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산, 바다, 암석, 동굴, 정자, 비석, 절, 사당, 다리, 나무, 꽃, 과일 등이 모여 아름답고 특색 있는 여행지가 되고 있다.    장저우의 대명사 가운데 편자황이 있다. 편자황은 원래 명나라 때 궁궐 비방이었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 어의는 장저우에 내려와 스님이 되어 비방을 세상에 알렸다.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이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편자황은 향료, 뱀 쓸개 등의 많은 종류의 귀중한 약재를 엄선해 만든다. 칼에 벤 상처나 타박상, 골절, 화상, 간염, 신장염, 중독, 각종 염증에 탁월한 효험을 보인다.    장저우를 여행한다면 편자황을 꼭 기억하자. 편자황의 가격은 차이가 많지만 이곳에서 샀을 때, 효과를 더 신뢰할 수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4
  • 우이산, 명차와 명산이 빚어낸 풍경
    우이산은 조선시대 학자 율곡 이이가 지인 ‘무이구곡가’로 익숙한 지명이다. 율곡이 이곳을 배경으로 시를 지은 것은 주희가 이곳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남부의 푸젠에 있는데다 산 깊은 곳에 있어서 쉽게 가지 않는 여행지다. 우이산의 첫 인상은 정말 여행지로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우이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지들이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이산에서 제일 주목받는 흥밋거리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구곡계를 래프팅하는 것이다. 넓이 약 2m, 길이 약 9m의 오래된 대나무 뗏목 두개를 엮은 뗏목을 타고 약 9.5km의 구곡 시내를 물결 따라 아래로 가는 것이다.    구곡계   시냇물의 속도가 완만하다가도 갑자기 급해지는 것이 마치 대나무 뗏목이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한 봉우리 한 봉우리를 지나가면서 스릴을 만끽하면서 양 옆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우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차다. 바위 위에서 자라는 차나무에서 나온 차로 만든 우이암차(武夷岩茶)는 우이산의 토산품이다. 우이암차의 품종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 ‘따홍빠오’(大紅袍)가 제일 유명하다.    지우취시(九曲溪 구곡계)는 우이산 자연보호구역인 황강산(黃崗山) 남쪽 기슭에 있다.   무이구곡가는 1곡에서 시작하지만 래프팅은 9곡부터 거슬러 내려간다. 한 시간여의 래프팅은 맑은 물과 산수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다. 강가의 바위에는 그 굽이가 표기되어 있다. 가는 길에 사공이 각기 설명을 한다. 때로는 수십 미터 깊이인 용소를 지나고 강가 바위는 개구리, 낙타 등 삼라만상의 형상이 있다.    톈요우펑의 옆을 지나는 육곡(六曲), 벼랑에 관을 안장한 현관(縣棺)을 볼 수 있는 삼곡(三曲), 옥녀봉과 만나는 이곡(二曲)이 인상적이지만 어느 곳 하나 버릴 수 없는 명승이 펼쳐진다. 특히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벼랑으로만 되어 있어 등반할 수 없기 때문에 옥녀봉(玉女峰)의 오롯한 자태가 더 인상적이다.    우이궁(武夷宮 무이궁)은 따왕펑(大王峰)을 뒷배경으로 서 있는 조용한 정원 같은 곳이다. 과거에는 도교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우이산과 연관된 명인들의 흔적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당(唐) 천보연간(天寶年間, 742∼755년)에 만들어졌다가 송대에는 300칸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전각이 그리 많지 않다. 우선은 우이산의 명인들을 모신 완니엔궁(万年宮)을 봐야 한다.    건물의 주변에는 우이산 관련 인물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전시관 밖에는 대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거대한 정원이 펼쳐진다. 한쪽에는 송나라 거리를 재현한 쑹지에(宋街)가 있고, 한쪽에는 유영(柳永 987∼1053)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 유영은 북송(北宋)의 문인으로 송사(宋詞) 풍의 긴 산문을 썼으며 문집으로 <악장집(樂章集)>이 있다.    유영 전시관 앞으로 펼쳐진 쑹지에는 말 그대로 송나라를 재현한 거리다. 다양한 기념품들과 우이산 특산인 차 등을 판매한다.     따홍바오(大紅袍 대홍포)는 사실 우이산의 따홍파오라는 명차도 있지만, 황제의 차를 생산하는 위차위안(御茶園), 바위에서 자라는 암차(岩茶) 등은 중국 차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가장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따홍바오   바위 사이로 난 벼랑 같은 길을 타고 20분쯤 걷는데 옆에는 옛 선인들이 남긴 글씨들이 붉게 치장되어 발길을 잡는다. 다시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따홍파오가 나타난다. 따홍파오는 한 바위에서 자라는 두 대에 걸친 차나무들을 말한다. 바위 아래에도 후손 같은 차나무들이 있지만 바위에 있는 앞대의 명성을 따를 수 없다.    선학(仙鶴)이 멀리 봉래섬(蓬萊島)에서 종자를 가져와 이 벼랑이 심었다는 전설과 천심사(天心寺)의 스님이 이 찻잎으로 황제의 병을 치료해 황제가 붉은 가사(紅袍)를 선물했는데, 이후 붉은색의 차 성분을 띠게 됐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야 전설일 것이고 보아 하니 뒤에 있는 바위가 붉은색 성분을 머금은 것 같은데, 그곳에 뿌리를 박고 자라서 차를 우리면 붉은색을 띠는 것 같다. 차 중에서 성인으로 불리는 이 차는 반 정도 발효시킨 우롱차 계열인데, 따홍파오에서 무성생식시킨 차를 따홍파오라고 부른다.    좋은 차들은 사실 대만이나 홍콩의 차 애호가들이 대부분 구입해 간다. 특히 따홍파오는 이제 보호 차나무로 지정되어 차 수확을 전혀 못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2007년 5월에 마지막으로 찻잎을 채취했는데 그 마지막 찻잎은 중국 국가발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톈요우펑(天遊峰 천유봉)은 우이산에서 가장 상징적인 봉오리다. 해발 410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 전체가 바위고 한쪽이 벼랑이어서 독특한 모습을 자랑한다. 위에 올라서면 우이산의 선경이 펼쳐진다.    톈요우펑(天遊峰 천유봉)   서하객도 “어찌 이곳에 와 구곡의 승경을 보지 않고, 이 봉이 제일이라 하랴”(其不臨溪而能盡九曲之勝,此峰故第一也)고 말했다. 정상을 오른 후에는 가파른 바윗길보다는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것도 좋다. 이 길은 과거 장쩨스(장개석)가 방문했을 때 가마를 타고 올라오기 위해 급히 닦은 길이라고 한다. 올라오는 길과 달리 완만한 편이어서 가마를 타고 올 만도 했다.    주시지니엔관(朱熹紀念館 주희기념관)는 우리 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주희가 가장 오랫동안 머물던 곳이 우이산이다. 지우취시 중간으로 난 다리를 지나서, 톈요우펑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주시지니엔관으로 가는 길이 있다.    주시지니엔관(朱熹紀念館 주희기념관)   이곳은 주시위앤(朱熹園)으로 불린다. 주희(朱熹 1130~1200)는 조선시대 우리 학단에서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그 주희의 가장 중요한 활동 범위가 우이산이어서 우리 조상들도 우이산에 대한 흠모가 대단했다.    사실 다녀와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면서도 수많은 서화(書畵)에 우이산이 등장한다. 주희와 같은 제목의 ‘무이구곡가’를 퇴계 이황이 썼고, 역시 비슷한 생각에서 율곡도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주희가 머문 ‘무이정사’나 우이산의 봉우리에서 따온 암자들이 많다.    퇴계의 경우 이 무이구곡가의 전계에 따라 수양이나 학문의 단계를 말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는데, 이럴 정도로 화제가 된 산이고, 우리 지식인들이 꼭 다녀가 보고 싶었던 산이다.    주시지니엔관은 그런 주희를 잘 설명한 곳이다. 전시장 안은 주희 시절에 강학했던 학당의 벽이 보존되어 있어 애틋한 감정을 준다. 주자학이 한국이나 일본 등에 끼친 영향도 설명되어 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1
  • 푸투오산(普陀山), 바다위에 만들어진 불국
    현대는 수많은 생각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여행자는 때로 한가지의 생각 속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가도가도 끝없는 티벳 고산에 빠지고, 역사 자신만을 바라보며 갈 수 있는 사막을 염원한다.    중국 4대 불교 명산에 들어가는 푸투오산은 불교라는 바탕만 두고 가면 된다. 불교가 철저히 구현되어 있는 섬이기에 그런 느낌이 더 강렬하다. 항저우에서 동쪽으로 100㎞ 거리에 있다.    불교가 철저히 구현되어 있는 섬, 푸투오산   중심인 푸딩산(佛頂山)은 전성기 때 218개의 절이 있었던 불교의 고향이다. 섬에 있어 해천불국(海天佛國)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안에는 다양한 사찰이 있는데, 명말청초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사실 이곳의 사원들은 하나가 천개이고, 천개가 하나다. 한 사원만 자세히 볼 수 있으면 굳이 모든 사원을 둘러볼 필요가 없다. 물론 한 사원에 대한 이해를 마친 여행자는 더 많은 사원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천개의 사원을 봐도 그중에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여행은 헛된 것이다.      또 원나라때 다보탑(多寶塔), 명나라 때 관음비(觀音碑), 청초의 구룡전(九龍殿)은 특히 유명하다. 최근에 푸른돌에 세긴 오백나한탑이나 33미터 높이의 난하이관인(南海觀音) 동상, 청동주조의 동대전(銅大殿)도 새로운 명물이 됐다.    33미터 높이의 난하이관인(南海觀音) 동상   난하이관인리상(南海觀音立像 남해관음입상)은 쑤앙펑산(雙峰山)남쪽에 세운 관음보살상이다. 3층으로 되어 있으며, 총 높이는 33미터인데 그중 불상은 18미터의 높이다. 연대는 2미터고, 그 기반이 되는 초석은 13미터인데, 넓이가 5500평방미터다. 1996년 음력 9월 19일 기공해 1997년 준공했다.    바이부샤(百步沙 백보사)는 바오타 동쪽 100미터 해변에 있다. 남북으로 600미터쯤 되는데 자오양둥 북쪽 치엔부샤와 대조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200미터면 해변이다. 푸딩산(佛頂山 불정산)은 푸투오산의 주봉이다. 해발 291.3미터고 올라가서 푸투오산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파위찬스(法雨禪寺 법우선사)는 푸투오산에서 두 번째로 큰 절이다. 백화등 왼쪽, 광시봉 밑에 자리잡고 있다.    명나라 만력 8년(1580)에 건축을 시작하여 청나라 강희제 38년(1699년)에 완공해 지금까지 절의 기능을 하고 있다. 천왕궁전, 옥불궁전, 원통궁전, 대웅보궁전, 장경집 등이 있다.    푸지찬스(普濟禪寺 보제선사)는 백화당 남쪽, 영주봉 밑에 자리잡고 있다. 송나라 때 건립된 관음불사다.    푸지찬스(普濟禪寺 보제선사)   푸투오산의 교통은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우선 조우산(舟山) 북부 주지아지엔(朱家尖) 섬 북쪽에 푸투오공항이 만들어져, 베이징, 샤먼, 산토우, 상하이, 난징, 칭다오와 항공편이 있다.    고속버스가 푸투오산 가는 부두인 선지아먼(沈家門)까지 운행하고 있다. 푸투오산으로 가는 배편은 보통 상하이와 닝보에서 운행된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 오피니언
    2020-04-21
  • [편의점세상] 고생한 손이네요!
    손님 한 분 일하는 내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고생 많이 한 손이네요” “.......^^*   내 손 곱지 않지만  거칠지 않다. 사는 동안 별로 고생하지 않았는데 나이 든 내가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고생한 손으로 여겨지게 했나 보다. 지금 중지가 굽어 기타 연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일이 있어 행복하답니다. 손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자세히 보니 잔주름 많고 중지가 굽었네^^*   글/사진= 편의점 아재 625(유기호)   ♣편의점 아재 625 칼럼은 기존 기사체에서 벗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점을  자유로운 문체로 독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 오피니언
    2020-04-20
  • [이호준의 문화ZIP] 월 2만원을 위한 빈곤포르노는 이제 그만
    한 달 2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월 2만원의 가치 그리고 무게감은 그리 작지 않다. 2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월 2만원으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보험이다.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월 2만원 이면 흔히 말하는 ‘암 진단 시 2천만 원 일시금 지급’ 해주는 상황에 따라선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좋은 보험을 가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외 주식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예금도 가능하다. 당장 점심시간만 해도 2만원이면 꽤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나? 최근 케이블 TV의 광고들 중 각종 NGO 단체들의 광고가 홍수를 이룬다. 초기엔 국내 결손어린이들이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월 1만원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세요’ 라고 하던 것이 어느새 북극의 곰을 포함해서 유기견들까지 가세해 월 2만원으로 인상(?)을 해 버렸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프리카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왜 금액이 두 배로 뛰었을까? 그것은 인가되지 않은 단체들의 난립과 모금 운동에 따른 마케팅 비용의 증가 때문이다.   모금 운동의 경쟁이 심화 되면서 더 많은 케이블 TV에 광고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월 1만원 후원금을 받아서 광고비 내고, 직원들 월급 주고, 운영비 쓰는 것이 부족 해 지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단체의 마케팅 팀장과 얘기를 했었다. “아유…. 우리는 그래도 양심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000있죠?” “걔네들 CF찍을 때 일부러 찢어진 옷을 가지고 간데요. 요즘 아프리카 애들 찢어진 옷 입는 아이들 없어요. 워낙 지구 곳곳에서 옷을 보내주기 때문이죠. 연기 시키는 거예요.”   얼마 전 유엔의 기구인 줄만 알았던 한 단체가 알고 보니 그 이름을 도용했던 사설 단체임이 밝혀졌고, 그 민낯이 드러났었다.   자원봉사 단체인 줄만 알았던 NGO들이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이용하여 빈곤포르노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불편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최근 ‘노르웨이 학생 및 학자 지원 기금(SAIH)이라는 단체가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빈곤 등 고통스러운 이미지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금 캠페인)’에 대해 비판을 하여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빈곤에 대한 인식의 개선, 기금 모금 캠페인 방식의 전환, 후원방식에 관한 고정 관념의 해체를 말했다. 이를 위해 빈곤과 고통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속 가능한 사회 변화를 촉진한 모범사례로 라디 에이드 캠페인을 선정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에서는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아프리카’를 해시태그로 하여 사진들을 올려주는 활동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 트위터리안은 “국제 미디어의 아프리카 표현은 너무나 자주 재난과 재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아프리카의 세련된 사진들을 공유해서 4만2천개 이상의 트윗과 리트윗을 받았다.    유니세프에서는 실제로 지원을 받아야 할 지역과 재난지역의 선포에 대한 홍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순수하고 오래된 단체들에 피해 가지 않도록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야 할 때이다.    자극적인 빈곤 포르노 보다는 약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지속적인 후원을 이끌어내는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 특히, 빈곤층 아이들에게 동정심이 아닌 꿈과 희망을 주는 캠페인이 나와 줘야 한다.   글=이호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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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준의 문화ZIP
    2020-04-19
  • 9월학기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
    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3차례나 연기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시행하고 있는 9월 학기제 즉 가을학기제 도입을 놓고 정부가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우수한 교수진과 연구진, 학자, 유학생 등 국제 인력 교류를 보다 활성화하고 학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가을학기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가을학기제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약 8조원 넘게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이유 등으로 찬반논란이 뜨겁다.   경제적 비용 문제와 함께 특정 학기의 학생 수가 증가하거나 이에 따른 교원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수능 일정과 취업 일정도 함께 변화가 생겨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9월부터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제도인 '9월 학기제'는 현재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도입하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호주를 빼고는 한국과 일본만 봄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봄학기제이지만 4월에 학기를 시작한다.국가별로 학기제를 달리하는 이유는 계절과 관계가 있다. 열대기후 국가들은 학기제 시작 월이 다양하지만, 계절 변화가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가을학기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 중 예외적으로 봄에 학기를 시작하는 나라는 한국과 북한, 일본이다.   9월학기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 체코,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연합과 캐나다, 미국, 영국, 마카오와 홍콩을 포함한 중국, 대만, 이란, 러시아, 터키 등이다. 유럽연합 중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10월학기제를 운영 중이다.   9월 학기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가을학기제 시행이 외국의 우수한 교수, 연구자, 유학생을 유입시키는 학제의 국제 통용성' 효과와 여름방학을 활용한 신학기 준비와 해외 인턴십 등 학사운영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9월 학기제를 도입한다면 초등학교 입학은 3월에 입학했어야할 2013년생들이 9월에 입학하게 되면서 외국의 9월 학기제보다 1년 밀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2013년생만 초등학교 과정을 5년으로 줄일 수도 없다.   또한 내년 3월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었던 2014년생들이 6개월 앞당겨 올 9월에 입학한다면 코로나19로 어린이집을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 입학 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 살 위인 선배와 동시에 입학하게 된다. 그럴 경우 한 학년에 신입생이 2배 정도는 늘게 되고, 그만큼 교원수와 시설도 확충해야하는 경제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초등학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3부터 초등학교 2년까지 학생들도 외국에 비해 1년 또는 6개월 이상의 학습 진도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가을학기제를 도입할 경우 수능을 5월로 앞당기고 공무원 시험 및 기업의 채용 시기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부 제도나 시기의 변화가 필요하다보니 부정적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유학생을 위해 왜 학기제를 바꿔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과거 1997년 김영삼 정부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가을 학기제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최근에는 2014년 말 박근혜 정부때 교육부가 가을학기제 도입 여부를 공론화했지만 흐지부지 묻혀버렸다.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입학과 개강이 세 차례나 연기되는 과정에서 9월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가을학기제' 도입을 둘러싸고 다시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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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7
  •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절경, 중국 동남
    중국 지도를 봤을 때 상하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곳은 왠지 낯설다. 그 낯섦은 지명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닝보, 원저우(溫州), 푸저우(福州), 추안저우(泉州), 샤먼(夏門) 같은 도시는 물론이고 옌탕산이나 우이산도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여행이 거의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옌탕산   하지만 이곳은 결코 우리와 먼 도시만은 아니다. 닝보의 옛 지명은 명주(明州)로 송과 육로가 막힌 고려는 배를 통해 이곳과 적지 않은 교류를 했다. 그 아래인 추안저우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도시에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교류가 가장 명확해진 것은 최부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다. 1487년 죄를 짓고 도망간 이들을 잡는 임무를 띠고 제주로 파견된 최부는 고향 나주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부음을 듣는다.    35세의 그는 태풍이 채 그치기도 전 뱃군들에게 지시해 육지로 가는 배를 출발시킨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는 표류하고, 천신만고 끝에 중국 동부의 한 해안에 닿는다.    처음에는 왜구로 오해받아 고통을 겪지만 그의 신분이 밝혀지자 황명으로 길을 출발해 중국 동부를 지나서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그 기록이 〈표해록〉인데 〈동방견문록〉, 〈하멜 표류기〉와 더불어 세계 3대 여행기로 꼽히는 명작이다.    최부의 표해록 그가 도착한 곳은 지금의 저지앙성 린하이(臨海)다. 구글 어스에서 제주에서 린하이까지는 직접 거리로 재어 보면 720km 정도니 적지 않은 바닷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멀다고만 할 수 없는 길이다.    사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이 길을 다니던 무역 항로가 적지 않았으니 아주 가까운 길이다. 실제로 저지앙이나 푸지엔에는 우리 민족이 모여 살던 신라방이나 고려촌 같은 지역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곳이 필자를 가슴조이게 하는 것은 서하객이란 인물 때문이다. 이 중국 동남해안의 가장 위쪽에는 중국 불교 4대 명산인 푸투오산이 있다.    푸투오산은 바다 위에 만들어진 불교 명산으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원저우 인근에는 옌탕산이 있다. 중국 여행의 살아 있는 신화인 서하객(徐霞客 1586~1641)이 가장 좋아했던 곳이 옌탕산이고, 그에 못지않게 좋아했던 곳이 우이산이다.    그는 수차례씩 이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탐험가답게 다양한 코스를 개발했다. 중국 여행가의 대명사인 서하객은 항상 여행을 꿈꾸는 기자에게 있어서도 가장 흠모할 만한 인물이다.    명 만력제 14년(1587년)에 지앙쑤성 지앙인(江陰)에서 태어난 서하객(원명 홍조弘祖)은 아버지가 강도들에게 피습당해 죽는다.    거기에 서하객이 살던 지앙인 인근 우시(無錫)에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이 있었는데, 이곳이 동림당이 처음 생겨난 곳이다.    동림당은 만력제 때 강압정치에 반대하던 학자 출신의 거사 집단이다. 훗날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탄압(1625∼1626)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학파인데, 학문과 의지가 뭉쳐진 학문 그룹이다.    서하객도 이 동림당에 심취해서 학문을 배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왕씨는 아들의 운명을 감지했는지 직조업으로 돈을 벌어서 아들의 여행을 권장한다.    거기에 결혼한 허씨가 아들만을 남기고 죽자, 그는 서서히 여행에 심취한다. 당시에는 쉽지 않은 길이었던 광시나 윈난까지의 여행을 감행하는데,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탐구욕도 강해서 점차 탐험가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많은 곳을 찾았지만 서하객이 가장 사랑했던 곳은 옌탕산이었다. 1613년 첫 번째로 옌탕산을 찾은 후 그는 1632년에 두 번 옌탕산을 찾았다. 화산이 바닷가에서 분출해 다양한 모습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상으로도 가치가 있는 산이다.    서하객은 옌탕산의 산길에서도 탐험가의 소질을 발휘해 롱비(龍鼻)동굴 등을 발견했으며, 낙차 197m의 거대한 폭포인 따롱추(大龍湫) 폭포의 발원지도 산길을 직접 헤매어 적어 놓았다.    서하객은 그밖에도 톈타이산(天台山), 황산, 우이산, 루산 등은 물론이고 베이징이나 멀리는 광시, 윈난까지 들르는 여행가의 면모를 보였다.    일행은 우선 따롱추를 봤다. 물이 많지 않았지만 197m 위에서 쏟아지는 한 줄기 물길이 바람을 따라 호수 위에 괘적을 남기고 있었다.  따롱추   서하객의 여행기는 훗날 집안이 청조의 침입으로 몰락하면서 화재 등으로 거의 소실됐다. 그런데 서하객이 죽은 지 43년 후에 그의 기록을 정리해서 다양한 여행기를 펴낸 이가 이기(李奇)다.    이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건륭 41년인 1776년에 〈서하객 유기(徐霞客 遊記)〉가 출간된다. 그런데 이기는 서하객이 고향에 잠시 들렀을 때 정을 나누었는데, 서하객이 다시 여행을 떠난 후 집에서 쫓겨나 재가한 후 태어난 아들이었다.    성씨도 다르고,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흔적을 쫓아서 펴낸 가족사의 아이러니가 인상적이다. 사실 그의 어머니도 그 시간에 쫓겨나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더 미묘한 느낌이 든다.    사실 푸젠 성 추안저우(泉州)나 저지앙 원저우(溫州), 명주(明州)로 불리던 닝보(寧波) 등은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와 많은 교류가 있었던 도시들이다.    폐쇄적인 국가 정책과 왜구의 강세로 교류가 끊어지면서 미리 나온 정착민은 고향을 잊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들은 봄이면 고향땅으로 휠휠 날아가는 제비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을까. 그 제비들의 여정을 생각하며 선잠에 빠져들었다.    글/사진= 조창완 여행 작가,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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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5
  • [칼럼] 대외 코로나 극복 지원은 투자
    사진=픽사베이   군과 관련 단체들이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마스크를 기부하고 나섰습니다. 주한미군 장병들이 1인당 면마스크 2매씩을 지급 받아 세척해 쓰고 있고, 일부는 군복을 잘라서 마스크로 재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스크 기부의 손길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나라별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저력이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공공의료 수준, 진단키트와 마스크 수급,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온라인 수업 역량, 사재기 등 모범사례와 비교항목을 찾자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겠다는 외국인이 많아졌습니다. 국내에 체류하던 외국인 중에서도 본국으로 돌아가느니 한국에 남아있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페닉에 빠진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은 오히려 다른 나라의 주목과 선망을 받는 나라가 됐습니다.   반면에 소위 지구촌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모범과는 거리가 먼 열악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미국과 유럽, 일본은 코로나19 초기의 중국처럼 폭발적인 확진자 증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의료진을 위한 마스크와 진단키트도 제때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로 운송되던 마스크까지 중간에 낚아채는 편법까지 동원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몰도바 등 세계 각지로부터 원조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그룹 U2의 멤버인 보노는 지난 해 면담한 인연을 들어 대통령에게 모국 아일랜드를 위한 한국산 의료장비 구매를 요청하는 편지까지 보내왔습니다. 빌 게이츠 회장이 한국을 세계의 모범국가라며 백신 개발에 협력하자고 해왔을 정도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인기였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앞선 진단키트와 마스크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진단키트의 경우 높은 정확성 때문에 ‘배급’을 바라는 나라들이 이미 줄을 선데다가 최근 미국 FDA 승인을 받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로 본격적인 수출을 확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오랜기간 겪었던 중국 황사와 최근에 기승했던 초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대량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도 이번 코로나19사태를 맞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열화상 카메라, 소독제, 분무형 소독기 등도 외국이 애타게 찾는 국내 의료용품입니다. 나아가 간편식이나 화장지처럼 의료용품이 아닌 제품까지 한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역경험과 치료 임상결과 등도 외국과 공유할 가치있는 지식입니다. 이미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은 우리의 확진자 동선추적 시스템에 대한 기술수출과 컨설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우리는 의료용품과 기술, 경험을 원하는 국가들에게 코로나 극복을 지원하는데 과감하게 나서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우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남을 도와줄 여력이 어디 있나”라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생색을 내며 다른 나라들을 도와줄수 있는’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내년 또는 내후년이면, 또 다음 바이러스 위기가 올 때 쯤이면 이들 나라들도 나름 철저한 준비와 설비를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방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게 우리가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지원과 협조를 부탁 받은 적은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부터 받았던 원조를 어느 정도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남을 도울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누군가를 도올 수 있는 기회도 자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사태가 종식된 후에 세계 경제와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준비한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정세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녹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인적 물적 교류가 예상보다 더 줄어들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교역량이 줄어드는 것 뿐만 아니라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국가끼리만 교류하는 무역생태계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 교역망에 진입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존재감과 기여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의 효과 측면에서 이것보다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외국의 원조는 한국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다른 나라가 힘들어할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투자의 적기입니다.   힘들어하는 나라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지금 우리는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김병철 칼럼리스트(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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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3
  • [이호준의 문화ZIP] 17세기 방호복을 입은 의사 '닥터 쉬나벨'
    동로마제국부터 페스트를 겪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중세만해도 외부에서 선박이 들어올 때 40일 이상을 일정 해상이나 섬에서 대기하다가 환자가 없어야 입항을 허락할 정도로 방역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체계적이거나 과학적이지 못했던 당시의 방역체계로는 무서웠던 17세기의 페스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까뮈의 '페스트'속 한 장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이 빌빌거리다가 입가에 피를 토하고 죽기 시작하면 그것이 페스트 창궐의 시작이다. 페스트가 대유행이었을 당시 환자를 치료하거나 시체를 치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닥터 쉬나벨' 이라고 불렀다.  닥터 쉬나벨은 지금의 의사로 볼 수는 없다. 굳이 설명하자면 시에서 돈을 많이 준다니까 자원한 돌팔이 지원자인 셈이다. 이들은 그림에서 보듯이 펭귄과 비슷한 복장을 했는데 긴부리 속에는 향료나 약초를 넣어 호흡기를 보호했고 긴코트는 밀납을 코팅하거나 가죽재질이었다고 한다.  닥터 쉬나벨은 환자나 시체와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지팡이로 쿡쿡 찌르고 다녔다고 추정한다. 눈을 보호하기위해서 눈 주변을 유리로 된 안경을 만들어 썼다고 전해진다. 이 정도 상당히 공들여 만든 방호복이다. 하지만 코트 밑이 뻥 뚤렸다는게 문제다. 그 사이로 벼룩같은 벌레가 들어와 감염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닥터 쉬나벨이 여느 집에 들고 나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저 집에 송장 나가네.'라고 쑤근거렸다.  닥터 쉬나벨은  치료를 가장해 림프절을 비위생적인 바늘로 찌르고 피를 뽑는 사혈요법을 쓰고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정도면 치료가 아니라 고문에 가깝다.   닥터 쉬나벨의 복장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페스트의 악령은 멈췄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치료제도 없고 의사와 병상도 없어 확진자와 사망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아무리 현대과학과 의학이 발달했어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로 무기력함을 또 다시 마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글 = 이호준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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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준의 문화ZIP
    20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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